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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을 흔드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글쓴이 : 한지황    16-10-17 18:52    조회 : 2,945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아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자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 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또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 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리어카 바퀴 /이재무

 

리어카 바퀴를 보면 숙연해진다

 

자전거 바퀴를 보면 경쾌해지고

오토바이, 자동차, 기차바퀴를 보면

어지럽고 섬뜩해진다

 

세상은 갈수록 빠르게 구르는 바퀴를 선호하지만

나는 리어카 바퀴를 구르고 싶다

 

힘들이지 않으면 구르지 않는 바퀴

사람의 걸음과 보폭에 나란한 바퀴

 

짐의 무게에 민감한,

오르막길엔 끙끙대며 땀을 흘리다가도

내리막길엔 제법 속도를 낼 줄 아는 바퀴

 

평지에서는 표정이 없는

추월을 모르는, 새치기 하지 않는,

고지식한 정직, 근면하게 걸어가는 바퀴


여생을 저 바퀴와 함께 하리라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외적 형태인 둥근 모양을 가지고 친화적인 느낌을 노래한 반면

<리어카 바퀴>는 바쿠의 성질을 가지고 부정성을 노래했습니다.

정직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리어카 바퀴>

맹수의 이름을 갖고 있는 갤로퍼, 무쏘 등이

약한 짐승을 잡아먹듯 길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언어유희에 해당되지요.

바퀴라는 동일한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하나의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시적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위한 관계망을 드러내고

우리의 시야를 열어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위의 말은 요즘 개인적으로 읽고 있는

신영복님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인용했습니다.

 

 

 

비단길 2 / 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 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 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습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賢者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 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던 잠시 눈물로 마음 덮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젊은 날 실수하고 좌충우돌하면서 잘못 든 길.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지도를 만들고 역사를 만듭니다

낯선 경험이 익숙해지면 습관이 되고 운명이 되는 것이지요.

 

 

현기영 소설가의 수필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중에서

오늘도 걷는다마는를 공부했습니다.

기행문으로 여행은 나른 시간으로의 이동이며

속도로부터 탈출임을 깨닫게 해주는 수필입니다.

땅은 인간을 평생 동안 아래로 끌어당긴다.’

노인이 될수록 굽어져가는 허리를 잘 묘사했습니다.

그 중력을 견딜 수 없어 엎드려버린 노인.

조만간에 그는 자연스럽게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는 문장이 이어지면서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낙오자’, ‘길가에 주저앉았다.’는 표현도 죽음을 나타냅니다.

풍경을 흔드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다.’는 시적 표현이 좋습니다.

 

시와 수필이 있는 시월의 강의실.

가을이 무르익어 아름다운 시월에 읽어보는 글이 더 향기롭습니다.

남아있는 시월이 사라지기 전에

가을향이 물씬한 회원님들의 글을 많이 만나보고 싶습니다.

 

 

 

 

    
 
 


 

 


진미경   16-10-17 22:37
    
시와 수필이 어우러진 재미있는 후기는 다시 읽어도 좋아요. !!!
독서토론 시간에 만났던 라리구라스 꽃을 현기영 작가의 산문에서도 발견했어요.
한국에 진달래꽃이 있다면 히말라야 밑에는 라리구라스꽃이 있네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네팔의 꽃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수업시간 내내 한 번도 구경 못한 그 꽃이 궁금했어요.
엉뚱하지요 ㅋㅋㅋ

10월 중순을 지나고 있습니다. 일교차가 심해져서 곁에 가디건을 두어야 안심이 되네요.
시린 어깨를 덮어주는 가디건처럼  따뜻함이 함께하는 한 주 보내시고
만나요.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다음 주 독토 책이네요.
그녀의 안녕 , 주정뱅이가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조간신문을 통해 들었습니다.
참 좋은 가을되세요. ^^
한지황   16-10-20 15:54
    
저도 라리구라스 꽃을 같은 날에 두 번 만나니까 신기했어요. 
책을 읽기 전 까지는 그 꽃의 존재조차도 몰랐는데 말이죠.
라리구라스가  활짝 웃고 있는 히말라야를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요.
언젠가는 꼭 만나보고 싶네요.
권여선 작가의 수상소식 또한 막 그 작가의 소설을 읽은 후라서
더욱 반가웠어요.
우연이 두 번 씩 일어나다니.ㅎ
따스한 가을이 참 좋네요. 미경샘의 마음도 가을햇살 처럼  환하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