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
‘소아성애’ 라는 추악하고 역겨운 소재로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에 놀랐습니다.
작가 나보코프는 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볼셰비키 혁명 때 가족 모두 크리미아로 도주했다가 베를린으로 망명합니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할 무렵 베를린에 있던 아버지가 러시아 극우파에 의해 암살당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유대계 러시아인인 베라 슬로님과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시린’이라는 필명으로 여섯 편의 소설을 유럽에서 출간합니다.
러시아 문학과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그가 미국에 정착한 후 교수직을 얻고 영어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받은 영어교육 덕분이었습니다.
<<롤리타>>는 미국 내에서 출간을 거절당하고 1955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됩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자 프랑스에서 발매가 금지되고 영국의회에서는 책의 출판 여부를 놓고 논의를 벌이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곡절 끝에 미국에서도 출간된 롤리타는 3주 만에 10만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관심을 끕니다.
이 작품 속의 ‘롤리타‘는 유럽문학에서 수백 년간 숭배되었던 초현세적인 완전함을 갖춘 단테의 ’베아트리체’나 페트라르카의 ‘라우라’ 같은 인물입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롤리타, 내 삶의 빛’ 으로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 여름날의 바닷가에서 어린소녀 ‘애너벨’을 사랑했던 험버트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애너벨을 닮은 소녀 롤리타를 보고 그녀에게 미친 듯이 빠져듭니다. 천진함과 기만, 매력과 천박함, 어두움과 명랑함을 함께 지닌 그녀와 비정상적이며 비상식적인 욕망의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과거의 ‘바닷가 공국’이 낳은 운명적 결과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롤리타’를 둘러싼 논란으로는 ‘늙은 유럽이 젊은 미국을 농락하는 이야기’ 라거나 ‘젊은 미국이 늙은 유럽을 농락하는 이야기’라는 등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여러 논란에 대해 작가 나보코프는 “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쓰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다. ‘롤리타’는 가르침을 주기위한 책이 아니다.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예술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의미가 있다. 그런 책은 흔치않다. 나머지는 모두 시시한 졸작이거나 이른바 관념소설인데 언젠가는 누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서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 만을 힘차게 때려 부수리라” 하고 일갈했습니다.
영어로 소설을 쓴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개인적 비극은, 내가 타고난 모국어, 즉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내게는 두 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다는 사실이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은 마술사처럼 연미복 뒷자락을 펄럭이며 자기만의 절묘한 방식으로 전통을 뛰어 넘을 수 있지만 나의 영어에는 그런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이렇게 말했지만 ‘롤리타‘에서 보는 그의 문장은 능란함을 넘어서 영어를 희롱하듯 언어유희를 하고 있습니다.
험버트와 롤리타의 사악한 매력과 내면의 움직임, 상황, 장면에 대한 묘사들은 눈에 보이는 듯 섬세하고 유려하게 그려졌습니다.
작품에 대한 독후감은 다양하고도 열띤 토론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잭슨‘과 ’은교‘가 생각났다. 미국에서는 이 책을 거의 못 읽게 한다.”
“유럽남자가 미국소녀를 농락했다는 반미 소설 일 수 있다.”
“작가가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한 것 같다.”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인가를 낱낱이 파헤쳤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성적인 문란은 존재한다.”
“예술을 즐기려면 도덕성은 배제하자. 예술작품으로만 보자.”
“도덕을 배제하고 읽으면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작품을 온전히 즐기자는 생각으로 읽었다.”
“이 책은 중동에서는 금서 1위에 있다.”
“많은 남자들이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해도 심리적으로는 성적인 타락을 범했을 수 있다.”
“험버트와 롤리타는 서로에게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다.”
“작가는 용감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이미지와 감정을 사랑한다.”
“롤리타를 영화로 볼 때도 책으로 읽을 때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험버트도 나쁘지만 롤리타도 질이 안 좋은 소녀이다.”
이 책을 번역한 분은 ‘이 번역은 미완성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치고 또 고치겠다. 그러나 결론을 내려 줄 나보코프가 이승에 없으니 영원한 미완성일지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롤리타’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나오신 이순례샘 반가웠습니다. 롤케익도 감사하구요. 직접 주말농장에서 키운 고구마를 쪄 오신 임명옥샘, 상추를 주신 김정희샘 감사합니다.
구하기 어려운 책들 새로 만들어 주신 김은희샘,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 <매머드 사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