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남은자로 남게 하소서>>의 저자 금요반의 안명자님과 압구정반의 단아한 오윤정님이 오셔서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식사하시며 송년회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주셨다지요. 두 분 선생님 반갑습니다. 저물어 가는 12월, 다음주에는 신재우 선생님이 따뜻한 점심을 예약하셨습니다. ~ ^ ^
1교시- 명작강의-제2강 로맹 가리의 <<유럽의 교육>>
1. 출생부터 수수께끼
1914. 5.8(신력 21). 모스크바 출생. 본명은 카체브.
*어머니-(Nina Owczy?ska, 1879?1942), 큰 키에 미모와 재능을 갖춘 연극배우출신. 유창한 프랑스어로 프랑스 극장 무대에도 출연했던 유망주. *생부-이반 모주힌(1889-1939. 무성영화 시대의 대스타, 감독)
*1917년(3세), 니나는 가축용 화물칸을 얻어 타고 모스크바를 탈출, 리투아니아의 빌노에 도착 - 폴란드- 프랑스로 이주.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프랑스 대사와 같이 확실한 상류사회인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업을 전전, 연극배우답게 화려한 언변과 상술을 동원해 사업을 해서 아들 뒷바라지를 함.
* 1946년 소설 <<새벽의 약속>>발표. -미국주부들에게 큰 영향과 감동을 줌.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에 나오는 어머니 니나는 세계작가들 중 금메달 감. 당시 유럽상류층의 언어였던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프랑스 국가를 4절까지 완벽히 외우게 함. 바이올린, 예능, 체육 가르쳤지만 아들이 딱지를 맞자 가장 편안히 쓸 수 있는 글쓰기 공부시킴. 단 한 번도 아들을 야단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질타하지 않고 긍정적인 말로 의욕고취시킴. 미리 필명짓기(로맹가리와 에밀아자르도 이때 만들어짐), 무용 배울 땐 당시 최고의 무용수였던 니진스키가 될 거라고, 글쓰기를 할 땐 프랑스 대사나 가브리엘 다눈 치오(이탈리아작가)가 될 거라고 두둔. 작은 성과를 열렬히 자랑하고 기뻐함( 단 한번 탁 구시합에서 은메달 타왔을 때).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식탁 맞은편에 앉아 가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들 때면, 어머니 에 대한 내 사랑을 담기에 세상이 너무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
<<새벽의 약속(La Promesse de I'Aube>>에서
2. 폴랜드에서 프랑스로
*빚쟁이 피해 1922-1923년, 바르샤바로. 니스(Nice)로 이주한 것은 카체브가 13세 때인 1927년. 어머니는 리투아니아인의 도움으로 호텔의 관리를 맡아주고 대신 호텔 안에 거주하며 매점을 운영. 명문 중학에 입학한 카체브는 프랑스어와 보들레르 시 암송에서 1등, 고3 때는 작문 1등상을 받는 우등생.
*카체브는 프랑스어 1등상으로 받은 발자크의 책을 팔아 친구들과 창녀촌 찾아감. 성병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온다. 어릴 때부터 니나는 아들에게 매독과 집시여자, 두 재앙만은 반드시 피할 것을 맹세.
*교수님말씀-자식들이 부모의 잔소리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해야 된다. 듣는 순간엔 싫어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부모를 기억하기 때문.
이 시절부터 카체브를 일생 동안 위안하는 것은 오직 창작. 항상 소설의 마지막 장부터 써 놓았다. 그의 그 강박관념적인 글쓰기는 죽는 순간까지 계속. 이런 방식은 신문연제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3. 법과 대학생
*1933년(19세), 니스에서 대입자격시험에 합격. 라틴어 때문에 고등사범학교를 포기.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법과대학에 진학. 1934년(20세), 가을 파리로 가서 법과대학생이 된다. 접시닦이, 배달, 호텔 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
어머니에게 다른 신인의 소설을 오려 보내면서 자기의 필명이 바뀌었다고 거짓말.
*1935년(21세), 2월 15일, 48만 부의 주간지 <<그랭구아르(Gringoire)>>에 단편 <소나기(L’Orage)> 게재. 단편 한 편으로 1000프랑.
*프랑스 귀화 수속, 1938년(24세), 공군 장교가 되기 위한 고등군사교육. 임관 불가. 3년 미만의 귀화인이라는 점과 보증해 줄 변변한 인맥이 없었던 것이 결격 사유. 동기생 290명 중 4등으로 유일한 탈락자. 전투비행을 배운 그는 중사로 입대. 사고로 코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 군복무 부적합 판정을 피하기 위해 부상을 숨기고 계속 근무, 1944년에야 수술. 프랑스군은 패퇴에 직면하여 흩어진다. 그는 동료와 포테즈 전투기를 몰고 간신히 모로코에 기착.
4. 항독 자유프랑스 군
북아프리카 주둔군을 영국으로 실어 나르는 전함에 승선하여 영국으로 간다. 동맹군의 환영을 받는 12명의 비행사들은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스 군(FAFL)에 편입. 약 500명의 런던 주둔 자유 프랑스군은 그 때까지 그들을 갈라놓았던 사회적 신분, 가문, 학력, 종교를 초월하여 ‘자유 프랑스 승리’라는 드골의 외침 하나로 뭉친다. 이때부터 그는 카체브가 아닌 ‘가리’로 이름을 바꾼다.
세 차례나 대형 비행 사고를 당하면서도 살아남은 그는 전선을 잃고 합류지점을 찾아 헤매다가 하이파(Haifa, 이스라엘 3대 도시)를 거쳐 다마스커스(Damascus, 시리아 수도)에 도착한 후 쓰러진다. 장티브스에 걸려 전염병동에서 9일간 사투. 6개월의 입원 끝에 전투 비행을 다시 시작한 가리는 틈틈이 <<유럽의 교육>> 집필. 어머니가 암으로 니스에서 사망했다는 전보. 아들에게 부칠 편지 250통이나 써서 맡기고 죽었다.
- 이런 어머니의 전폭적인 사랑과 희생, 지지를 생각하고 부상 때마다 살아남.
1944년 이혼녀 레슬리 블랜치(Lesley Blanch, 1904-2007, 영국 작가, 기자, 여행작가)와 결혼. 프랑스인 조상이 영국에 망명하여 세운 순수 프랑스 혈통의 가문 출생으로 가리보다 7세 연상. 드골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L’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을 받는다.
2교시 수필반
송경호님( 뜸부기)-뜸부기라는 희귀철새의 제목아래 가족의 운명과 대서사가 재미있고, 잘 연결되어 있다는평. 과수원 이야기 기다립니다.
신선숙님(매니큐어)- 일상을 잘 포착. 작가특유의 유머감각을 살려 좀 더 재미있게 꾸려도 좋을 듯.
김유정님(봄날은간다)-유행가가 어떤 땐 감동적이다. 이대로도 좋지만 노래를 중점으로 다시 써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듯하다.
3교시
오늘은 반장님을 비롯하여 감기 환자가 많아 티타임을 생략했습니다. 대신 수업시간에 박옥희 선생님께서 맛있는 츄러스를 준비해주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로부터 유명한 한국 어머니들의 치마바람은 그야말로 바람이더군요.
태산처럼 버티고 앉은 아들을 향항 믿음과
자신의 전 생을 아낌없이 던져버리는 어머니의 헌신 앞에서
감히 극성스럽다거나 지나치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결같은 아들사랑으로 온갖 역경과 가난과 굶주림을 기꺼이 감수한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야 헤일 수 없이 많지만
조롱과 모욕 앞에서도 당당하게 아들을 훈육한 카체브의 어머니 니나의 사랑은
무아라 말할 수없이 가슴 뻐근하고 아리고 아프더군요.
250통의 편지 이야기에서는 정말 코끝이 찡하고 목이 메어와서 눈물을 참느라 고생했네요.
성공한 아들의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기뻐하고 으스대고 자랑스러워 했을까.....
두고두고 오랫동안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마침 집에 들른 아들넘 도움을 받아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가리>와 <새벽의 약속>을 주문했습니다.
신년 연휴에 꼭 읽어야겠다 다짐을 하면서요.
작가 당사자 보다 그 어머니가 더 집중 조명된 참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반장님, 잘 하셨네요. 수업하자마자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 역시나 반장님입니다.
혼자 몸으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러나라 여러 도시를 헤매며 굶주림과 가난, 조롱과 모욕을 견디며
씩씩하게 아들을 키웠던 어머니의 사랑이 정말 눈물겨웠지요.
전선에 나간 아들에게 250통의 편지를 써 지인에게 맡겨 보내게 했던 건
소설 새벽의 약속에서 나오지, 실제로는 어머니 노트에 적혀 있었다네요.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작가가 그랬다고 하지만 그거나 이거나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아들이 둘인 선생님, 유난히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겠어요.
멀리 캐나다로 따님을 만나러 가신 총무님을 대신해서
이번주에는 권정희선생님께서 수고를 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권쌤.
수업자료 준비하신 홍성희쌤 정말 감사합니다.
수업시작 전 이민쌤께서 제일 먼저 커피포트를 들고 준비를 도와주시더니
수업 마무리에는 홍쌤을 비롯한 여러 쌤들께서 서로서로 도와주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 고여주시고 밀어주시는 쌤들 덕분에 어리버라한 반장이 그나마 잘 버팁니다.
교실까지 츄로스 배달시켜주신 박옥희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달처럼 고운 울 쌤들
고맙고 사랑합니다.
오늘 1교시 수업 내용 정말 재밌고 ^^ 감동적이었어요 수필 소재로 꼭 쓰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울 엄마 생각도 마이 났습니다 거의 정반대 스타일이라서 ㅎㅎ 글구 오늘 츄러스 달콤했습니다 박옥희 샘님 감사해요 ~~ 반장님 감기 얼릉 나으세요 박총무님 캐나다에서 딸과 잘 지내고 있으시죠? 권샘 수고 많으셨습니다 ^^ 굳밤 되세요
로맹가리, 정말 매력적인 남자지요. 전투기 조종사를 하면서 짬짬이 소설을 쓰다니,
그 열정과 노력은 콩쿠르상 두 번 받기에 부족함이 없네요.
이러다가 우리 용산반 똑 같은 책 제목으로 백일장이라도 열어야겠어요. ~ ^ ^
신선숙 선생님, 박은지 선생님! 반장님 말씀대로 사랑의 발자국 남겨주셔 감사합니다.
다음 주 점심시간에 뵐게요.
용산반에 놀러 오라해서 들렀습니다. 김혜정 선생님.
댓글 밭이 풍년입니다.
권정희 샘의 깨알 같은 강의 후기에 김혜정 선생님의 알뜰한 댓글까지 곁들여지니 풍요 그자체입니다.
바람이 불고 있네요.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초딩 때 서울로 전학을 왔을 때 처음 들었던 치맛바람이야기가 생각나요.
첨엔 엄마들이 자식을 위한 도시락 싸들고 점심 시간에 학교에 오는 것이 치맛바람인줄 알았지요.ㅋ
어머니들의 그 거센 치맛 바람 때문에 엿을 만들 때 들어 가는 효소 때문에 문교부가 혼쭐이 난 일도 있었지요. 엿을 만들 때 디아스타제 뿐 만이 아니고, 엿기름과 무우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며 한 문제 땜시 입학의 당락이 바뀌던 시절 정답을 두 개 다 인정하도록 이끌어 낸 주역이 치맛바람의 주역이었던 시절도 있었지요.
엿기름,무우즙,디아스타제.....
아~~우리가 그 시절을 보냈지요~~
그시절 치맛바람은 그나마 참 훈훈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변질되고 외곡된 엄마들의 사랑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사이에
이기주의,이혼 등의 부작용이 심각한 이즈음, 이렇게 다시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우리가 아직은 좀 더 바람을 일으켜야 하지않나 싶습니다.
댓글마실도 좋고
몸소 오시는 마실도 환영합니다.^^
어머나! 안해영선생님!반갑습니다.
바쁘신가운데 용산반에 오셔 후기댓글까지 남겨주시니
더욱 반갑고 고맙습니다. 종종 구경오세요.
선생님이 그 유명한 엿기름. 무즙 사건의 주역이셨나요?
입시에서 정답을 밝히기 위해 증명까지 하셨다지요.
정말 엄마들의 치맛바람, 아니 맹목적인 자녀사랑 대단합니다.
오죽하면 신께서 대리인으로 각 가정에 파송한 이가 어머니라고 했겠어요 ♡♡
안선생님 어머님의 자녀사랑도 지극하셨겠지요.
진눈개비가 오고 있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정희샘. 강의후기 목록에 정희샘 이름이 떡하니 버티고 한산 대문 알림방에 고정안내글에 해양문학상 수상자로 올라 있으니 멋지게 보이네요.
도시의 어머니들이 치맛바람으로 자녀의 앞날을 위한 앞치기 역할을 했다면, 농촌의 아낙들은 그저 먹는 것이나 챙겨주는 뒤치기 치마바람쯤이라 해야 할까요?
자식들 끼니 걱정이 그시절의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였지요. 저는 특히 초등시절 서울로 유학을 와서 어려서 부터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받는 일이 없었지요. 그래서 늘 뭔가 허전한 가슴 한자락 잡고 자랐어요.
용산반의 독서 강의는 인생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글쓰기의 모티브를 잡을 수 있을 듯 하네요.
언제 시간 내서 용산반 강의실에 놀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