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소설가의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중 한 편을 공부했습니다.
<순이삼촌>과 <지사에 숟가락 하나>로 유명한 작가는 이 책에서
문학 인생과 늙어가는 소설가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소설가는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말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노년>이란 글은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라고 시작합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내 몸을 끌어당기는 지구 중력이 두려워진다.’고 합니다.
노인이 될수록 등이 굽어지는 것도 이런 현상 중 하나이겠지요.
‘어느 날 중력에 완전히 굴복하여 잔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는다.’는 대목에서는
죽음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정년을 맞아 일에서 쫓겨났을 때, 노년은 더욱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평생 시간에 쫓기면서 시간의 노예로 살아온 탓에,
이제 그 시간에서 해방되었음에도 전혀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하게 시간의 압박을 받는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시간뿐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백치의 공허한 표정으로 밀려온다.
일이 빠져나간 빈껍데기 시간들,
그 공허한 시간 속에 전에 없이 자주 출몰하는 것은 죽음의 그림자다.
그러니까 지난 시절 나는 내 몸 속의 죽음을 잊기 위해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았던가보다.‘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잊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존재가
한가한 노년에는 자주 다가오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이반 일리치가 죽자마자 그토록 오랫동안 유숙했던 죽음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왔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이 납니다.
삶은 죽음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사회 명사로 활동했던 이들일수록 자기 이름의 노예로서 일생을 살아온 터여서
세상이 그 이름을 잊는 걸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다.
이름이 높은 사람일수록 두 번의 죽음을 겪게 되는 것이다.‘
유명세를 타는 사람일수록 잊혀져가는 두려움이 큽니다.
그래서 ‘명성이란 바로 그의 주변에 밀어닥친 오해의 총계에 불과하다.’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내 안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 도시 밖으로 자주 나간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아무리 자연을 쳐다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은
자연에게는 인간의 욕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되풀이 되는 행동이 싫증이 안 나는 것도
순진무구한 아기들과 자연이 닮았기 때문이지요.
‘장작불이 잦아들어 잉걸불이 되었을 때, 조용히 ,침착하게,
은근히 사위어가는 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풍은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것이 아니라
초록의 생명이 마지막 정열로 뿜어내는 절정의 환희일 것이다.’
작가는 노년에 대한 탄식으로 끝내지 않고
노년이기에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나이듦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해
포기할 줄 아는 여유와 자유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팔십여 년 만에 찾아온 오월의 폭염이 수그러들 모양입니다.
실종된 봄이 마냥 서운하지만 마음만은
늘 싱그러운 초목들처럼 살고 싶습니다.
봄 학기는 오늘로 마침표를 찍고
다음 주에는 여름학기 개강을 합니다.
스승님과 문우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