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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은 의미부여입니다.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6-05-09 19:44    조회 : 3,527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걸으며

발이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지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려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세련된 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솔함이 드러나는 시입니다.

 

슬픔의 제방이라고 할까요?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면

작은 절망에도 무너져 울게 됩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작은 자극에도 무너지는 것이지요.

시련을 겪은 시인이 꾹꾹 참았던 슬픔은

붉디붉은 동백꽃을 보는 순간  울음으로 터져나옵니다.

그까짓 사랑 때문에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나훈아의 가요가 떠올랐다는 미경님의 말에 모두들 웃었지요.

트로트 가수로 유명한 현철의 노래 가사 중 대부분이

하이네의 시에서 따온 것이라는 스승님의 말씀에

모두들 놀랐지 말입니다.

사랑은 나비인가봐가 하나의 예입니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아주 유명한 시이지요.

이 시인의 시 중에서도 좋은 시입니다.

남자는 마흔 살에 대해 시를 많이 쓰는 반면

여자는 서른 살에 대해 시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여자들에게 결혼과 더불어

아름다움의 절정이라는 심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흔에 대해 공자님은 불혹이라 하여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남자들은 마흔에 오히려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아마도 공자님이 반어법을 쓴 것이 아닐런지요.

사랑은 힘들게 찾아오지만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끝이 나곤 합니다.

초록은 꽃과 다르게 힘들게 오고 또 힘들게 가지요.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에>에는

초록이 지쳐서 단풍 드는데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일 년 중 거의 반년을 살다가 가는 초록은

짧은 생을 살다가는 꽃과는 다릅니다.

 

<나는 표절 시인이다>라는 스승님의 산문에는

자연과 인생을 표절해온 시인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시를 위해 강물 두어 되를 빌려다 문장의 독에 붓고

꽃향기 서너 종지와 새 울음 한 봉지를 꾸어다

시의 텃밭에 뿌린다고 합니다.

새의 날개짓에 밑줄을 긋고

바람 없는 날 비단실처럼 흐르는 강물에 밑줄을 긋습니다.


햇빛에 반짝반짝 강물이 웃거나

달빛에 글썽글썽 웃는 것을 윤슬이라고 하지요.

강물에도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자라처럼 목을 어깨 속에 감추고 언덕길에 숨 흘리는

노인의 신발 뒤축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살아오면서 담아놓았던 길들을 하나씩 풀어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몸을 필기도구로 삼아 죽는 순간까지

인생이란 두꺼운 책 한 권을 씁니다.

사고사의 경우 미완성의 책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는 공상과 상상을 질서화 시키는 것입니다.

공상과 상상을 많이 할수록

글쓰기는 향상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돌 속에서 형상을 발견하고 나머지를 버릴 뿐이다.”

, 수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견이 중요합니다.

발견은 결국 의미부여입니다.

내가 경험한 숱한 소재들 속에 의미를 부여하면 글이 나옵니다.

 

오늘은 성희님이 갖고 오신  예쁜 색깔의 무지개떡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종종 터져 나오는 웃음들이 강의실을 활기차게 해 주었고요.

봄 학기의 마지막 달이 자꾸 흘러가고 있네요.

아름다운 계절 5월에 색다른 의미부여를 통해

멋진 글들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진미경   16-05-09 23:33
    
군더더기 하나 없으면서도 빠트리지 않고 강의를 그대로 살린 반장님의 멋진 후기!
늘 고마운 선물입니다.  수고많으셨어요.
미켈란젤로가 돌에서 형상을 발견했듯이  매일 한 페이지씩 인생을 써 나가는 우리도
유의미한 작품을 만들기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영미시인의 선운사에서를 읽다가 이런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요리는 힘들어도 먹는 건 순간이더군.
아 이러면 안되는거죠!
진지함을 잃지않도록 정진해야겠습니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 윤슬! 등등
월요일 수업에서 많은 것을 배우니 이보다 더 좋은 봄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름다운 오 월의 한 주 보내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뵐게요. 그럼 안녕~~ ^^.
     
한지황   16-05-10 08:09
    
어제도 미경샘 덕분에 수업은 활기로 가득했지요.ㅎ
스승님께도 활력소인 미경샘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존재랍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나이가 들수록 심각하기보다 그냥 웃고 떠들고 싶을 때가 많지요.
타인에게 웃음보시를 하는 것 만큼 큰 선물이 있을까 싶어요!
공인영   16-05-10 14:25
    
비 요일엔.... 우리 안으로 젖어드는  마음을  달래며  그저  가만히 있어보는 일도 좋겠구요, 아니면 젖은 시 한 편 나즉이 읽어가며  소리의 온기로 문자의 습기를 말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구요. 어쩌면 부침개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그대' 와 눈맞춤하는 게  제일 좋을 것만 같기도 ㅎㅎ 그러면서 스승님 말씀처럼 자기 안에 녹아있는 생의 의미들을 하나씩 일으켜세워 그것들에게 생명을 입혀줄 수만 있다면야 와! 얼마나 행복할까요... 다정한 두 분과 이렇게 먼저 눈맞춤합니다. 남은 5월도 우리 잘 건너기로 해요^^ 행복한 수업이었어요. 반장님 수고 많으셨고 미경씨 땜에  늘 수업이 달달합니다. 땡큐!
     
한지황   16-05-10 15:41
    
소리의 온기로 문자의 습기를 말려보다.
와! 멋진 시적표현이네요!
학습효과가  이렇게 즉시 발휘되다니  배움의 중요성에 다시 한 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제 비는 그쳤고 모처럼 내린 생명수에 촉촉해진 대지는 황홀한 기분에 취해있겠지요.
인영샘의 마음에도 달콤한 시어들이 마구마구 솟아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