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의 수필 <별바라기>를 공부했습니다.
‘어른은 자신의 아이 시절에서 배운다.’는 첫 문장에서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라고 읊었던
워즈워드의 <무지개>가 떠오릅니다.
‘도시에 살면서 하늘의 구름, 달, 별을 잊어버렸다고
꾸중하는 그 시절의 아이 즉 어린 시절 작가를 통해
독자들도 반성을 해봅니다.
어린 시절 아이가 이끄는 대로 들판으로 나가 드러누운 작가에게
별의별 형상을 만들어 내는 구름공장이 보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주름공장인 세탁소를 떠올리며 한 수 배워봅니다.
자연 속에는 욕망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자연을 쳐다보아도 지겹지 않습니다.
아기의 배내 짓을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 행위가 가장 자연에 가깝기 때문이지요.
숲 속에서 나무꼭대기의 우듬지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양은
마치 공중의 백지에 낙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천년의 바람 / 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변함없는 자연을 노래한 박재삼의 시도 읽어보았습니다.
보리 파종하면서 작가의 밭을 갈아주던 외조부는
하아, 쯔륵, 머시께, 어허 바로 가 등등 제주도 방언을
소에게 하면서 쟁기질을 합니다.
그래야 소도 사람도 심심하지 않다는 할아버지의 따스함과 함께
소를 부리던 그분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검은 돌단 안에 가득 실려 늠실늠실 물결치는 보리밭,
보리 이삭들은 흥청거리는 물결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작은 물고기 떼와 같습니다.
파도에 따라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듯한 모습을
시적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바람은 술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짙은 보리 냄새를 멀리까지 실어 나른다는 시적 표현도 참 좋습니다.
일직선으로 솟아올라 높은 허공의 한 점에 머물면서
명랑하게 지저귀는 종달새는 하도 높이 올라가서 점처럼 보입니다.
김광협 / 천파만파
남정네들이 낫을 간다.
낫이 무디어졌다고 슥삭슥삭
낫의 날을 세운다.
보리 한 단을 베어 넘기기 위해서
숫돌의 몇 분지 몇 푼을 축낸다.
뻐꾸기 소리와 꿩꿩 장 서방 소리가 와
낫의 날과 숫돌 사이에 파도 소리가 와서 먹는다.
파도가 넘실넘실 넘실거린다.
낫의 날과 숫돌 사이에 파도가 일어난다.
보리밭에 파도는 천파만파(千波萬波)로 들락퀸다.
에익 파도를 넘자. 넘어서 가자.
남정네 한평생 까짓. 파도쯤이야.
이 세상 더러운 세상 까짓
낫 한 자루. 그것이라도 휘두르며 넘어서 가자.
작가가 수필에 인용한 이 시에서
‘뻐꾸기 소리와 꿩꿩 장서방 소리가
낫의 날과 숫돌 사이에 파도 소리가 와서 먹는다’는
낫을 숫돌에 갈 때 뻐꾸기 소리가 들려와 같이 갈린다는
시적 상상이 뛰어난 구절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잘 표현한 시입니다.
점묘(點描)/ 박용래
?
싸리울 밖 지는 해가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보리바심 끝마당
허드렛군이 모여
허드렛불을 지르고 있었다.
푸슷푸슷 튀는 연기 속에
지는 해가 二重으로 풀리고 있었다.
허드레
허드레로 우는 뻐꾸기 소리
징소리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가 또 하나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라는 명화가 떠오르는 시입니다.
시골의 풋풋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듯한 이 시를 통해
추수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바닷물을 퍼 올릴 듯이 아래로 기울어져 있다’
‘만상이 잠든 자정 녘, 별빛과 이슬을 맞으며 호박순이 몰래 뻗어간다’는
명문장도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수필이었습니다.
페이스북에 ‘추석은 달의 시청률이 가장 높은 달(단 우천 시 제외)라고
위트 있게 써놓으셨다는 우리 시인님의 시적 표현 또한 배웠습니다.
며칠 안 남은 한가위에는 위 수필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추석을 떠올리고 글로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