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표시 / 한정원
짧은 물결 표시 ~ 안에서
그가 긴 잠을 자고 있다
휘자(諱字) 옆에 새겨진 단단한 숫자
‘1933년 3월 18일~2010년 4월 22일’
웃고 명령하고 밥을 먹던 거대한 육체가
물결 표시 위에서 잠깐 출렁거린다
햇빛이고 그늘이고 모래 산이던,
흥남부두에서 눈발이었던,
국제시장에서 바다였던
그가 잠시 이곳을 다녀갔다고
뚜렷한 행간을 맞춰놓았다
언제부터 ~ 언제까지 푸르름이었다고
응축된 시간의 갈매기 날개가 꿈틀
비석 위에서 파도를 타고 있다
효모처럼 발효되는 물결 표시 안의 소년
흔히 또는 무심코 사용하는 기호인 믈결 표시를 보고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이렇게 시를 씁니다.
물결이 우리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시인은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존재인지를 이 시를 통해 말해주고 있지요.
흥남부두에서는 눈발이었고, 국제시장에서는 바다였던 그도
한때는 푸르고 푸른 생명이었으며
웃고 명령하고 밥을 먹던 거대한 육체가
이제는 물결 표시 안에서 숫자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물결은 아직도 출렁이며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 시인은 느낍니다.
?스승의 사랑법 /?김주대 ?
?
주대야
??술 마이 먹찌 마라라 제발
?몸도 안 조타 카민서
자아, 한잔 바다라.?
?
스승의 사랑, 헤아림이 바다와 같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렇게 평범하지만 진실이 들어가 있는 것이 시입니다.
고대, 중대 근현대를 가릴 것 없이 권력체제는 인간을 감시 처벌해왔습니다.
예전엔 가시적, 공개적, 잔인무도한 방법을 사용하여
사회적 약자의 공분을 자아내고 권력에 저항하게 하는 부작용이 생기자
현대에 와서는 .노역을 시키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결코 인도주의자 차원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더 교묘하게 권력을 지키기 위해 처벌 방식을 합리화한 것이지요.
감시, 처벌의 방식이 감옥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소단위 체제, 즉 학교, 병원, 병영, 공장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염소 / 송찬호
저렇게 나비와 벌을 들이받고
공중을 치받고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쩍 않고 버티기만 하는
저 꽃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하여, 우리는 저 고집 센 꽃으로부터
뿔을 뽑아내기 위해
근육을 덜어내기 위해
짐승을 쫓아내기 위해
부단히 채찍질을 하였다
그리고 부지런히 말과 글을 배운
염소 학교 졸업식 날
그에게 많은 축복이 있었다
산과 들판은 절벽에 붙어 살며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는 쿠션 좋은 침대를
시간은 쉼 없이 풀을 씹어
향을 피워 올리는 검은 향로를
시냇물은 약간 소심한 낯짝의 거울을
구름은 근사한 수염을
그리고 우리는 고삐를 주었다
꽃은 염소 뿔을 상징합니다.
사나운 호랑이에게는 뿔이 없지만
초식동물에게는 천적과 싸우기 위한 뿔이 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길들여진 염소의 뿔은 나비, 벌, 공중을 치받을 뿐입니다.
보신용에서 장식용으로 바뀐 염소의 뿔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편지봉투에 편지가 아닌 돈이 들어가는 세태와 다름없지요.
야생 염소에게 본능적으로 내재된 동물의 본성이 길들여지듯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염소처럼 획일화되도록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교육제도의 문제성을 상징화한 이 시는
욕망의 동일화에 대해 직관적으로 썼을 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이론과 상통하는 내용입니다.
항구에 사는 갈매기들은 뇌 속에 선박의 출항시간이 박혀있다고 합니다.
먹이에 반응하는 동물들이 이러한데
인간은 더 세뇌되기 쉬운 존재이지요.
나는 주인의식을 갖고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한낮은 덥지만 마음만은 가을 분위기로 물들어 있지요.
가을에는 편지가 들어있는 편지봉투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편지를 쓰겠어요’ 라는 노래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