일사병
작가 이반 부닌, 러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이반 부닌을 비롯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미하일 숄로호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조지프 브로드스키(시인)등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5명이나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구요.
단편집 <<사랑의 문법>>안에 들어 있는 <일사병>을 공부하기에 앞서, 프랑스로 망명했던 이반 부닌의 망명 전과 후의 삶, 수많은 사람들이 망명했던 망명시기, 망명 인텔리겐차들에 대해 김은희샘의 강의를 들으며 혁명과 전쟁으로 대변혁을 겪은 러시아를 보았습니다.
이반 부닌은 1870년 중부도시 보로네쉬에서 몰락한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소년시절에 푸쉬킨과 레르몬토프를 모방한 시를 썼으며 잡지<조국>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합니다. 그 후에 계속 산문을 발표하고 시 보다 산문 작가로 더 많은 인정을 받게 되는데 시적인 서정이 어린 산문을 썼습니다. 첫 단편집<<세상의 끝>>이 호평을 받았고 1903년에는 푸쉬킨 문학상을 받습니다.
신혼여행으로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여행한 이후, 전 유럽과 터키, 알제리 등을 여행하여 많은 영감을 받고 유럽적인 것과 아시아적인 것을 통합하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이집트, 세이론 섬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단편<형제들>에 반영했습니다.
피폐한 농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시골>로 명성을 얻고 <안톤의 사과>와 <시골>은 전형적인 러시아인의 성격을 진솔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봄날 밤>,<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는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루고, <창의 꿈>에서는 동양철학을 반영하며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썼습니다.
그는 1917년 혁명을 극도로 싫어했고 참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에는 혁명을 환영했으나 ‘비인간적인 유혈사태로 인해 인간사회를 강제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광란의 짓거리’ 라고 평가 했습니다. 혁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일기를 쓰고, 1920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합니다. 그해 자신의 어릴 적 사랑을 다룬 <미쨔의 사랑>을 발표합니다.
그의 주된 창작의 주제는 ‘인간과 자연은 서로 교감하는 하나의 유기체’, ‘창조주의 지배를 받는 죽음과 시간이라는 우주질서’, ‘사랑으로 극복해야하는 존재의 유한성’ 등 이었고, 톨스토이를 깊이 존경하여 그의 작품과 사상에 매료되었습니다. 체호프, 고리키와 친분이 깊었으나 러시아 혁명 후에 고리키와는 사이가 틀어집니다.
그는 당대에 지배적인 상징주의, 혁명의 도구화된 사실주의와 거리를 두고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러시아 사실주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정적 산문기법’ 을 추구했습니다.
1933년 <<아르세니예프의 삶>>으로 러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후 체호프에 대한 많은 자료를 모아 회고록 ‘체호프에 대하여’ 를 미완성으로 남기고 1953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사병>은 여행 중에 처음 만난 중위와, 남편과 세살바기 딸이 있는 유부녀와의 짧은 불륜을 묘사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의 안나 는 불륜을 길게 이어 가지만, ’일사병’의 여인은 상대 남자에게 자신의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고 하룻밤 사랑을 불태우고 떠납니다. “우리 둘 다 일사병 같은 것에 걸렸던 건 아닐까요.” 라는 말을 남기고. 남자는 여름날 꿈결처럼 다가왔다가 꿈결처럼 떠나버린 이상한 로맨스에 몸이 달았다가 그녀의 말대로 ‘일사병‘ 에서 깨어난 후 10년은 늙은 것처럼 느낍니다.
어제 TV의 한 영화음악 프로그램에서, 배신과 복수와 죽음이 전편에 깔린 영화 ‘대부‘ 의 음악을 들려주며 진행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배신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랑” 이라고. ‘일사병‘ 의 여인은 아침이 되자 정신을 차리고 ’배신 보다 더 위험한 사랑’ 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가는 배를 탑니다.
이 소설에서도 ‘안전한 사랑’ 을 놓아두고 ‘위험한 사랑‘ 으로 향하는 남녀를 보면서, ’결혼’ 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쉽게 저버리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이 소설 속 여인은 뱃머리에 머리를 휘날리며 영악하게도 ‘일사병‘ 으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다고 안도할 것 같군요.
이사회에 참석해야 해서 수업 중간에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강의실을 나왔습니다. 수업 후반부와 토론 때 하셨던 이야기들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