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 이재무
늦은 밤 어깃장 놓는 불면
어르고 달래 가까스로 잠드는데
모기 한 마리
얼굴 언저리에 와서 귀찮게 군다
극소량의 피로 연명하는 날것들
매순간 목숨 걸어 남기는
잠시잠깐의 가려움으로
겨우겨우 존재를 증명하는 날것들
제목과 소재가 은유적 관계인 시입니다.
불면이라는 추상어가 어깃장을 놓는다고 의인화하였습니다.
마치 카프카가 ‘문지방에서 불면이 쳐다보고 있다’고
유체이탈 화법을 쓴 것과 같습니다.
시는 바로 모기와 같습니다..
제목이 모기였으면 시가 될 수 없었지만
시라는 제목을 붙였기에 시가 되었습니다.
시인의 사회적 지위가 갈수록 낮아져가고 있음을
먹이사슬에서 아주 하찮은 존재인 모기에 빗대어 썼습니다.
시를 소재로 시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쓴 메타시입니다.
참, 나무 나라 / 이재무
다인종 나라 달동네 주민들처럼
참나무에는 종 다른 생명들 엇섞여 살고 있다
자잘한 분쟁과 소소한 분란 끊이지 않으나
송사가 없는 푸른 나라 벌레 주민들은
선거를 치르지 않아 위원 없고 남용 없고 횡령이 없다
지붕 없는 노천 학교에서 생활 배우고 익힌다
국방, 납세 의무는 없어도 근로 의무는 있어
자신의 끼니는 자신의 노동으로 해결한다
잉여와 투기 뉴타운 재개발이 없는
참, 나무 나라 우듬지 구름 정거장엔 구름 차들
수시로 들락거리며 먼 이방의 소식 물어다 주기도 한다
주민들은 외지에서 날아와
감언이설 지저귀며 호시탐탐 목숨 노리는 새들이 무섭다
나무 밑동에 전기 톱날 대지 마라
한 참나무는 하나의 국가다
참나무는 상수리나무입니다.
우리는 흔히 상수리를 도토리와 혼동하는데
상수리는 도토리보다 더 동그랗고 크다고 하네요.
참 과 나무 사이에 쉼표를 넣은 이유는
나무 중에서 최고라는 ‘참’자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시인이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요.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참나무는
상수리 열매가 저절로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못한 마을 주민들이
줄기를 향해 머리만큼이나 큰 돌멩이를 던져서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그 상처에 진물이 마를 날이 없지만
벌레들이 모여 살면서 그 진물을 빨아먹지요.
참나무가 한 그루 죽으면
벌레들은 다른 나무로 이주를 해야 합니다.
사람으로 친다면 보트 피플의 운명이 되는 셈이지요.
벌레들에게 참나무의 죽음은 전쟁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톱날을 대지 말라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만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벌레들의 세계에도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숫겨울 / 이재무
가스와 기름불로 덥힌 난방
두껍게 껴입고도 마음 추워오는 날
부뚜막 온기 불쑥 그립다
쭈그려 앉은 엄니가 하염없이 넣어주는
잘 마른 나무줄기와 가지와 이파리 꾸역꾸역
받아 삼키던 아궁이의 깨끗한 식욕
밤새 차가워진 온돌의 몸을 데웠지
잘 마른 나무일수록 연기의 향과 결이 고왔지
삶의 나중도 그러하리라
수평의 물을 수직으로 끌어올려 살았던 나무들
불 만나 재로 남은 것은 밭으로 갔고
영혼은 연기로 날아올라 산으로 갔지
시인이 만든 숫겨울이란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난방을 껴입고도 추운 날은 부뚜막이 그립습니다.
부뚜막이 그립다는 것은 그만큼
부뚜막의 주인이었던 엄마가 그립기 때문이지요.
나무라고 다 향이 같지 않듯이
열심히 살아야만
즉 나를 다 연소하고 소진한 삶만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시인은 생각합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그날까지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박경리 소설가 ,박완서 소설가처럼 말입니다.
시월은 한 주만을 남겨놓고 서서히 이별을 고하려고 합니다.
다섯 시를 넘어가며 끝난 수업시간,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날은 시나브로 겨울을 닮아가고 있었고
저물어가는 석양이 왜 그리 쓸쓸해 보이던지요.
우리가 함께 하는 문학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11월은 얼마나 외로운 달이 될까요?
벗들이 더욱 소중해지는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