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일리야 에렌부르크(1891-1967)
1891년 키예프 유태인 가정에서 엔지니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 때 볼셰비키 지하조직에 가담하여 학교를 중단하고 후에 파리로 망명합니다. 파리에서 서구적 지성을 접하며 정치 망명자들과 어울렸고 피카소와 절친한 사이가 됩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혁명에는 동조하나 혁명정부에는 협조하지 않는 ‘동반자 작가’ 대열에 끼게 됩니다.
1923년 보헤미안적 기질과 문명비판 사상을 담은 <훌리오 후레니토의 이상한 모험>을 발표하여 걸작으로 인정받습니다.
1936-40년 ‘이즈베스티야‘ 지의 종군기자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2번의 스탈린상을 받은 후 1954년 <해빙>을 발표합니다.
1967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여 노보데비치 사원에 묻혔습니다.
<해빙>은 스탈린주의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소련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 지방도시의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을 예술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에렌부르크의 작품 중에서 보기 드문 서정적 소설로 평가 받습니다.
스탈린 시대에 금기시 되었던 예술의 자유, 개인적인 감정의 자립, 정치, 사상적인 경계성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문제들을 대담하게 다루었습니다.
그 시기의 얼어붙었던 동토대가 서서히 풀리면서 봄을 향해 가는 뚜렷한 징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토론 때의 이야기로는
“공장안에서 근무가 끝난 후에 진지한 문학토론을 하는 것이 놀라웠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대화에서 푸쉬킨이나 레르몬토프의 시가 인용되고 낭송하는 것에서 러시아의 저력을 보았다.”
“억압받지 않는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랑이란 보이지 않는 힘도 있고 이기심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기적인 사랑이지만 ‘이럴 수 있어. 이게 사람들의 삶이야.’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프로파간다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평가되었을까 궁금했다.”
등등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해빙>이라는 제목의 상징성 때문에 이 소설은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제목 하나로 그 시대를 대변한 선두주자가 되었고, 스탈린이 격하되기 시작한 무렵에 나오면서, 얼어붙었던 시대가 녹아버리는 겨울의 끝자락을 알리는 소설이 되었습니다.
화면으로 본 러시아 해빙기의 사진과 그림은 퍽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직은 많이 쌓여있는 눈 밑으로 녹아내리는 물길과, 곧 물이 오를 나무들이 봄을 기다리는 풍경은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습니다.
바쁜 일이 있었음에도 수업 끝 무렵에 최선을 다해 달려오신 유병숙샘과 박화영샘, ‘아름다운 지각‘ 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탈리아 문학기행 다녀오신 박서영샘, 초콜릿과 과자등 간식을 가져오셨는데 점심까지 사주셨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티타임 때는 이탈리아 이야기로 즐거움을 더해 주셨구요.
다음 주는 <마쪼라와의 이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