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나는 아픈 인간이다.'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어떤 소설가가 말하기를 ‘아픈 사람이 글을 쓴다’ 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 같은 40세의 하급관리 주인공은 삶에 대한 은폐된 불안과 은밀한 증오에 시달리며 철저히 고립된 곳에서 수기를 씁니다.
1부 <지하>에서는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가 아닌, 지하로 상징되는 인간 내면을 ‘의식의 흐름‘ 기법 속에서 기록한 음습하고 불안해하며 좌절하는 병든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주인공의 지하 공간은 가상의 논쟁을 준비하는 동시에 타인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자기합리화와 욕망을 모순적으로 경험하는 곳입니다.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는 24세 때의 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교와 부딪친 치욕감, 동창들에게 당한 따돌림, 동창들을 찾아간 곳에서 만난 창녀 리자, 리자가 집으로 찾아왔을 때의 당황스러움 등이 분열된 내면의 심리상태와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독백형식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이 소설은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피력 된 ’공리주의‘ 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인간이 정말 원하는 것은 종속되지 않은 ’자유의지의 실현이지 자연법칙의 순응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창작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작가의 창작과정을 두 시기로 구분하는 전환기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후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출판합니다. 이 다섯 작품들 속에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나오는 철학들이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형과 함께 발간한 보수적 잡지 <<세기>>에 1864년 발표 되었습니다. 1860년대는 러시아 내외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시기였으며 도스토예프스키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시기였습니다. 첫째부인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가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본인은 발작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병적인 실존이 괴상한 주인공을 통해 과잉된 의식과 조장된 분열로 뒤엉켜 기록되었습니다. 죽음의 언저리를 지나온 사람의 눈으로 본 삶에 대한 냉소로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부정합니다.
‘톨스토이는 위선적인 면이 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위악적인 면이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구도의 길을 향했지만 그저 구도의 길로 끝난 톨스토이 보다는 악에 빠지기 쉬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작품속에 구현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더 끌리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는 첫 부인 사망 후 속기사로 고용했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하고 십수년 동안 대작들을 발표합니다.
1881년 폐동맥 파열로 사망하고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카야 대 수도원 묘지에 묻혔습니다.
토론 때에 나온 공통적인 내용은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고통에 대한 통찰이 대단하다’ ‘내 안에 있는 불편한 것을 끄집어냈다’ ‘자학의 정서가 있다’ ‘추억이 나를 누를 수가 있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지하세계는 이 주인공 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내게도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지하세계가 있어서 이 주인공의 넋두리에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붉은 색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문장 속에 담긴 그의 의식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픈 인간이다.’
수업 시작 전에 정진희 회장님의 부군께서 손수 만드신 달콤한 케익이 즐겁게 하더니 수업 후에는 김정희샘이 주말 농장에서 농사지으신 상추를 푸짐하게 나눠 주셨습니다. 게다가 점심식사는 박서영샘이 인사동 헐리우드에서 진하게 쏘셨습니다. 식사 때 오신 정민디 선배님 덕분에 유쾌함이 배가 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아침에 만나서 저녁이 될 때까지 함께하는 즐거움을 온 몸으로 느낀 날 이었습니다.
영혼의 양식과 육체의 양식을 고루 얻어 갈 수 있는 러시아 고전읽기반 !!!
아이가 아파서 못 나오셨던 박화영샘, 일이 있어 못 나오셨던 이순례샘, 담주에 반갑게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