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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문 강의실 월요 인문반-
“사과 할까요, 고백 할까요”
이 한 소절에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G들나라 노동절에
800만이 한국에 몰려 온답니다.
‘태양의 후예’ 드라마 촬영 세트장을 부쉈다가 다시 지었다가,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랍니다. 에효효
나는 그들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빅토르 위고>를 모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모르는게 약입니다.
적어도 나처럼 위대한 작가를 배반해야하는 고통을 격지는 않을 거니까요.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무시하는 내 심정을 그들이 어찌 알겠어요.
위고 선생님을 알았던 나의 십대에는 나도 안소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있을 법한 노트르담 성당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짜이지엔”를 외치며 유시진 대위를 보러오는 유커들의 심정을 압니다.
그들의 현재 문학은 명작은 ‘태 후’입니다.
위안화를 마구 뿌려 치맥을 먹으며 대위의 말 한마디를 현장에서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꽃미남의 달콤한 말에 젖어 다시보기를 누르는 나, 영혼이 백만 번 순수한
콰지모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속물은 과연 기요틴 감일까요.
인문 명작반에 나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죠
*불순한 학생을 크게 품어 주신 교수님에게 들은 강의 내용 중 일부*
위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를 민중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파리의 노트르담》은 1831년에 출간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처녀 에스메랄다, 그녀에 대한 뒤틀린 연정에 사로잡힌 노트르담의 부주교 프롤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복잡한 구성, 살아 숨 쉬는 듯한 인물 묘사, 격정적인 문장, 미와 추의 강렬한 대립 등 낭만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5세기 파리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모두 이 작품에 근거한다'라는 평을 들을 만큼 파리의 뒷골목 정경까지 세밀하게 묘사된 대표적인 역사소설이다. 위고는 이 작품을 통해 마녀재판, 공개 처형 등 당대 사법 및 형벌 제도를 통렬히 비판했다. 이 작품은 발표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이로써 위고는 완전히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로 변모하면서 민중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사후에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