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문화인문학(6. 29, 수)
- 상상력으로 쓴 수필 사례
한국산문 김창식
1. <해변의 카프카>
폭풍우 치는 날의 바다. 세상이 처음 열릴 때 그러했을까? 무(無)와 혼돈, 어둠이 뒤섞였다. 하늘이 내려앉고 파도는 치솟아 시야를 가리며 천지사방은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해는 빛을 잃고 떨어진 지 오래고 달과 별은 어둠속으로 숨었다. 뒤엉킨 비바람이 더 큰 회오리를 이루어 바위를 때린다. 광란의 바다 앞에 시인의 넋처럼 서면 무엇이 산 것이오 무엇이 죽은 것이랴? 바다야, 바다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러나 울부짖는 바다의 형상 또한 바다의 피부요 겉모습일 뿐...
바다의 은밀한 속살과 장기, 피돌기를 보려면 볕도 들지 않은 어두운 밑바닥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해파리 떼가 공정대처럼 낙하하고 날씬한 뱀장어가 악기의 현(絃)처럼 물길을 흩뜨리는 곳. 자줏빛 물풀이 미친 여자의 서러운 울음처럼 나풀대고 덩치 큰 곰치는 미욱한 새색시처럼 바위 틈 사이로 얼굴을 감춘다. 강철 근육과 지옥의 눈을 가진 대왕문어가 마술보자기처럼 몸집을 오므렸다 펼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노랑 띠를 두른 잔 물고기 떼가 일사분란하게 제식훈련을 펼치는 곳. 그곳에 물길의 본류, 침묵하는 바다의 모습이 있으려니...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나는 내가 주인인 나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다 속으로 또다시 들어가 볼 수밖에. 그곳에서 산호초의 찬란한 산란, 돌무지 배경 속으로 감쪽같이 녹아드는 곰치, 형광 띠를 두른 잔챙이 물고기떼의 행진, 메두사의 머리칼 같은 물풀의 흐느낌, 해저의 정밀과 끌탕처럼 피어오르는 모래먼지[沙塵]를 보았다. 과연 바다 밑의 바다는 보아 오던 바다의 겉 보습이 아닌 전혀 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2. <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래 전 종로3가 탑골공원. 끈 떨어지고 줄 떨어진 구경꾼들이 둘러섰다. 쥐 한마리가 뿔뿔 기어가자 작은 널빤지 벽이 나타난다. 생쥐가 다른 길로 접어드니 또 벽이 가로 막는다. 실험용 쥐가 방향을 바꾼다. 그러자 알고 있었다는 듯 또 다른 방해물이 나타난다. 시행착오 끝에 작은 동물은 출구 쪽으로 향한다. 구경꾼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박수를 치려는 순간, 아차, 미련한 쥐는 방향을 틀어 출구로부터 쪼르르 멀어지더니 다른 곳을 헤맨다. 상황이 재개된다. 쥐 한 마리가 기어가자…. 상황은 되풀이 된다. 쥐 한 마리가 기어가자 널빤지 벽이…. 쥐 한 마리가 기어가자 또 다른 벽이….
바보 같은 쥐. 슬슬 짜증이 나려는 순간 설핏 의심이 든다. 쥐가 혹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출구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그러니까 내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면 너희들이 웃고 재밌어 한다는 말이지? 그럼 그렇게 해.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짜놓은 틀과 각본대로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내가 금방 출구를 찾아내면 재미없잖아. 그것도 모르는 너희들이 무얼 알기나 해?"...
그러고 보니 쥐가 출구에 이르러 방향을 바꾸려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아니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얼핏 우리를 쳐다보았다. 쥐의 붉은 눈에 연민과 슬픔이 일렁였던 것 같기도 하다. 쥐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이처럼 망설이고 어쩔 줄 몰라 하면 되는 거야? 다음번엔 더 어려운 문제를 내보시지. 스프링 장치가 달린 쥐덫도 여기저기 설치해놓고 말이야. 내가 좀더 집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