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가고 있지만 눈 소식은 감감한 1월입니다.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나면 평등하고 순결한 세상이 되어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지요.
폭설은 하늘이 내려준 도화지입니다.
눈 위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봅니다.
눈 오는 밤이면 스승님이 홀로 듣는 노래가 있다고 합니다.
밤눈 / 최인호
한 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 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데서 눈 맞는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리
잠만 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이고 옛 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라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한 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 수록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밤눈’은 70년대 초 입대영장을 받은 송창식이
제대 후에도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싶어 심란해하던 중
마침 소설가 최인호가 통기타 가수들에게 노랫말을 줘서 곡을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창식에게 배당된 노랫말이 ‘밤눈’이었는데
서정적인 노랫말에 허탈한 젊음의 가없는 심정을 담았던 송창식은
“다시는 만들 생각도 없고 그렇게 부를 수도 없는 노래”' 라고 하면서
흘러가버린 세월을 이야기했습니다.
첫눈 / 이재무
첫눈은 우리가 잠 든 사이에 왔으면 좋겠어..
도둑 떼처럼 남몰래 쳐들어와서 세상이 만든 지도를
지웠으면 좋겠어..
늦은 아침 오줌이 마려워 문을 열었다가
빛을 반사하는 흰빛에 깜짝 놀라 잠시 눈이
멀었으면 좋겠어..
가지마다 열린 눈꽃 음표를 읽으며
콧노래를 부르면 좋겠어..
이웃에게 정답게 인사를 건내고 이민 간 옛 친구에게
야, 네 살던 마을에 첫눈이 왔어야!
문자를 남겼으면 좋겠어..
하늘이 내려준 하얀 도화지에 괴발개발
낙서를 남기며
늦장 부리다 지각하여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퇴근길 주머니가 허전한 실직을 불러내
따뜻한 술을 마셨으면 좋겠어..
첫눈은 눈꽃 화음에 귀가 젖어
곤한 잠 자는 사이에 내렸으면 좋겠어...
참 마음이 따스해지는 시입니다.
이런 첫눈이 온다면 온 세상이 더 환해질 것 같아요.
눈사람 / 이재무
눈 내린 날 태어나
시골집 마당이나 마을회관 한 구석
혹은 골목 모퉁이 우두커니 서서
동심을 활짝 꽃 피우는 사람
꽝꽝 얼어붙은 한밤 매서운 칼바람에도
단벌옷으로 환하게 꼿꼿이 서서
기다림의 자세 보여주는
표리가 동일한 사람
한 사흘,
저를 만든 이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마음의 심지에 작은 불씨 하나 지펴놓고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이
이 세상 가장 이력 짧으나
누구보다 추억 많이 남기는 사람
함박눈이 펑펑 내리면
벙어리장갑이 젖어들고 볼이 발개지도록 눈덩이를 만들어
눈사람을 만들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시입니다.
너무 짧은 삶을 살아가야하지만
꼿꼿이 서서 표리가 동일함을 실천하는 눈사람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겨봅니다.
함민복 수필 <출발>에 나오는 좋은 표현들을 공부했습니다.
‘유서처럼 남긴 나이테’
‘일기장을 일기장이 감싸고, 또 일기장을 일기장이 감싸주고 있었다.’
나이테 안에 또 나이테가 있는 모습을
수많은 일기장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꿈의 문을 덜컹 열어젖혔다.’
‘어둠이 고여 있었다.“
‘공기 속에 앉아 있던 술냄새가 내 몸이 움직이며 공기에 흐름을 가하자 깨어난 듯했다.’
‘어둠 속에서 형광등은 몹시 외로웠던지 고개 들어 한번 쳐다봐 주자
그때서야 기지개를 커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눈동자에 붙어있는 잠을 털어내려고~~’
카프카는 불면에 관한 수필에서
‘불면이 문지방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써놓았습니다.
바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유체이탈 화법이지요.
내 몸이 불편하다고 잠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 불면입니다.
적당히 피곤하고 내 몸이 편해야 잠이 오지요.
주관적 감성을 가지고 능청을 떨 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주는 강추위가 지속된다고 하지요?
추위에도 불구하고 독서토론은 열기로 가득해서 후끈거릴 정도였습니다.
그 열기는 강의실로 이어져서 1월의 두 번째 수업도 잘 마쳤습니다.
다음 주 수업 때까지 추위에 굴하지 않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