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문화인문학(6. 15, 수)
- 상상력은 힘이 세다
한국산문 김창식
수필전문지나 종합문예지에 실린 글들을 보면 구성과 내용이 닮은꼴이다. 감각적인 전원풍 자연예찬, 일상과 주변의 하나마나 한 이야기, 오래 전 농경시대나 목축시대로 회귀하는 추억담, 개인의 기구하고 구차한 삶의 기록, 남에 대한 은근한 비난, 자신과 가족에 대한 자랑 아닌 자랑(그러니까 결국 자랑)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수필이 읽히지 않는다.
수필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은 한 마디로 재미가 없어서이다! 선정적이고, 말초적이며, 자극적인, 장르적 재미를 말함이 아니다. 상상력 부족, 주제의식 결여, 흥미 없는 소재의 채택, 뻔한 전개와 결말, 정확하지 않은 문장과 논리, 교훈적 논조, 혼란스러운 수식어 사용이 서로 얽혀 읽어도 남는 것이 없고 감동은커녕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 누가 수필을 읽겠는가? 우선 ‘상상력 부족’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상상력이 무엇일까? 현실세계와는 거리를 둔, 하지만 있음직한 가상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색일 것이다. 작가의 문학적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수필 역시 문학의 한 분야인 만큼 시야를 넓혀 다른 문학 장르에서 통용되는, 상상력을 토대로 재구성하고 재창조하는 기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어난 일을 숨김없이,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 일기처럼 기록해야한다’는 잘못된 주술(呪術)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쓴다는 행위 자체가 도대체 가능하지 않다. 쓰려고 하는 모든 내용은 펜을 잡거나 컴퓨터 좌판에 앉는 순간 과거의 일이 된다. 즉 기억을 소환하는 작업인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모호하고 자의적(恣意的)이며 온전치 도 않다. 기억은 습작되기도 하고 휘발되기도 한다. 게다가 기억을 표출하는 수단과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언어(문자) 자체가 불완전하지 않은가? 문학이란 원래 가능하지 않은 일에 가장 근사치로 도달하려는 피곤한 ‘도로(徒勞)’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보여주려는 내용은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물론 발생한 실제의 일을 가능한 한 정확히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자신의 사상이나 관점, 정서와 체험에 충실하려 노력하되 ‘상상력’을 빌어 ‘실제적 사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야만 ‘문학적 진실’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시나 소설, 희곡처럼 전적인 허구에 의존하면 작위적인 느낌을 주어 석연치 않을 뿐더러 수필 장르의 고유한 정체성을 훼손하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상상력의 도입’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의문이 들 법하다. 시나 소설, 희곡 같은 여타 장르에서 나타나는 허구, 또는 왜곡과 수필에서 허용되는 상상력은 어떻게 다른가? 수필에서 발현되는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나와 관련된, 내가 개입하는’ 사건과 느낌의 재구성을 말함이다. 바로 이 지점에 미묘하거나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문학적 효과 증대를 위한 선의(善意)의 조정은 허용되지만, 있지도 않은 일을 있었거나, 있음직하게 거짓으로 꾸며 처음부터 속이려 드는 것은 고의적인 속임수요, 자기기만이다.
또 다른 갈래의 고민과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 원초적이며 피해갈 수 없는 한탄일 것이다. “상상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하나?” 푸념은 이어진다. “경험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심지어 “가방끈이 짧아서, 어쩌고저쩌고….” 어쩌면 이 말들은 변명이나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어떻든 보고 배운 것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 저런 경험도 쌓았을 것이다. 하물며 경험하지 않은 사실도 상상력을 동원하면 유추와 추론으로 어느 정도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능력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으며 수용 틀과 용량도 비슷하다. 다만 상상력 역시 골치 아픈 사유를 동반하는 인식 체계이자 통로인고로 즐겨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칸트의「순수이성비판」에 나오는 ‘선험적 지식(Wissen a priori)’은 그에 대한 좋은 인유가 될 수 있다.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결합한 독일 관념철학자 칸트는 인간사고의 기본 구조와 인식에 이르는 경로를 '선험적 지식‘으로 설명했다. 사물과 현상의 인과성, 보편타당성에 대한 이해는 경험하기 이전에 이미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선험적 지식’을 ‘상상력’으로 치환해보자. 누구에게나 본디부터 주어진 상상의 힘을 빌려 일상적인 소재를 미적 울림이 큰 주제로 형상화하자는 것이다. 즉, “아마, 그랬을 거야.” 또는 “혹, 그러지 않았을까?” “아무렴,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