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큰 기대를 안고 읽었습니다. 30년 전 읽었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같은 엄청난 감동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엄청난 감동은 없었지만 잔잔한 아픔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토론 때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지금 우리의 사회현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으니까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조상은 타타르의 혈통이 섞였고 증조부와 조부는 정교회 사제로 우크라이나 브라트슬라바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 마하일 안드레비치가 출생합니다. 아버지 안드레비치는 모스크바 제립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군의로 복무하다가 뚤라에 농지를 매입하여 농노 100여명 규모의 소지주가 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버지가 군의관이던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 마린스키 자선병원에서 태어납니다. 3세경부터 유모가 들려주는 영웅담이나 환상적인 민담에 심취하고 4세경부터는 어머니 마리아 네차예바로부터 성서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저녁시간이면 러시아 문학 등 을 자녀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지만 인색하고 방탕했으며 독재적이어서 도스토옙스키의 음울한 성격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13세 때 모스크바의 체르마크 경영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15세 때 문학사 교사에 감화되어 푸쉬킨에 빠져듭니다. 17세 때 공병학교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 때문에 이때부터 발작이 시작됩니다.
18세 때 아버지가 농노들의 원한을 사서 비참하게 살해되는 충격적인 일을 겪습니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의 딸이 1920년에 공개해 처음 밝혀졌습니다.
하사관을 거쳐서 22세에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성 기술제도사로 근무하다가 다음해 중위진급과 동시에 제대하여 문학에 전념합니다. 발작의 <으제니 그랑데>를 번역하고 1846년 데뷔작<<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합니다.
1849년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사형집행 직전에 황제의 사면을 받아 목숨을 건집니다. 처형을 기다리던 순간의 심정이 <<백치>>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감형 후 4년 동안의 강제노동을 포함한 유형과 4년 동안의 국경 수비대 근무를 위해 14일간 도보 끝에 토볼스크에 도착했을 때, 데카브리스트 당원 부인들이 방문하여 10루블을 숨긴 신약성서를 선물합니다. 그는 평생 이 신약성서를 간직합니다. 그로부터 12일을 더 가서 시베리아 옴스크 강제노동 수용소에 도착 합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인간의 범죄 심리, 죄의식의 원인, 악의 전형과 진정한 인간의 모습 등을 탐구하고 <<죄와 벌>><<죽음의 집의 기록>>등에 반영합니다.
유형이후 도스토옙스키는 슬라브주의와 신성(神聖)으로 향합니다. 이는 악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그의 작품으로 나타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페테르부르크의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쉬킨과 불행한 처녀 바르바라와의 불우한 사랑을 그린 왕복 서간체로 된 소설입니다.
꽃피는 봄 4월에 시작 된 사랑의 편지는 가을의 9월 마지막 날 이별과 아픔을 고하는 편지로 끝납니다.
첫 번째 편지에서, 부엌에 딸린 방에 세 들어 사는 마카르가 창을 통해 보이는 바르바라의 집 창문에 봉선화 화분과 접혀진 커튼을 보면서, 그녀도 자신을 생각할 거라 느끼며 편지를 씁니다. 그렇게 사랑에 들뜬 편지는 바르바라가 돈 많은 늙은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 마카르를 떠나게 되자 절망을 토해내는 편지로 마감합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가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공산 적 사회주의’ 사상에 젖어 있을 때 썼다고 합니다. 이 속에는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착한 사람들이 그려졌습니다.
토론 때에 ‘신파조의 연애편지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격려는 변치 않는 기다림이다’ ‘내 옆의 아픈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가난하면 자존심을 지킬 수가 없다. 비굴할 수밖에 없다’ 등등 많은 이야기 중에 요즘 취직을 못하는 젊은이들이 빈곤으로 떨어 질까봐 걱정까지 하면서 다양하고 안타까운 사회현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토론의 백미는 엄선진샘이 군복무중인 남자친구와 3년간 주고받았다는 연애편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결혼하여 지금까지 알콩달콩 살고 계십니다.
수업이 끝난 후 인사동 헐리우드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사장님이 피자를 써비스로 주셔서 더욱 식탁이 풍성했습니다.
엄선진샘, 떡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번 주는 결석이 많았습니다. 공청회 참석하느라 못 나오신 정진희 회장님, 시어머님 병원 모시고 가느라 못 나오신 박화영샘, 따님 만나느라 못 나오신 이순예샘, 급한 일이 생겨 못 나오신 김정희샘, 미국에 계셔서 못 나오신 박서영샘, 다음 주에는 꼭 뵈요.
다음 주에 할 <<지하로 부터의 수기>>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