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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루스 우잘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연 경배    
글쓴이 : 박옥희    16-02-18 13:22    조회 : 4,844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연 경배

데르수 우잘라 デルス ウサ­ Derusu Uzala (In the Jungles of Ussuri)


바싹 마른 낙엽 더미에 첫 눈이 내려앉기 전, 홀로 배낭을 메고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산과 숲은 가끔 활기차고 호의적으로 보인다. 물론 고요하고 음침할 때도 있다.”는 시정에 빠졌다가, 모닥불을 벗 삼아 잠을 청할 때면 “이 계곡은 마녀들의 연회장 같다. 빗자루를 탄 모습까지 상상 된다.”고 일기에 적게 된다. 그 때 작은 키의 다부진 노인이 나타난다. 어린 아내와 아들과 딸을 천연두로 잃고 수많은 여름을 숲에서 보낸, 자신의 나이조차 모르는 골디인 사냥꾼. 그는 발자국만 보고도 “2-3일 전 중국 노인이 지나갔다.”고 설명하며, 해와 달과 물과 바람을 고맙지만 무서운 사람으로 여기며, 호랑이를 보면 “군인들이 총을 쏠지 모르니 빨리 도망가라.”고 이른다.

구로사와 아키라 黑澤明 감독의 <데르수 우잘라 デルス ウサ­ (Derusu Uzala)>(15, 스펙트럼디브이디)는 자연의 영화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니 그 자신이 자연인 늙은 원주민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막심 문주크 Maksim Munzuk, 1910?1999)와 도시에서 온 젊은 측량 군인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프 Captain Vladimir Arseniev(유리 솔로민 Yuri Solomin, 1935- )가 주인공이지만, 이들이 생사를 함께하며 여행하는 1902-1910년의 우수리 지방 자연 풍광과 날씨 또한 주인공이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 끝이 안 보이는 평원을 시뻘겋게 물들이는 석양, 우르릉 거리며 녹아내리는 얼음 계곡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란 사실을 잊고 자연을 파괴한다.”는 감독의 연출 변을 웅변한다. 이처럼 광대한 자연 속을 헤매는 인간의 걸음, 영화의 속도는 느리다.

‘일본 영화계의 천황’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75년 작인 <데르수 우잘라>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동 연구가, 탐험가, 지도 제작자, 민족주의자인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프(Vladimir Arsenyev, Владимир Клаудиевич Арсеньев, 1872-1930) 1923년에 발표한 동명의 기행/탐사 기록이 원작이다. 아르세니예프는 원주민 사냥꾼 데루스 우잘라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와 중국과 조선의 접경 지역이었던 우수리스크(연해주)와 시베리아의 시호테알린 Sikhote-Alin region of Siberia 일대를 탐험하여 세상에 알렸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데루스 우잘라>>를 읽고 감동받은 젊은 시절의 아키라는 1950년대에 일본에서 촬영을 시작하나, 원작의 배경인 러시아에서 러시아 배우들과 함께 찍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중단한 바 있다고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세계적인 감독이 된 1970년대, 구소련은 대사관을 통해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러시아어 영화 연출을 타진했고, 구로사와 아키라는 모스 필름의 전폭적 제작 지원 하에 1974 <데르스 우잘라>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첫 70mm 영화인 <데루스 우잘라>는 원작자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아르세니예프 마을을 중심으로 9개월 간 사계절을 담아냈다. 스태프는 100명이 넘었지만, 이 중 일본인은 단 6명에 불과했으며, '버라이어티'지에 따르면 모스 필름은 아키라의 예술적 연출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미후네 도시로 Toshiro Mifune를 데루스 우잘라 역으로 캐스팅해주길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후네 도시로는 그처럼 오랜 제작 기간을 타지에서 촬영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설득했다.

아르세니예프 역을 맡은 유리 솔로민은 50여 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영화에 출연했고, 60여 편의 무대에 선 러시아인이 사랑하는 스타이면서, 말리 극장 Maly Theatre 예술 감독을 맡았고, 1990년부터 1992년까지는 문화상을 역임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데루스 우잘라> 1976년 제 9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1976년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외국어상을 수상하는 등 7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그러나 사실 아르세니예프 책에 기초한 1961년 러시아 감독 아가시 바바얀 Agasi Babayan 감독이 아돌프 쉐스타코프 Adolf Shestakov, 카심 자키바예프 Kasym Zhakibayev, 알렉산드르 바라노프 Aleksandr Baranov 주연으로 만든 바 있다. 1961년 작품 역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데르수 우잘라> dvd는 세 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의 소리와 풍광을 실감나게 느끼고 싶다면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에 돌비디지털 5.1 사운드로 감상할 것을 권한다. 영화의 배경인 1902-1910년에 다가가고 싶다면 레터박스에 돌비디지털 모노 사운드로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서플먼트로는 원작자와 영화 스텝과 배우들에 대한 영문 글 자료, 촬영 현장과 모스크바영화제 수상 장면을 담은 흑백 기록 필름, 유리 솔로민이 회상하는 감독과 촬영 에피소드, 포토 갤러리가 있다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 위 글은 영화칼럼니스트 옥선희님의 네이버 블그로에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