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대>
이사크 바벨리
‘레닌의 직선으로 카자크들의 곡선을 요격했다’
이 문장을 읽을 때 문장 밑에 빨간 줄을 긋고 별표 두 개를 했습니다. 직유와 은유로 가득한 시적인 아름다운 문장은 전쟁의 참혹함을 더 깊이 느끼게 했습니다. 이런 비참한 기록이 또 있을까 하는 놀라움과 비탄에 잠겨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작가 이사크 바벨리는 1894년 오데사에서 유태인 상인 집안의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오데사 상업학교 졸업 후 키예프 상과대학에 입학했다가 페트로그라드 법학부로 편입합니다.
대학생 때 키예프 주간지 오그니(불꽃들)에 첫 단편 <늙은 슈로이메>를 발표합니다. 막심 고리키와 알게 된 후 그의 충고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몇 개의 직업을 거칩니다.
루마니아 전선에서 일병으로 복무하다가 부존느이 제1기병대 종군기자로 파견되어 군인이자 정치위원으로 복무합니다. 소련-폴란드 전쟁 때 ‘기병대 일기’를 기록하여 이것이 소설 <기병대>의 기본이 됩니다. 이후 오데사 현 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오데사 이야기>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잡지 ‘레프’ ‘붉은 처녀지’에 <기병대>와 <오데사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탁월한 언어의 장인’ 이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희곡작품으로는 <석양><마리야>가 있고 몇 개의 시나리오도 집필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비에트 비평은 ‘노동자 계급사업에 대한 반감’에 대해 비난하고 ‘자연주의와 비 적 행위적 본성과 낭만화의 옹호’를 비판합니다. 그러던 중 바벨리는 페레델키노 별장에서 ‘반 소비에트 음모, 테러 행위, 스파이 혐의’ 등으로 체포되고 집필 초고들이 압수되어 15개의 파일, 11권의 기록 책, 7개의 수첩들이 영원히 손실 되었습니다.
심문과정에서 고문을 받고 밀정 노릇을 했다고 거짓 자백을 합니다. 그로인해 소련최고재판소 군위원에 의해 사형이 선고된 다음 날인 1940년 1월 27일 처형되어 돈스키 공동묘지의 공동무덤에 매장되었습니다.
소비에트 문학에서 제외되었다가 1954년 사후 복권되고 1957년 일리야 에렌부르크의 서문이 실린 선집이 발간됩니다. 일리야 에렌부르크는 이사크 바벨리에 대해 ‘20세기 탁월한 작가들 중 한명이며 훌륭한 스타일리스트 이자 단편의 거장’ 이라 칭합니다.
바벨리의 딸 나탈리야는 미국 문학비평가가 되어 그녀의 편집으로 영어로 된 ‘이사크 바벨리 전집’을 출간합니다.
바벨리는 ‘남 러시아 학파’ 로 불리는 문학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마르크 슬로님은 “바벨은 혁명이후 소련문학이 배출한 가장 훌륭한 스타일리스트 이다”라고 칭송했습니다.
<기병대>는 1926년 발표된 연작형식의 소설로 38편의 단편 속에 제1기병대의 일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자인 류토프는 공포와 감탄의 혼합된 감정을 갖고 적(赤)군의 폭력과 잔혹성을 봅니다. 이 속에는 인간 뿐 아니라 동물(특히 말)과 자연 마저도 전쟁의 희생물이 된 처참한 모습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조차 적을 만들지 않으려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적이 되어 버리고 다른 부대로 전속되어 떠납니다.
소련의 사령관 세묜 부존느이는 <기병대>에 대해 분개하여 바벨리를 ‘문학의 변절자’라고 비난하고 스탈린도 바벨리를 비난하였으나 고리키 만이 그를 비호했습니다.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눌 때 나온 이야기들은 ‘ 심약한 사람의 참전 기록이다. 작가의 펜 끝을 따라가면서 거기에 참여했다. 그 시대와 장소를 경험할 수 있어서 전율이 일었다. 혁명에 대한 비판 속에 전쟁의 허무와 종교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이 작가는 직유와 은유의 천재이다. 너무나 많은 직유를 좀 거둬냈더라면 의미 전달이 더 쉬웠을 듯하다. 공산주의는 전시행정만 잘 되어있고 의욕이나 성취감, 신뢰감이 없다. 혁명이론 자체는 좋으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은 고통스럽다. 자연마저도 등장인물이 되어 인간과 함께 고통당했다.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이 생각났다. 그 시절에 그랬구나 로 끝나기보다 현재의 난민들에 대한 도움을 생각했다. 이 나이에 이런 작품을 알게 되어 기쁘다.’ 등등 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내가 겪지 못한 6.25와 지금의 시리아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아버지가 혁명을 배반한 아들을 죽이고, 동생을 잃은 형이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은 소금뿌려진 상처처럼 쓰라렸습니다. 한 카자크 소년병은 이렇게 말합니다. “혁명에 비하면 어머니는 삽화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아요”
천륜마저도 저버리는 혁명중독자들의 팽개쳐친 삶이 그 시대의 불행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변화시키고 내가 살기위해 남을 죽일 수밖에 없는 전쟁의 무참함을 작가는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 속에 녹여냈습니다.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작가’ 라는 이름이 위대한 이유가 이 소설에 들어있었습니다.
‘레닌의 직선과 카자크의 곡선’, 모두 험한 행로임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좋게 끝나는 전쟁이란 없다’ 고 외치고 있습니다.
일이 있어 못 나오신 박화영샘, 싱가폴에 계셔서 한참 못 뵌 정민디샘, 다음 주에 뵈요.
다음 주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개의 심장>>을 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