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토론과 강의를 듣는 동안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은 고통을 동반하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것이어서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지한 수업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서늘한 죽음의 주변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이 소설은 1870년대 톨스토이의 회심 이후에 쓰여 졌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더불어 회심 이후의 작품으로는 <참회록> <크로이체르 소나타> <예술이란 무엇인가> <<부활>> 등이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발표 당시 러시아와 유럽문단의 반응이 컸고 그의 중 단편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파상은 “나의 작품 100편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을 보고서 알았다”고 말 했을 만큼 극찬했습니다.
1882년 제정 러시아 시대의 출세지향주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인간성 말살과 위선적인 사교문화를 고발하며 죽음에 대한 사실적 묘사 속에 인간 내면의 보편적 이기심을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 속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과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쌍트 페테르부르크의 중간급 치안 판사인 이반 일리치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다가 병에 걸리고 고통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새로운 삶으로 건너갑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본질적으로 관심이 없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친구나 동료판사들은 이반의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날 밤에 있을 카드놀이를 생각하거나 이반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이 어떤 이익과 상관관계가 있을지를 따져보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이반의 아내는 남편의 연금을 세세하게 따지고 정부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가 외롭게 고통과 싸우며 죽음을 맞기까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주인을 병간호 했던 하인 게라심에게서는 인간성의 희망을 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과정은,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가 주장했던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의 단계와 유사한 과정을 거칩니다. 죽음으로 가는 한 인간의 투병 속에서 삶을 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에 대해 죽음 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이반 일리치는 빛을 봅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며 세상을 떠납니다. 완전한 수용의 단계입니다.
우리들의 토론은 다른 때 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이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며 눈물 흘렸다, 고통 속에서는 누군가를 할키고 싶다. 누구나 죽음에 초연하다고 말 할 수 없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고 겪은 사람은 그 죽음의 전과 후가 전혀 다르다.’ 등등의 이야기와 더불어 부모님의 죽음이야기, 아이를 죽음에서 살려낸 이야기, 죽음을 생각했던 자신의 이야기, 자식처럼 사랑했던 강아지의 죽음이야기 등 풍성하고 깊은 나눔 속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힐링토크 같은 토론에서 아름다운 삶을 보았습니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삶을 말 하는 것 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때인가는 공평하게 주어지는 죽음, 그것이 두렵지도 않고 삶이 아쉽지도 않은 때, 그런 때 죽음이 찾아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서영샘의 가지를 넣은 샌드위치 잘 먹었습니다. 이순례샘, 열무보리밥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영희샘, 시원한 냉커피와 레모네이드로 우리의 티타임을 즐겁게 해 주셨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두통이 심해서 못 나오신 엄선진샘, 유럽여행 중이라 못 나오신 김정희샘, 담주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