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걸으며
발이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지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려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세련된 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솔함이 드러나는 시입니다.
‘슬픔의 제방’이라고 할까요?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면
작은 절망에도 무너져 울게 됩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작은 자극에도 무너지는 것이지요.
시련을 겪은 시인이 꾹꾹 참았던 슬픔은
붉디붉은 동백꽃을 보는 순간 울음으로 터져나옵니다.
‘그까짓 사랑 때문에’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나훈아의 가요가 떠올랐다는 미경님의 말에 모두들 웃었지요.
트로트 가수로 유명한 현철의 노래 가사 중 대부분이
하이네의 시에서 따온 것이라는 스승님의 말씀에
모두들 놀랐지 말입니다.
‘사랑은 나비인가봐’가 하나의 예입니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아주 유명한 시이지요.
이 시인의 시 중에서도 좋은 시입니다.
남자는 마흔 살에 대해 시를 많이 쓰는 반면
여자는 서른 살에 대해 시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여자들에게 결혼과 더불어
아름다움의 절정이라는 심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흔에 대해 공자님은 ‘불혹’이라 하여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남자들은 마흔에 오히려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아마도 공자님이 반어법을 쓴 것이 아닐런지요.
사랑은 힘들게 찾아오지만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끝이 나곤 합니다.
초록은 꽃과 다르게 힘들게 오고 또 힘들게 가지요.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에>에는
‘초록이 지쳐서 단풍 드는데’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일 년 중 거의 반년을 살다가 가는 초록은
짧은 생을 살다가는 꽃과는 다릅니다.
<나는 표절 시인이다>라는 스승님의 산문에는
자연과 인생을 표절해온 시인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시를 위해 강물 두어 되를 빌려다 문장의 독에 붓고
꽃향기 서너 종지와 새 울음 한 봉지를 꾸어다
시의 텃밭에 뿌린다고 합니다.
새의 날개짓에 밑줄을 긋고
바람 없는 날 비단실처럼 흐르는 강물에 밑줄을 긋습니다.
햇빛에 반짝반짝 강물이 웃거나
달빛에 글썽글썽 웃는 것을 ‘윤슬’이라고 하지요.
강물에도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자라처럼 목을 어깨 속에 감추고 언덕길에 숨 흘리는
노인의 신발 뒤축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살아오면서 담아놓았던 길들을 하나씩 풀어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몸을 필기도구로 삼아 죽는 순간까지
인생이란 두꺼운 책 한 권을 씁니다.
사고사의 경우 미완성의 책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는 공상과 상상을 질서화 시키는 것입니다.
공상과 상상을 많이 할수록
글쓰기는 향상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돌 속에서 형상을 발견하고 나머지를 버릴 뿐이다.”
시, 수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견이 중요합니다.
발견은 결국 의미부여입니다.
내가 경험한 숱한 소재들 속에 의미를 부여하면 글이 나옵니다.
오늘은 성희님이 갖고 오신 예쁜 색깔의 무지개떡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종종 터져 나오는 웃음들이 강의실을 활기차게 해 주었고요.
봄 학기의 마지막 달이 자꾸 흘러가고 있네요.
아름다운 계절 5월에 색다른 의미부여를 통해
멋진 글들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