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카잔차키스 (그리스 기행.마지막 시간)
25년이 저물고 있는 12월,
조지 윈스턴의 December를 들으면 눈 내리는 풍경이 그려지고
슬프지 않고 담담하게 지나간 1년이 송이송이 떠오릅니다.
이제 한 주밖에 남지 않아서 그런지
그리스 기행 끝나는 게 조금은 아쉽네요.
그러나 카잔차키스를 다시 읽게 되어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후기에 수업 내용을 요약하기 보다는 한 가지를 잡고 집중적으로 써보라는 교수님 의견에 동의하며. 오늘은 수필 소재로 좋다고 한 ‘성자의 병’에 대해 여기저기서 자료를 모아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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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 후 빈에 체류하던 카잔차키스는 한때 얼굴이 심하게 붓고 입술이 부르트고 고름같은 증상이 반복되는 병을 앓았다. 그는 이를 스스로 ‘성자의 병’이라 부르며 금단적 금욕, 영적 긴장, 내적 분열로 연결지었다.
‘성자의 병’은 중세 수도자들이 선적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 때 생긴다고 전해지는 희귀한 ‘영적’질병이다.
프로이드의 제자였던 정신 분석가 슈테겔은 이를 신체 질환이지만 근본은 심리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당신은 빈을 떠나야 합니다.”
빈이라는 도시는 지적.성적 억업과 과도한 자기검열이 있었다. 금욕적.영웅주의적 삶의 태도의 카잔차키스에게 병을 유지.악화 시키는 환경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성자의 병은 금욕과 육체적 억제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 발생하는 상처나 궤양이다. 당시 카잔차키스는 영적 육체적 억제를 추구하는 삶을 살던 시기로 그의 내면적 갈등이 깊었다. ‘너무 도덕적이어서, 너무 의미를 요구해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태’.
카잔차키스는 실제로 빈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고 병이 점차 사라졌다.
"영혼이 숨 쉬자 육체가 나았다."
어떤 병은 몸에 생기지만 어떤 병은 우리가 머무르는 자리에 생긴다.
카잔차키스처럼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인가? 지금의 고통은 정당한가? 이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가? 쉬는 시간마저 잘 쉬어야 할 과제가 되고 여행조차도 재충전이 잘 되었는가로 평가하는 질문들은 삶을 소진 시킨다.
중세의 성자는 신 앞에서 자신을 소모했다면 현대의 성자는 시스템 앞에서 자신을 소모한다. 현대인의 번아웃, 그것은 세속화된 성자 의 병이다.
도덕적. 철학적 과잉이 삶을 마비시킨다. 잘 살려고 하다가 삶을 앓는 병이라니...카잔카키스는 욕망은 있었지만 그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성자가 되기에는 너무 육체적이었고 인간으로 살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이상으로 너무 엄격했던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자기 자신에게 주지 못해서 생긴 병이다, 카잔차키스는 삶의 의미를 묻지만 조르바는 묻지 않는다. 살고 나서 웃거나 울거나 할 뿐이다. 의미는 조건이 아니라 부산물이다.
우리가 성자의 병을 앓지 않으려면 너무 잘 살려고 애쓰지 말고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먼저 자신에게 주는 것 뿐이다.
****다음 시간에는 로마-이태리 기행을 시작합니다.****
<2부> 합평 최인식/설영신/김봄빛/박은실/국화리/오정주/김대원(존칭생략)
*자기의 삶을 잘 살고 그대로 글을 써라.
*글의 내용이 서로 모순되면 안 된다.
관계없는 것은 과감하게 빼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