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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대학반 2016년 10월의 합평내용    
글쓴이 : 김선봉    16-10-07 08:15    조회 : 3,417



1. 별고을에 온 사드(THAAD)-이상술


주제가 무겁고 찬반논란이 있다. 

주제가 무거운 건 괜찮고 다만 이 글을 어떻게하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까. 그런 점으로 접근해보세요.

물론 이것도 재미있는데 이건 수필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논술, 논설적인 거에요. 그래서 이것을 약간 좀 더 부드럽게하는 방법. 

자기 주장을 너무 어필했잖아요. 그러지 말고 있는 사실, 돌아가는 상황들, 그런 여러가지 것을 보여줘서 독자가 판단하게끔. 한쪽의 얘기만 해서.

그것도 좀 필요할 것같아요. 자기주장만 내세워서. 글이 좀 거칠고 그러거든요. 

환경문제, 경제문제, 정치문제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포인트를 맞춰가지고 해야지. 이거는 너무 광범위해서.

제일 설득력있게 할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좀 차분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저자가 굉장히 흥분해있다는게 보여서. 좀 차분히해서, 어렵긴 하겠지만 객관적 시선이나 문체로 해서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독자가 더 불안할 것같아요. 읽다보니까 우리는 로봇이 아닌 사람이다랑 조금 비교가 되더라고요. 거기는 저자가 흥분한 어조가 전혀없이 오히려 인터뷰어들의 그걸 대치함으로 인해서 독자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끔 이끌어가고요.

가만있어. 이걸 누가 맡았지? 메모를 잘하세요.

멤버교체가 많이 되었네. 

원래 고객센터에서도 흥분해서 민원제기하는 고객은 안무서운데. 전혀 감정 드러내지 않고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고객이 진짜 무섭잖아요. 약간 그렇게 글을 올리면 설득력이 있을 것같아요.

이상술님. 누가 좀 맡아요. 방순이가 한데요.

우리는 로봇이 아닌 사람이다에 대비해서 첫째는 흥분하지 말기. 자기주장을 내세우되 자기주장은 숨어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에요. 자기주장을 숨기고 자기주장을 펼줄아는게 글쓰는 아주 능란한 방법. 자기목소리만 가지고 떠들어서는 오히려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아, 저 귀찮다. 그런 느낌을 주면 안된다 말이에요. 이게 첫번째입니다.그 다음에 또 두번째 방법. 지적하는 사항이 너무 광범위하다. 군사적으로까지 다 했단 말이에요. 사실 이런 거는 신문에도 나고, 전문가들은 더 잘알겠지. 그러니까 이런 거는 그냥 생략해도 되요. 생략해도 뭐, 아니면 압축해가지고 한문장으로 해야지, 이걸 수치를 가지고 대면 이것은 문이 되기 때문에. 수치를 대야될 때도 있고, 대지 않아도 될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수치를 대지 말고, 아주 간략하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수치를 대면 더 골치만 아프지. 또 지적해보아요.

이 글을 읽어볼 때 정말 멋진 장면이다 이런 건 어떤게 있었어요?

유림들이 전철... 그게 제일 좋았어요. 그렇죠. 이런 큰 무거운 소재를 다룰 때는. 그냥 핵심을 가지고 다루거나, 군사적인 면만 다루거나. 그러면 반대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거니까. 그리 해버리면 나름대로의 글이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그게 아니고 성주군민들의 뜻을 나타내고 싶고, 또 반대하고 2개란 말이에요. 성주군민들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같은 것. 그런 걸 엮어내면 휠씬 더 설득력도 있고 공감을 넓힐 수 있는, 지지하는 사람들이 봐도 아, 참 웃긴다. 그런 식으로 되는 걸 찾아보라고 그래요. 이걸 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면 아무 효과가 없지요. 지지하는 사람들이 봐야지. 그렇게 만들어야 된다. 그러니 참 어렵지요. 이게 애를 써서 쓴 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5째까지 나가는 건 너무해요. 이건 좀 전문적인 문제고. 그렇다고 저자가 군사적인 전문가도 아니고. 다 신문에 나왔던 것들 일텐데. 그중에서 핵심적인 자료만 가지고 와서 문학적인 표현이 필요한거고. 도입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역사선생 선배는... 참 좋잖아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란 말이에요. 모임에서 주장하는 걸 옮기는 방식으로 하던가. 형식으로라도. 그리해야지 막 자기목소리를 다 끝까지 낼려니까 힘이 든단 말이에요. 반 르포식으로 하면 쓰기도 휠씬 쉬워져요. 

이 글은 내용중에서 내용 전체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고쳐도 되고, 이 글은 이대로 살려도 돼. 나중에 자기가 단행본 내고 싶을 때 이 글을 그대로 넣고싶다하면 그대로 넣어도 되는데, 다만 널리 읽히는 잡지에 실릴려면 합평한 그대로 고쳐보란 말이에요. 


축제와 객-김희정

기행문은 기행문대로 썼고, 이 글은 이 글대로 다시 썼고. 이런 글을 기행체 수필이라고 했죠. 기행문과는 다른 기행체 수필. 기행체 수필이 뭐냐하면 기행을 갔다왔는데 기행문은 아니고 기행에서 느꼈던 것. 기행문을 그냥 쓰면 기행문이고. 기행체 수필하곤 다르단 말이에요. 

이 작가가 쓰고자 싶었던 것은 정확할진 모르지만. 축제에 가서 분위기를 느끼고 함께 막 일체가 되는. 그런 것이 축제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니까 그러지 않더라. 이것이 마치 우리 인생살이에 비유하면. 세상사는 것이 어렸을 때 생각했던 걸 보면 즐거울 것같은데 여러분 살아보면 다 그렇지 않지요. 그런 걸 쓴거에요. 맞지요? 비슷해요. 그렇게 봤을 때 이 글이 어때요? 

이 글 앞부분에 인용을 해놨잖아요. 그래서 인용에 맞춰 이 글을 만들었나 생각했어요. 글을 쓰고 인용문을 찾았다는 작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요. 본인이 그렇게 보여주면 되는거니까. 인용을 했었어야 싶나 이런 생각도 들었었고. 자기는 객이 아니야. 자기는 구경꾼이더라고. 그 안에서.

계속 사람들을 살피고 막 이러더라고요. 근데 처음에는 객일 뿐이다고 생각했는데 고향 생각하면서 나는 객이 아니다 고향에서는. 객이라는 것에 대해서 약간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또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도 또 객으로 지내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이구나 하고 이렇게 쉽게 얘기를 했더라고요. 축제라는 것에 대한 공감은 좀 떨어졌어요. 

저도 되게 걸렸던게 기행을 가서 쓴 건데 정보를 제가 주지 않았잖아요. 제가 그것이 좀 걸려서 기행은 따로 빼서 쓴 거거든요. 그 부분은 올 때까지도 걸렸던 것같아요. 마지막에 객으로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한거는. 계속 객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많은 날들 중에서 어차피 자기들이 주인인 처소로 돌아갈 처소가 있는거니까. 각자의 삶들이 있는거니까. 그 삶들 중에서 잠깐잠깐 이렇게 객으로 스쳐지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거거든요. 그래서 인생 전체로 봤을 때 객의 모습이 좋다는 것은 아니고. 어차피 자기가 주인의 모습으로 짊어지고 가는 삶들이 있으니까. 잠깐잠깐 축제의 객으로 지나가는 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넣어본 것같습니다.

지금 이 글이 작가가 말한대로 쓰기에는 그런 내용이 잘 안나타나서 독자들이 읽으면 애매한 거에요. 축제와 객이 될려면 이 글에 축제는 뭐고, 객은 뭐라는 것이 안나타나요. 실제로 객이라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객도 따로 없어요. 사람들이 다 객이겠지요. 그러지 않아요? 거기에 간 사람들이 다 객이지 주인이 어디있어요. 현지사람들 일하기 바쁠텐데. 장사하기 바쁘고. 다 객들이 가서 주인이 된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다만 나는 객인데도 주인이 되지 못했단 말이에요. 그게 왜 그럴까? 본인의 성질이 고약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농담으로 웃자고 하는 소리에요. 

내가 하는 요지가 뭐냐하면. 그 기행문은 따로 썼으니까. 그 자체로는 정보나 그런 건 이야기하지 말자고요. 그런데 실제로 기행문을 따로 썼다는 건 모를 거란 말이에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모를 때는 정보가 모자르단 소리를 할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정보는 싹 빼버리고. 거기가서는 어떤 축제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박수치며 혼연일체가 되는데 왜 나는 거기에 동화되지 못하는가? 그러면서 내 삶을.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나의 삶의 자세. 이런 걸 반성하면서 어쩌면 나는. 사실은 주인이 따로 없잖아요. 다 객이 가서 주인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이 글의 진짜 주제에 맞는 것이 아닐까. 


3 (르뽀) 밤의 고속도로는 알고 있다-박미옥

톨게이트 여성들의 시위현장을 르뽀로 썼다고. 마감 이틀전까지 개기다가 썼다. 원고료 30만원. 월간 좌파란 잡지. 긁을 읽으면서 좀 딱딱하며 지루하다고 느꼈다. 반면 지루하게 느끼지 않은 분은 흥분하지 않아 설득력이 있었다.

수필가들은 르뽀를 잘 써야 한다. 이것은 참 잘쓴 것이다. 기성 문인들도 이정도로 쓰기 어렵다. 문인들도 가끔 시켜서 르뽀를 쓰거든요. 쓰면 이 정도로 정리해서, 함축성 있게 하기 어려워요. 그정도로 잘 썼어요. 난 놀랐어요. 이 글을 보고. 그래서 어느 잡지에 내도 손색이 없는 글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다만 너무 취재자료가 많아 가지고. 취재자료가 많으면 그걸 잘 분류를 해야되요. 예를 들면 그 안에서 근무 중에 일어나는 일들 한덩어리하고 그 다음에는 상사들로부터 당하는 어떤 걸 또 하나 하고, 그 다음에는 지나가는 운전사들로부터 당하는 것 하나하고, 그 다음에는 각자의 개인생활하고 그런 카테고리가 있잖아요. 그런 카테고리를 잡아가지고 거기에 해당되는 걸 해야하는데 여길 보니까 조금 중복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앞에 나왔던 얘기가 또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걸 잘하면 굉장히 짧아집니다. 핵심만 딱딱 잡아내고. 아마 이거 삼분의 일은 없어져도 될 거에요. 그렇게 잘 정리하면. 그래서 앞으로 그런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어요. 

대화따는 것은 참 잘했고, 말하는 걸 딸 때마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라던가 제스쳐라던가 그런 걸 조금씩 넣을줄 아는. 그런 걸 자꾸 하다보면 나중에 소설쓰는 기술이 늘어납니다. 그런 관찰력이 필요. 너무 주제에만 초점맞추지 말고 실제로 그 사람들의 현장적인 삶. 그런 관찰력을 기르란 말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제대로 글쓸려면 이 분량의 반. 이정도 내용을, 이 분량의 반으로 줄일 수 있게 될때 그때 진짜 르뽀작가가 됩니다. 

이렇게 길면 인터넷에 올려도, 오마이뉴스같은데 올려도 이렇게 길면 안읽어요. 조금 보다 아, 이런거구나 하고. 왜냐하면 2-3장 보면 뒤엔 안봐도 다 알아요. 알기 때문에 읽을 필요가 없는거에요. 어떤 글도 끝까지 읽어야만 다 다 알 수 있도록 써야 합니다. 이거 2-3장 읽으면 아, 그 얘기 썼구나. 

그럼 뒤에 읽을 필요 뭐 있어요. 지루해지죠. 그러기 때문에 그런 걸 주의해야 해요. 그래서 재미를 말하는 사람 내용이 중점이지만, 말하는 사람의 어투, 제스쳐 이런 걸 넣어서 그 자체의 묘사가 재미있게. 그런 기술을 익히란 말이죠. 어쨌거나 계속 앞으로 이렇게 써보세요. 

이 글도 나중에. 자기가 단행본 낼때는 완벽한 걸 하기 위해서 한번 고쳐봐요. 내가 말한 그런 식으로 고쳐서 만들어 놔보세요. 그럼 아주 좋아요.

거기에 실린 거는 이거 그대로예요, 이거 반이에요. 엄마 간병하러 갔는데 거기에서 감성있게 넣으라고 해서 길어진거에요. A4 2장이. 

편집장이 알아서 빼겠지하고 늘렸어요. 이 정도면 수준급입니다. 아주 수고많았어요.



4. 난로처럼-방순이

써놓은지 좀 된 글이다. 합평회와서 교수님이 지적하신 정도나 이런 걸 넣어서 글을 쓸려고 하다보니까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써야 되나? 막 이런 고민이 들고, 처음처럼 글쓰는게 쉽지가 않다. 요즘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내가 계속 이렇게 써야되나. 책도 내가 너무 편식해서 읽은게 아닌가. 

좀 길면 지루하다 느끼고. 너무 신변잡기적인 글만 쓰는게 아닌가해서 딜레마에 빠져있었는데. 사실 이건 써놨던 글입니다. 요즘 그런 고민들은 계속 하고 있어요. 더 못쓰겠더라고요 처음보다. 4시간동안 오면서 빈손으로 오기가 그래서 써놨던 글을 올렸습니다.

참 잘썼어요. 잘 썼는데 그런데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방순이씨 글쓰는 건 우리가 다 아니까. 이거는 손댈 때가 없어요. 이런 소재로, 이런 내용으로 하는 감각도 있고. 문장이. 참 잘쓴 글입니다. 여러분들 느낌을 말해봐요.

너무 공감이 가는 글이라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이 가슴에 와닿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난로처럼이라는 비유가 안맞지 않아요? 난로는 뜨겁잖아요. 

따뜻한 걸 얘기하고 싶은데. 난로가 어떻게 따뜻해요? 뜨겁지. 손대봐요. 가까이 다가가면 뜨겁지면, 약간 멀어지면 따뜻한 정도니까. 아니, 난로처럼하면 난로의 본질을 말해야지. 비유가 안맞지 않아요? 이 글이 말하는 것과 난로처럼이 안맞잖아요. 난로는 어떤 난로든지 뜨겁거든요. 난로처럼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두기라고 말하는 방순이씨. 그렇지요. 거리에 초점을 둬야 하거든. 이글 자체로는 손볼데가 없어요. 그대로 잘 됐는데. 

이런 소재를 사람과 사람 사이. 특히 가족간의 사이. 가족이라는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인데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어렵지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글이 제일 어렵습니다. 이런 글로 성공한 수필이 없어요. 명수필에 이런게 하나도 없습니다. 왜 없느냐? 쓰기 어려우니까 안쓰는거야. 그럼 어떻게 쓰면 명수필이 되요? 여기 인용한 사람이 누구였죠? 혜민스님. 혜민스님이 난로처럼이라고 말했어요? 인간관계는 난로처럼하라고. 중의 신분이라 인간관계를 안해도 괜찮으나, 우린 살아가다 보면 그게 됩니까? 인간관계를 그야말로 일정한 거리를 둔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며, 또 왜 삽니까? 

내가 일부로 반론을 펴는 겁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고. 그러지 않아요? 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다. 그럼 왜 살아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죽어버리지.  결국 우리가 사는거는 뜨거운 사람과는 뜨거운 관계를 맺고, 좀 차가운 사람과는 차가운 관계가 맺어져도 어쩔 수 없고. 이런거지. 

그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난로처럼 따뜻하게 하는, 내가 천사입니까. 여러분들이 천사노릇하는게 취미는 아니잖아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겁니다. 

항상 너무 가까웠든 사이, 너무 뜨거웠던 사이는 차가워진다는 전제에서 이리 된 것.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항상 가족이란 말이에요. 방순이씨 장점이 그거거든요. 자기가 겪었던, 직장에서 겪었거나 살아가면서 가족들과 겪었던 일. 아주 잘쓴단 말이에요. 그럼 이 글은 거의 졸업할 단계만큼 잘썼어요. 그러면 그 뒤가 문제거든. 지금 자꾸 글 못쓰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잘 쓰면서 못쓴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말도 안되죠. 

이렇게 글 잘쓰면서 못 쓴다? 왜 못써요. 글감이 없어서 못쓰지요? 사람사이의 거리를 가지고 여러사람들이 교훈적인 글을 많이 썼잖아요. 여러분들 그거를 다 비판적으로 보세요. 다 옳은 것 같으면서도, 또 옳지 않아요. 유명인 인생론 보면 다 옳은 것같은데도 옳지 않아요. 쇼펜하우어, 니체 인생론 보십시오. 

우리가 다 고등학교 시절에나 끄덕끄덕했지 지금 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는 것. 세계명작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쓰데, 좀 더 깊이 들어가서 객관적으로 따지면서 쓰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 얘기를 쓰면서도 결국은 나도 못하고 있잖아요. 

그게 결론 아닙니까. 결론을 읽어보면 스님말도 별거 아니라든가 하는 그런 익살스러운. 약간은 그런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이런 글 그대로 써도 괭장히 재치있는. 어떻게 보면 이런 글로 우리 수필계에서는 그냥 톱클라스에 들어가는 수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방순이씨는 이런 글은 이런 글대로 쓰고, 이런 솜씨를 가지고 자연 소재를 써봐요. 자연 소재. 예를 들면 국화면 국화. 계절에 따라서.

교수님 맨날 그런 건 쓰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아니죠 아니죠. 이런거 쓰는거보단 그거쓰는게 나아요. 

이 국화라는게 잘못쓰면 참 재미없는 글이 되는데. 이정도의 솜씨로 쓰면 뭔가 내용이 나올거라고. 국화얘기를 쓰면 국화얘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사는 이야기도 나올거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자연소재라는거는. 돼먹지 않는 자연가지고 말장난하는거는 우선 재미가 없잖아요. 내용도 없고. 

방순이정도 되면 잘 쓸거같아요. 뭘 써도. 소재. 글감의 변화. 그걸 한번 시도해보는게 어떨까. 


5. 불운한 여인-박순옥

제 입장에서 2편정도 쓰다 보니까 새어머니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동안에 제가 살면서 한번도 새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제 얘기를 쓰면서 생각해 봤더니 새어머니도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로 표현해 봤다는 작가. 

참 안되었네요. 보니까. 여러분들은 어땠어요? 이렇게 사는 사람 처음 봤어요. 진짜 불운하다. 우리는 다 아는데, 전혀 모르는 독자들이 볼 때는 좀 헷갈리는 대목도 있어요. 처음엔 누군지 모르다가 나중엔 알게 되는데 그 과정이 조금 부자연스러워요. 이걸 주의해야 되고. 

이걸 처음부터 새엄마라고 밝히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궁금증을 갖게 하는 것이 나을까요? 처음에는 이리 하는 것도 괜찮아요. 이 글을 읽고 궁금한게 그 여인이 그 마을에 오랫동안 살았던 겁니까? 아니요. 박물장수가 데려왔어요. 그러면 위에 나오는 이모양은 이미 새엄마가 된걸 보고 쓴거지요? 네. 알고난 뒤에 쓴거고. 그다음 밑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글슬이 좋았다고 한다 이리보면은 위에 읽을 때까지 잘 모르죠. 새엄마라는 걸. 

모르다가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라고 하니까. 어, 누구냐? 하면서 읽어보니까 새엄마가 나오잖아요. 일부러 궁금하게 만들었다는 작가. 나는 그걸 어떻게 생각했냐면 아, 마을에 살아서 다 그걸 보고 있었나? 박물장수가 중매를 넣어놨나라고 생각했지요. 어쨌거나 참 기구한 인생이다. 박물장수하고 그 여자하고 무슨 관계에요? 그거는 잘 모르겠고, 그 박물장수가 저희 동네를 가끔 왔다가는데. 돌아가신 엄마가 이 박물장수한테 굉장히 의지를 하고 그랬데요. 저희 엄마가 밥도 챙겨주고. 고마워서,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는 어리고 그러니까. 아, 새어머니를 만들어줘야겠다 아이들한테. 해서 몇사람 아주머니를 모시고 왔었는데. 이걸 이렇게 합시다. 두번째 페라그라프까지 묘사한 것은 괜찮고,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 할 때는 바로 우리 새어머니라는 것을 넣어버립시다 아예. 넣어버리고 들어온 과정을 이야기하고, 처음에는 금슬이 안좋았겠지요? 들어와서 한참동안은. 저희 새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요? 

네. 저희가 다 커서 객지로 나오고 난 다음에는 두분이 잘 지내셨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안좋았으니까 금슬이 좋았다기 보다는. 아니, 돌아가신 엄마하고 글슬이 좋았던거고요. 그러면 이리하면 안돼요. 위에 나오는 여인을 설명해줘야 됩니다. 나중엔 나의 새엄마였다. 새엄마가 오기 전 돌아가신 엄마라고 하고 엄마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여인이 온 이야기를 쓰면 좋을 것같아요. 이걸 여기서 위에 나오는 여자를 밝혀버려야지, 안그러면 더 착각을 해요. 그 착각만 안되게 장치를 해보세요. 제목이 불운한 여인하면 너무 평범하거든요. 순옥이언니가 항상 문제가 되는게 항상 제목이 그렇더라고요. 

새엄마하면 딱 떠오르는 첫장면이 뭡니까? 외모죠. 난 언니가 쓴 글을 보고 어떤 모습이 떠오르냐면. 손수건으로 가리는 모습이 떠오르거든요. 

네, 손수건으로 입을 가려요. 얼굴을 가린 여인. 어쨌든 그리하는게 나을 것같아요. 


뗏목 위의 반짇고리-이성화

상술님처럼 제가 제 상황에 너무 분개해 있어서. 마음이 너무 들끓고 있어서 막 쏟아내기만 했지 이 글을 다듬는다던가 이런 생각을 못하고 막 쓴 것같아요. 한번 다듬어 볼 생각으로 펼쳐봤는데 여전히 잘 안다듬어지더라고요. 그렇게 쓰기는 했는데. 반짇고리를 바늘고리로 했어야 했나. 저는 그게 맞다고 봐요. 

반짇고리는 다 들어있는 걸 말하잖아. 바늘샴이나 그게 맞는 얘기에요. 반짇고리. 이건 잘못된 말인 것같아요. 

그런데 반짇고리가 있는게 아니에요? 반짇고리를 플라스틱 통같은데다 만들어가지고 바늘도 몇개씩 끼고 앉아서 일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고 썼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아닌 것 같고. 성화씨 글보면 반지쌈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바늘을 촘촘히 꽂고 어쩐지 안스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반짇고리보다는 바늘쌈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다른 분들 어떠세요? 상징적인 의미로 반짇고리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난 성화씨 글보고 야, 제목을 진짜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제목을 참 잘지었지요. 제목을 짓기가 참 어려운데. 뗏목 위의 반짇고리. 야, 진짜 제목이 잘지었어요. 

이번이 몇번째에요. 성화씨 글이 4-5편 올라갔어요. 참 잘썼어요. 이게 보통 솜씨가 아니야. 뗏목 위의 반짇고리. 사실 그대로 쓰면 이렇게 안써지거든요. 자기가 겪은 일도. 그걸 상징화를 찾음으로써. 내가 여러분들에게 그런 얘기 자주하지요. 자기 개인적인 사건도 그걸 그대로 쓰면 일기체 수필, 르뽀체 수필밖에 안되요. 문학적인게 뭐냐하면. 이걸 상징적인 걸 찾는 겁니다. 뗏목이란 상징물을 만들어 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제목도 나오고 글 자체도 좋지요. 

문학적이다가 뭐냐하면 그런 걸 만들어내는 기술이 문학이란 말이에요. 어머니 얘기를 써도 어머니 얘기만 쓰지 말라. 그런 걸 만들어내는게 문학성이라는 것이거든요. 상징성 만들어내는게. 그걸 잊지 마세요. 어떤 사건, 어떤 소재, 어떤 내용을 쓰더라도 그런 기술. 그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목은 이대로 하세요. 어시가 뭐에요? 어시스던트의 약자로 현장에서 그렇게 불러요. 작업 현장가면 거의 다 어시라는 말 많이 써요. 어떤 현장이요? 

병원에서도 쓰고. 공연 제작이라던가. 다 제작에 보조하는 사람들을 어시라고 해요. 아, 난 몰랐어요. 

그 다음에 페라그라프 끝에 문장. 정확한 명칭을 만드는 것은 언어학자쯤이 되거나... 이것도 참 좋지요. 지금도 시다라는 말은 지금도 시다지요? 

네. 참 좋은 글이었어요. 


7. 관 뚜껑을 닫아야 한다-최기영

재미는 있었는데 좀 산만하다고 느꼈어요. 마지막 문장은 참 좋았어요. 

그동안 최기영선생님은 자기 목소리가 전면에 많이 드러났는데 이번에는 그전 글보다 많이 퇴고를 못하셔서 거친 부분이 있다곤 하지만 주제도 잘 잡히고 전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헌혈, 이헌영, 이현령처럼 이름을 수정하셔야 할 것같아요. 이름같은 경우, 급하게 쓰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리는 잘되었지요. 최기영씨가 이런 걸 쓰는데 이골이 난 것같아요. 처음에 막 거칠던 건 극복한 것같아요. 참 좋은 겁니다. 이것도 읽기에 따라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지만은 이런 소재. 이런 주제를 가지고. 쉽게 말하면 불순불자를 가지고 어떻게 한다. 

그걸 가지고 불순불자가 어떤거란 거를 가지고 쭉 추적해 들어간 거란 말이에요. 개념을.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거지요. 괜찮은 것같아요. 다만 몇몇 문장은 좀 고쳐야 돼요. 좀 찬찬히, 본인정도의 실력이면 고칠 수 있거든요. 네. 그 말씀 하시더군요. 

제목은 어때요? 팔순노인의 지신밟기 이래도 괜찮을 것같아요. 그렇죠. 지신밟기가 낫지요. 관뚜껑보다 지신밟기가 오히려 나은 것같아요. 고쳐서 내라고 하세요.


8. 눈이 가장 먼저 늙는다?
김정호선생님이 담당인데 오늘 안나오셨네요. 전주에 안과 교수님. 의학칼럼으로 쓰셨나 봐요. 괜찮지요. 이걸 보고 처음 알았는데 진짜 이럴까? 
글을 약간 미온적으로 쓰신 부분이 있어가지고. 시력이 나빠지는 걸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서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과에 
가면 눈이 나빠지는 원리를 다른 병을 다 찾아낸다는 건데. 의학적인 사실을 틀리게 안썼겠지요. 의사니까. 조금 더 뒷받침 해줬으면 좋겠더라고요. 
두번째 문단에 보면, 시력이 정상적으로 발달되는데도 5-6년의 시간이 걸리고...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의사가 이렇게 말하면 글의 신뢰가 떨어지는 표현이다. 진짜 그런지 모르죠. 아닐 것으로 보인다란 표현은 의사가 환자에게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의학적인 팩트가 다 이대로인가. 왜냐하면 의학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다 믿는단 말이에요. 그걸 좀 정확히 해달라고 하세요. 나머지는 다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