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 선생님의 주역 특강 두 번째 시간입니다.
否終則傾 何可長也 비종즉경 하가장야
해와 달은 찼다가 기웁니다(易).
惡이 꽉 차면 변화가 옵니다. (음이 극에 달하면 1 楊이 시작됩니다.)
“더위가 너를 쪄 죽이고, 추위가 너를 얼려 죽이는 그 극점까지 가라. 그러면 고통이 없어지리라.”
노자의 일생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주나라가 망할 무렵 노자가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국경을 수비하던 관리인 윤희(尹喜)가 권하는 대로 5,000자의 글자로 道德經을 완성했다고 전해집니다.
독일의 사상가 슈테릭히는 이 세상에 단 세권의 책만 남기고 모두 불 태워야 한다면 <<도덕경>>이 그 세권 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답니다.
***동·서양의 모든 명작에는 주역의 이치가 들어 있고 노자의 도덕경의 기본도 주역의 이치와 통합니다.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 자연의 운행법칙(無爲)을 인간에 적용했습니다.
자연은 본래 그대로 있으면 그대로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한편 공자의 유가는 나라의 혼란의 이유를 인간성 상실에 두었고, 人爲를 통해 회복해야한다고 합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교육을 강조한 공자 보다, “내 본성을 잘 지키는 것을 강조한 노자의 사상이 보다 고등한 인간상을 추구합니다.)
性相近 성품은 서로 가깝고
習相遠 학습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
큰 道란, 노자에 의하면 無爲自然의 道라 합니다.
無爲而 無不爲
이는 노자 사상의 핵심으로 “의도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자연은 의도하지 않아도(無我) 이루어진다.”
왜?
ego, 즉 이기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현자(이인異人)는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道는 불변의 실체이므로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만물에 작용하는 것은 道의 작용입니다.
도의 작용을 노자는 德이라 했습니다.
근본으로써의 道, 즉 本體이고
작용으로써의 道를 현상이라 합니다.
生而不有 낳았으되 소유하려하지 말고
爲而不恃 행하더라도 거기에 기대하지 않으며
長而不宰 지도자가 되어도 지배하거나 군림하지 마라
(노자는 이 말을 다른 장에서도 재차 강조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러셀도 일찍이 도덕경을 섭렵한 듯,
소유 없는 생산,
자기주장(이기심)없는 행동,
지배 없는 발전으로 해석했습니다.
다음은 도덕경의 첫 머리에 나오는 말입니다.
道可道 非常道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고
名可命 非常名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無名 天地之始 이름이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有名 萬物之母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그러므로 항상 하고자하는 욕심이 없는 것으로 미묘한 본체를 살피고
常有欲以觀其? 항상 하고자하는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핀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며 둘 다 현묘한 것이 라 한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현묘하고 현묘한 모든 묘리가 나오는 문이다.
도인은 마음이 無心하므로 吉凶이 따라붙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점을 치면 귀신이 점괘를 말해 줍니다. 그러면 귀신을 어떻게 알까요?
귀신은 나의 言行을 통해 압니다. 그러므로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모든 것은 내 말과 행동에 드러나 있습니다.
하늘도 하루종일 찌푸린 얼굴을 펼 줄을 모릅니다. 며칠째 온 나라를 멘붕에 빠트린 사건, 이 엽기적인(?) 사건에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우리를 끝없는 자괴감에 빠지게 합니다.
무속인에 불과한 한 개인의 아바타가 된 대통령, 온 나라가 휘둘린 초유의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고난과 고통은 생을 통해 누구나 피해가지는 못합니다. 물론 그 輕重의 다름은 있겠지만.
고통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성숙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은 누군가의 힘을 빌어서가 아니란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내 마음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글을 쓰는 우리는 조금은 더 ‘내 마음의 중심 찾기’에 근접해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겠습니까?
조금은 지괴감에 빠졌을 우리 샘들께 사랑과 위로를 보냅니다.
오늘도 더욱 찐~~하게, 우리 샘들 알러뷰**^**
***반장님께서 赤壁賦 원문과 해석본, 소동파의 생애, 후적벽부, 소동파의 문학세계와 적벽부 등을 프린트 해서 나눠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어도, 가슴에 품고만 있어도 흐믓하네요.
깊어가는 가을 밤 명시를 통해 우리 마음을 달래봅시다.
아직 여행중이신 임헌영교수님과 문우님들 기억에 남을 좋은 시간 보내시고 내내 평안한 여행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