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쓴 글은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다는 것 말입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던 명백한 실수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인다고 하니...
그렇기에
자기가 쓴 글은 다른 사람이 반드시 봐주어야 하며,
일단 글을 썼으면 한 달쯤 묵혀두었다가 다시 봐야 한다고
선생님은 강조하셨습니다.
참!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고칠 거라 생각하여 대충 쓰라는 건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제대로 써야 한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합평한 작품
이신애, <잘 봐, 좀>
여양구, <잿밥에만 마음이>
하진근, <커피>
신성범,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막을 수 있었다>
오늘 함께 나눈 이야기
- 세계 어느 곳에 가든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건다. 전화가 연결되면, 첫마디는 언제나 같다.
“저예요, 엄마 딸.”
국제전화일 경우, 나는 기다린다. 세 마디 말이 아득한 대기권을 건너 엄마의 귀에 가 닿을 때까지 조금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러면 대답이 돌아온다.
“위얼? 내게 자식이라곤 위얼 하나뿐인데.”
“네, 저예요.”
“오, 위얼이구나. 지금 어디니?”
“홍콩이에요.”
“왜 통 날 보러 오지 않니? 언제쯤 올래?”
“어제 갔다가 오늘 아침에 헤어졌잖아요.”
“그래? 기억이 안 나는구나. 그럼 언제 또 올 거니?”
“일주일 후에요.”
“그런데 누구세요?”
“엄마 딸이요.”
“위얼? 내게 자식이라곤 위얼 하나뿐인데. 지금 어디니?”
“홍콩이에요.”
“왜 통 날 보러 오지 않니? 언제쯤 올래?”
.......
- 룽잉타이, 《눈으로 하는 작별》 중 〈엄마 딸〉에서
대만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고 하는 작가 룽잉타이의 이 수필에서 보듯이
‘치매’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도
엄마의 상태를 알게 하는 이런 것이 바로 형상화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어떤 문제에 대해 다룬 글이 칼럼을 넘어 수필 문학이 되려면
묘사를 통해 형상화를 해야 한다.
- 글을 쓸 때는 친절하게! 명확하게!
- ~로 인해 → ~ 때문에
- 전가통신(錢可通神)이라는 다소 낯선 고사성어를 글 중간에 쓰고 그 유래를 설명하느라 맥락을 놓치지 말고,
돈이면 귀신하고도 통한다는, 전가통신
이런 식으로 간단히 부연설명해 주고 본론에서 벗어나지 말자.
- 여간 어렵지 않다: ‘여간’이 부사로 쓰일 때는 뒤에 부정적인 서술이 따라야 한다.
이숙자 선생님, 하트 모양 증편으로 사랑을 전해주셨지요. 눈도 즐겁게 잘 먹었습니다.
이태리 여행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오신 김화순 선생님, 우경희 선생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반가웠구요, 선물로 가져오신 벨기에 초콜릿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장정옥 선생님도 보고 싶습니다.
성당 일정으로 못 나오신 고옥희 선생님,
그리고 송경미 선생님, 최영희 선생님, 한영자 선생님
다음 주에는 모두 만나 뵙길 바랍니다.
이옥희 선생님,
어려운 일 겪으셨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부디 몸이 온전히 잘 회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