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수정해서 낸, 문경자님의 <느티나무 아래서면>, 12일간의 미 소 국 여행 중에 가방을 도둑맞은 이야기를 쓴 김문경님의 <카페 ‘이루냐’의 악몽> 두 편의 합평과 아르민T. 베크너(1886~1978) <세 가지 꿈>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두 편의 작품은 무난하다는 평이었습니다.
아르민T. 베크너 <세 가지 꿈>의 도입부입니다. 이 글은 명확하게 썼다기보다 정서와 감정을 살리기 위해 분위기를 잡고 비유적으로 쓴 것이 특징입니다. 수식어가 붙은 문장과 글의 골격만 간결하게 간추린 부분을 비교해 보시고(복습하는 의미로^^) 글을 쓰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의 골격으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여기에 적절한 수식어를 붙여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애인한테 다가가듯 밤은 베니스 하늘 위로 살며시 그러나 우울하게, 기대와 놀라움을 가득 안고 찾아왔다. 새근새근 숨 쉬며 일렁이는 수로 위에 누워 어둠은 쉬고 있었다. 물결은 잠든 형상처럼 흔들리는 듯 보였고. 밤은 우리를 어둠 속으로 유혹하는 많은 기적들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피곤함을 느꼈다. 나는 오랫동안 곤돌라 속에 누워 별들을 바라보았다. 잠이 쏟아졌다.
나는 좁은 골목 위에 있는 내 방으로 올라갔다. 골목은 둥근 모양의 대문을 통과하듯 집 아래로 나 있었고, 한밤중까지 많은 목소리들로 물결쳤다. 퉁명스럽지 않은, 부드럽고 매혹적인 목소리들로 소곤댔다. 골목은 노동과 피로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삶의 강물이 좔좔 흘러가고 있는 다리 위에서 내가 그렇게 잠든 사이, 밤은 내게 세 가지 꿈을 선사했다. 그 꿈들은 내 앞에 크고 놀라운 눈으로 비밀처럼, 인생의 세 가지 예언처럼 나타났다.>
≪밤이 찾아왔다. 어둠이 숨 쉬고 있었다. 물결은 흔들리는 듯 보였고, 밤은 많은 기적들을 품고 있었다. 나는 피곤함을 느꼈다. 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잠이 쏟아졌다.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갔다. 골목은 집 아래로 나 있었고, 많은 목소리들로 물결쳤다. 목소리들로 소곤댔다. 골목은 노동과 피로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밤은 내게 세 가지 꿈을 선사했다. 그 꿈들은 내 앞에서 인생의 세 가지 예언처럼 나타났다.≫
교수님 말씀을 간단히 정리해 보며 마무리합니다.
‘스스로 알을 깨는 노력을 하자. 그냥 글이 되었다고 하기엔 아쉬운, 아무문제 없으나 읽는 사람은, ‘달리 좀 쓸 수 없을까’의 문제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글을 쓰기 전 고뇌해야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모든 사물에 어린시절이야기만 할 것인가. 추억에만 젖지 말고 시각을 달리해 현실적 문제로 발상을 바꾸어 써보자. 글의 방향을 새롭게, 다르게 시도해봐야 된다. 관련된 모든 것을 쓴 특징이 없고 지루한 글은 끝까지 읽혀지지 않는다. 재미있게, 슬프게, 혹은 두려움을 느끼게 글을 요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