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품 합평 후, 한용운님의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두 편의 시를 시 짓는 법보다 글쓰기 법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작가의 에피소드를 쓴, 김아라님의 <운 좋은 위층>은 마무리가 돋보인 멋있는 글이라는 평이었습니다.
*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굼치로 갓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시 전체가 님의 무엇이라는 것을 알지만, 무엇은 무엇입니까? 반복되는 시이다.
자연을 의인화하고 있다. (오동잎→발자취, 푸른하늘→얼굴, 향기→입김, 시내→노래, 저녁놀→시)
그러나 마지막 연은 반대로 사람에서 자연으로 되어있다. (나의 가슴→등불)
자연의 특징적인 것들을 다 읊고 있는 시다. 간단히 이루어진 시지만, 오동잎, 하늘 등과 같은 주어 앞 긴 관용구는 시인이 그만큼 시각과 공간을 넓게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연(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의 경우, 당연한 이치를 표현했으며 전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접속사를 쓰지는 않았지만, 앞의 방식을 뒤집는 형식으로 (그러나, 그렇지만)에 해당되는 문장이다.
한용운의 시는 비유가 선명하다.
한용운의 시에서 말하는 ‘님’은 우리가 배운 것처럼, 종교나 조국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님일까? 또 한 번의 분분한 의견에 ‘통틀어 사랑해야 할 대상’이란 말로 결론지음.
*
다 알고 있고 배운 적이 있으나 뭘 안다고는 할 수 없던(?) 시를 다시 배워 본 시간이었습니다. 나룻배와 행인을 감상한 후에는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 기억하시죠? ‘나는 나룻배입니다’라는 주제의 글도 써 보시기 바랍니다.^^
찬가를 부르고 싶었을 만큼 맘에 들었던 날씨였어요. 그 기분으로 드디어 여름학기 수업을 끝냈습니다. ‘드디어’라고 한 것은 순전히 그간의 날씨 탓이었답니다.^^*
수업 후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차이나 팩토리에서 종강을 겸한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각자 여름학기를 보낸 소감 한 마디씩을 했는데 가을엔 다들 열심히 글을 쓰겠다는 기분 좋은 결심을 보였습니다.
가을학기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