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울음들 / 이재무
둠벙이 얼어붙고 나서 날마다 사고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둠벙 옆 마루나무 가지에 와서 직박구리가 울면 그 동그란 울음소리가 바닥에 떨어져서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울음방울들은 일어서다가 미끄러지고 또 일어서다가 미끄러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렇게 얼음 바닥을 굴러다니는 새 울음들이 한 소쿠리는 될 듯합니다. 퍼렇게 멍이 든 울음들, 빨간 피를 흘리는 울음들, 날개 없는 울음들이 봄이 오자 파랗게 움으로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시인은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도 미끄러지고, 일어서고, 굴러다닌다고 상상했습니다.
울음이 멍이 들고,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시인의 무한한 상상력에 말이 안 된다고 토를 달면 시인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할 수 만 있다면 수필에도 이런 상상력을 동원하련만
고정관념에서 쉽게 탈피하지 못하는 무능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개구리 울음 / 이재무
여름 밤 들길을 걸을 때 나는, 길바닥으로 기어 올라와 달려드는 무수한 개
구리 울음소리들을 밟지 않으려 얼마나 노심초사하였던가. 그런 날 밤에는 대
기 속으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울음소리들이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별빛을
만나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기도 했다.
최근에 발표된 시입니다.
개구리 울음소리에도 생명을 불어넣고 밟지 않으려 애쓰는 시인의 눈에는
별빛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내려와 개구리 울음소리와 조우합니다.
한 폭의 여름밤 그림이 그려지는 시입니다.
글이란 대상에 대한 나의 가치 부여이자 의미 부여입니다.
밤에 우는 개구리 / 이재무
별꽃이 무논에 무리져 피면
개구리 울음 소리는 논두렁을 걸어나와
팽나무 뽕나무 미루나무의 어깨에
주렁주렁 열린다
바람이 불면 울음의 열매들은
아람처럼 무게를 못 이겨
다시 밤 화장 고운
별꽃의 적삼 속으로 파고들고
파고들면서 울음의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더러는 집집마다의
늦은 밥상 위를 데굴데굴 구르다가
된장국 속에 손을 찌르거나
김칫국 속게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우리가 숟가락으로 울음을
떠먹는 동안 울음을 또
애절한 음향의 날개를 달고
담장 안팎을 곡선으로 넘나들며
마음의 현을 튕기곤 한다
그리하여 울음이 닿는 물건 모두를
축축이 적셔놓는다
7월이면 개구리들이 엄청 울어댑니다.
그 울음소리가 기어 나와 열매가 되어 나무들에 주렁주렁 열립니다.
떨어진 울음소리들은 여자를 상징한 별꽃의 적삼 속으로도 파고들고
밥상머리에도 굴러 다닙니다.
생명을 얻은 울음소리들이 갈 수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듯합니다.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형도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죽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 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 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야윈 낫의 형상, 단단한 획신의 즙액, 쉬운 죽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가,
환멸의 구름들,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는 표현들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시대가 어두울 때 설쳐대는 존재들은
봄이 오면 형태도 없이 사라지는 고드름처럼 민주화가 되면 사라진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시에 대한 해석은 정답이 없습니다.
대충 분위기를 이해하면 됩니다.
숲으로 된 성벽 / 기형도
저녁 노을이 지면
신들의 상점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성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
어느 골동품 상인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신들의 상점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는 별을 뜻합니다.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조용하지 않으면 숲에 들어갈 수 없음 즉 성이 신비롭다는 것을 말합니다.
골동품 상인도 찾아왔지만 자본이 없는 곳에서 시장이 들어설 수 없음을 깨닫고 떠납니다.
서양 인문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시입니다.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時着(시착)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인사)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소읍)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숙취)는 몇 장 紙錢(지전)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도 참 아름다운 표현이지요.
잎이 적은 미루나무는 얕은 그늘을 만듭니다.
오후 두 시는 심리적으로 가장 외로울 때라고 합니다.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에서는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들판에 꽂혀있는 희미한 연기들은 아지랑이를 말하지요.
내용물 없는 추억이란 그다지 간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되기 전 군대생활 중 외박이나 외출 경험을 쓴 시로
서울집이란 술집의 쓸쓸한 풍경을 잘 그려냈습니다.
삼성에 취직한 영란샘의 아드님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스승님의 시를 읽어보는 것으로 올해의 마지막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직업의식이 발동한 스승님은 수업이 시작된 것이 아닌데도 강의를 하셨지요.
식사에 제주도에서 공수해온 귤까지
오늘은 영란샘이 풀코스로 한 턱을 단단히 내셨지요.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새해에도 일산반에 늘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며칠 남지 않은 을미년 잘 마무리 하시고
병신년에 더욱 밝은 모습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