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달동네 밥상머리
어제는 수업 후 윤효진샘 등단파티가 있는 관계로 점심식사를 건너뛰었습니다.
그리고 참석하는 인원이 적은 관계로 당분간 밥상머리를 쉴까합니다.
겨울학기쯤 다시 시작할 예정이니 공지를 잘 읽어주시어요.
1교시 명작반 《군주론》 천천히 읽기
*《군주론》은 어떻게 씌어지게 되었나...
마키아벨리는 도미니쿠스 교단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급진 공화파 정권이 무너진 직후인 1498년, 29세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국 서기장1)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이어 당시 최고 권력 기관이던 10인위원회2) 서기국의 서기장도 겸하게 된다. 특히 그는 1502년 이후 종신직 곤팔로니에레3)가 된 피에로 소데리니의 신임을 받아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프랑스, 독일, 로마, 시에나, 로마냐 등지에 파견된다. 그는 또 시민군 조직의 입안 및 구성에도 깊이 관여한다. 《군주론(Il principe)》을 비롯한 이후의 저술들은 바로 이러한 때에 겪은 다양한 현실 경험에 바탕하고 있다.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함께 1512년 소데리니 정권이 몰락하고 메디치 가가 복귀하자, 마키아벨리는 모든 관직에서 축출된다. 이어서 반(反)메디치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에다 고문까지 당하게 되지만, 이듬해 3월 추기경 조반니 데 메디치가 교황 레오 10세로 즉위함에 따라 특사로 풀려난다. 그는 이후 피렌체 근교 산탄드레아의 작은 시골 농장에서 원치 않은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생애 중에서 가장 쓰라렸던 바로 이 시기에 그의 명성을 높인 저작들이 쏟아졌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군주론》을 필두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10권에 대한 논고》, 《만드라골라》, 《전쟁의 기술》, 《피렌체사(史)》 등이 이때 씌어진 주요 작품들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원래 대인(大人) 로렌초의 셋째 아들 줄리아노에게 바치려 했다가, 뒤에 마음을 바꾸어 대인 로렌초의 장손인 동명(同名)의 로렌초에게 헌정하였다. 그가 메디치 가 군주들에게 이 책을 바치려 한 것은, 물론 자신을 다시 공직에 천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메디치가가 축출된 후의 공화정에서 봉직하고, 그들이 돌아온 뒤에는 반(反)메디치파로 몰려 투옥에다 고문까지 당한 그가 다시 그들에게 책을 바치는 행위가 기회주의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현재사에 대한 오랜 경험과 과거사에 대한 끊임없는 독서"를 바탕으로 "국정술 연구에 바친 지난 15년간이 결코 잠과 놀이만으로 헛되이 보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겠다는, 정치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메디치 가에도 득이 될 것이라는 계산과 함께. 그러나 그의 희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교시 수필반
신선숙샘의 <할망>, 박종희샘의 <빠알간 똥>, 김미원샘의 <가지 않은 길>
3편을 합평했습니다. 시 형식의 수필은 내용을 함축적으로, 내재율을 살려서 쓰면 좋다는
팁을 주셨습니다~
3교시 티타임
어제 3교시는 이번 달 등단하신 윤효진샘의 등단파티가 불고기 브라더스에서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수업을 쉬고 계시던 선생님들과 신입 회원들까지 모두들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고 축하해 주셔서 더욱더 뜻깊었던 파티였습니다. 준비기간이 남다르게 길었던
만큼 앞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저희와 오래도록 함께 호흡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시고 참여해 주시는 용산반 선생님들 덕분에 적은
인원이지만 저희반이 이토록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어요.
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는 개천절인 관계로 휴강이네요.
10월 10일 수업에 오실 때에는 한국산문 9월호 꼭 챙겨 오시어요~
2주 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