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침묵의 가치, 그것의 존재론적 성격,
그것의 존재의 깊이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침묵이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며
말의 중단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침묵은 하나의 독자적인 현상이며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존립하는 ‘실제’입니다.
‘침묵은 효용의 세계 외부에 위치한다.
침묵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침묵으로부터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침묵은 비생산적이다.
그 때문에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모든 것들보다
침묵에서 더 많은 도움과 치유력이 나온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가 있었기에
이재무 스승님의 <침묵의 세계>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은 좋은 글을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자기가 자기에게 돌아가는 일이라고 스승님은 말합니다.
뼈저린 회한에 젖어 까닭 없이 울컥 설움이 치밀어 오를 때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은 지구 반대편을 다녀온다 하여 풀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영혼의 문제를 물리 차원에서 풀 수 없고
자신의 생의 기원을 떠올려 본래 청정에 이르기 위한
끝없는 성찰만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계의 소음으로부터 고립되고
침묵으로부터도 고립된 침묵의 세계들입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현대인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무한 욕망과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현대인에게
욕망은 파면 팔수록 커지는 구멍입니다.
전자 사막 시대에서 사막 같은 절대 고독이 현대인의 내면을 차지합니다.
이런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멀리하고 배척해온 침묵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면 난제를 풀 수 없습니다.
가장 먼 길인 ‘내개 내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란 내 염원이나 갈망을 토로하는 것이 아닌
침묵 속에서 절대자가 전하는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진정으로 좋은 관계입니다.
남자들이 술을 먹고 도박을 하는 이유는 관계 맺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골목 문화가 번성되어야 합니다.
동네마다 고유문화, 축제 역사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과거 현재가 공존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주목나무처럼,
나이 들어 고목이 되어 수명을 끝내가야 할 때면 속부터 들어내고
잎과 가지는 조금씩 말라가도 세월을 품고
여전히 기품을 잃지 않는 주목나무처럼 말입니다.
초엽샘이 손수 해오신 충청도 장떡은 쫄깃쫄깃하고 맛있었습니다.
래순샘이 쪄 오신 감자와 지윤샘이 갖고 오신 삶은 계란과 오이도 일품이었고요.
토속음식들로 풍성한 하루였습니다.
이제 여름학기의 첫 달이 끝났습니다.
칠월의 열정과 함께 활기찬 강의실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