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카시>
막심 고리키
20세기 러시아 문학에 들어가는 새 학기 첫날, 새로운 분 세분이 오셔서 반가움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귀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러시아 문학 속에서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첼카시>의 작가 ‘막심 고리키‘의 이름은 필명으로 ’최대의 쓴맛‘이라는 의미입니다. ’최대‘라는 뜻의 ‘막심’ 과 ‘쓰다’ ‘고통스럽다’라는 뜻의 ‘고리키‘에서 이 작가의 삶과 문학을 알 수 있습니다.
1868년 볼가강 연안 니즈니 노보고로드(현 고리키 시)에서 태어난 고리키는 4세때 콜레라로 아버지가 죽자 외갓집에서 성장하면서 외할머니로부터 많은 민간 구전문학을 듣습니다.
염색공장주였던 외할아버지가 파산하여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11세 때는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합니다. 이때부터 구둣가게 점원, 건축설계사무소 견습, 기선 접시닦이등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부랑자처럼 러시아를 떠돌아다닙니다. 접시닦이 시절에 요리사 미하일 아끼모비치 스무르이로부터 독서지도를 받고, 설계사 견습으로 일할 때는 발자크의 <<으제니 그랑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성장하면서 하층민들과 어울리며 지하운동에 관여하게 됩니다.
19세 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죽음이후 두 번 자살을 시도 했지만 의식을 회복하고, 이후로는 “나의 일생 중 가장 수치스럽고 우둔한 짓“ 이었다고 술회 합니다‘
장편 서정시 <늙은 떡갈나무의 노래>를 코롤렌코에게 보여줬으나 악평을 듣고 2년 동안 글을 안 쓰다가 <마카르 추드라>로 전업작가가 된 후 <첼카시>로 유명해집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에 혁명기금 모금을 위해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갔으나 실패하고 카프리섬으로 망명겸 요양을 갑니다.
장편<<어머니>>를 완성하고 7년의 망명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유년시절>>을 집필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레닌을 비판하여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르는데 이때 <<나의 대학들>>을 집필합니다. 레닌 사망 소식에 <레닌에 대한 회상>을 씁니다. 미완성인 장편 <<클림 삼긴의 생애>>가 있고 영주귀국 후에는 제 1차 소비에트 작가동맹 의장이 됩니다.
1936년 독감 치료를 받다가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스탈린에 의한 독살설이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고리키에 대한 평가는 ‘혁명을 예감하는 민중 출신의 작가’ 로서 <보샤키>(맨발의 사람들)와 같은 민중들의 꿈과 의지를 묘사했고 <어머니>의 파벨과 같은 불굴의 노동자를 통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문학을 창조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에 일관되게 공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이며 소련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첼카시>는 고리키가 유랑 중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한 방랑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항구 주변을 떠도는 도둑 첼카시는 농촌 출신의 가브릴라를 도둑질에 끌어 들이고 번 돈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가브릴라는 첼카시가 가진 것 까지 마저 달라고 조릅니다. 그러다가 첼카시의 머리를 돌로 내리쳐 쓰러뜨리고 도망갑니다. 양심에 찔려 되돌아 온 그는 첼카시에게 용서를 빌고 첼카시가 뿌린 돈을 주워 갖습니다.
한바탕 소동 후 서로 반대 방향으로 사라진 그들이 있던 자리에 폭우와 거대한 파도가 덮치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 농민 가브릴라는 농민의 탐욕심을 비판하도록 장치 된 인물입니다. “농민은 땅에 대한 탐심이 있어서 혁명의 주축이 될 수 없고, 노동자가 혁명의 주축이 될 수 있다” 는 레닌의 말을 살리는 소설입니다. 농민은 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 혁명을 저버리고 돌아갈 수 있는데 첼카시는 이것을 극복했으나 가브릴라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농노제는 폐지되었지만 농토가 없는 이들은 부랑자나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동자로 전전하며 고생한 고리끼의 체험이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실감나는 묘사는 체험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리얼리티를 펼칩니다.
우리들이 읽은 소감을 나눌 때, 모두 뛰어난 묘사력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하늘, 바다, 공기, 소리등 자연에 대한 묘사와 수염의 움직임까지 예민하게 포착한 인물묘사는 부두장면과 함께, 마치 영화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대자연과 인간군상의 대비를 보았고, 인간 본질에 대해서 깊게 파고든 것에 대해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는 메시지를 준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두 악의적인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 솜씨에 감탄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최대의 쓴맛’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이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최대의 단맛’을 주었습니다.
정민디샘, 유병숙샘, 진연후샘, 다시한번 환영합니다. 러시아 고전읽기반에서 함께 새로운 정을 쌓아가기로해요.
수업 후에 세분을 환영하는 의미로 제가 점심을 사려고 했는데 어느틈에 김은희샘이 계산을 하셨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지만 샘~ 다음부터는 아니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