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여인><아뉴타>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1860-1904)
이번 주에는 ‘귀여운 여인‘과 ’아뉴타‘ 두 작품을 했습니다.
체호프에 대해서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할 때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간결한 문장 속에서 문제를 던지고 결론을 독자에게 내리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귀여운 여인‘ 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둘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함께 공부한 ’아뉴타‘ 는 낯선 이름이 주는 생경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 했습니다.
체호프는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농노였지만 돈을 열심히 벌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파벨은 조그만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다가 파산하고 모스크바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나 체호프는 중등학교를 마쳐야 했기에 홀로 고향에 남아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도와야 했습니다. 소년에게 이것은 혹독한 시련이었고 이 경험은 인간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훗날 이때의 경험들이 예술적 이미지로 이어졌고 작품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머와 풍자를 적절히 결합한 짧은 소설들을 씁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 속 주인공 들은 하급관리, 농민, 가난한 지식인 같은 사회적으로 ‘작은 인간들’ 이었습니다. 체호프는 귀족 출신이 아니어서 상류층의 인물을 그려낼 수 있는 경험이 부족했으므로 자기 주변에서 많이 보고 알고 있는 사람들을 작품에 등장시켰습니다. 그것이 그의 경험의 한계로부터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작은 인간들’ 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자 했던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행로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페테르부르크의 주간지에 <박식한 이웃에 보내는 편지>가 실리면서 지면을 통해 발표한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왕성한 작품 활동 중에 <관리의 죽음><뚱뚱이와 홀쭉이>등 뛰어난 작품을 양산합니다.
대학 졸업 후 모스크바 근교에서 개업하여 의사로 일 하면서 두 번의 단편집을 출간합니다. 이 두 작품집은 작가로서의 명성을 높여 주었고 의사의 길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그러나 이 무렵 폐결핵의 징후를 보이고 평생 지병이 됩니다.
이 시기에 최고의 신문 가운데 하나인 ‘신시대’를 이끌던 ‘수보린’ 에게 발탁되고 대작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수보린 덕분에 맞게 된 독자 대중의 확대가 작품의 외연을 확장시켰고 <아가피야><여행 중에><성스러운 밤에>등을 쓰게 됩니다. 또한 천재화가 ‘레비탄’과의 친교로 인상주의 화풍을 접하게 되고 작품의 깊이가 깊어지고 무르익어 갑니다.
사할린 섬 여행 후 인상기 <시베리아 여행>과 조사 보고서 <사할린 섬>을 썼으며 모스크바 근교 멜리호보에 영지를 사들인 뒤에는 <다락방이 있는 집><3년><나의 인생><농부들>등의 작품을 냅니다.
폐결핵의 악화로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요양 중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썼으며 그의 말년을 대표하는 희곡으로 <갈매기><바냐 아저씨><세 자매><벚꽃동산>등을 남기고 1904년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시신은 러시아로 옮겨져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귀여운 여인>은 ‘사람이 사람에게 늑대다’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서 쓰여진 소설입니다.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이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올렌카는 첫 번째 남편과는 연민의 정에 이끌려 결혼 했다가 사별하고, 두 번째 남편에게서는 남성성에 이끌려 결혼 했다가 사별합니다. 그리고 별채에 세 들어 살던 수의사를 사랑했지만 그는 그녀를 떠납니다. 그가 떠난 후 ‘귀여운 여인‘ 이라 불리던 외모는 시들고 텅 빈 삶을 마지못해 유지해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수의사는 아홉 살배기 아들 사샤를 데리고 그녀를 다시 찾아옵니다. 이제 올렌카의 모든 관심은 사샤에게 집중되고 그녀는 다시 예전의 생기를 되찾습니다. 그러나 사샤는 때때로 올렌카를 귀찮아하거나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 소설의 테마는 애착을 가졌던 것이 사라지는 ‘몰두와 상실’ ‘그림자와 메아리’를 보여줍니다. 고리키는 이 소설에 대해 “귀여운 여인은 자신이 애착을 가지는 것들의 개성 없는 노예”라고 평했습니다.
<아뉴타>는 회색 눈동자에 갈색머리, 파리한 얼굴을 한 자그마한 여자입니다. 의대생 클로치코프와 동거하는 그녀는 그전에 이미 다섯 명의 남자와 차례로 동거하고 버림받기를 거듭했습니다. 이 여섯 번째 남자로 부터도 내쫒김 당할 운명 속에서 항상 앉아 있던 들창가의 의자에 조용히 앉습니다.
이 작품도 고통 받고 모욕 받는 ‘작은 사람들’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단편 작가로서의 체호프는 그저 담담하게, 삶을 있는 그대로 쓰면서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유입되는 시대에 노동자들의 빈곤을 보았고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대안은 없이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기만 한 작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속에는 문제의식과 사회고발이 들어있습니다.
토론 때 나온 내용은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는 것에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과, 그들이 누리는 권력에 무력감을 느낀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겠다. 사회가 부조리할수록 여자와 아이는 더 피해를 본다. 올렌카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이다. 올렌카는 귀여운 여인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여인‘이다. 귀여운 여인이 귀엽지 않았다. 올렌카는 나쁘지 않은 남자를 만났다. 읽는 동안 아무 거리낌 없이 내용을 받아들였다. 가슴에 간직한 사랑이 더 아름답다. 아뉴타는 타인에 의해 조종되는 아바타 같다. 성공한 남자가 조강지처를 버리는 것은 누추했던 과거를 떨쳐내고 싶은 심리에서 온다. 이용할 가치가 있는 남자에게 접근하는 질 나쁜 여성이 있다.’ 등등으로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기도 했고, 가끔씩 폭소를 터트리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체호프는 부인 올가와 800통의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니 대단합니다. 40대 초반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지만 작가로도 사랑으로도 성공한 인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정희샘과 박서영샘은 유럽여행 중이시고 정진희 회장님과 이순례샘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못 나오셨는데 네분이나 빠진 자리는 정말 커 보였어요. ㅠㅠ
엄선진샘,에이스 과자, 커피에 맛있게 찍어 먹었어요. 이영희샘, 티타임 때 유머와 함께 커피콩 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셨어요.
다음주에는 뚜르게네프의 <무무>를 하게 되는데 뚜르게네프를 전공하신 김은희샘의 부군께서 특강을 해 주십니다. 귀한 시간을 내 주심에 감사드리며 다음 주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