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풍금(1975년)
-블라디미르 솔로우힌(1924~ 1997)
: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현대작가로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시인이자 소설가입니다.
러시아 농촌문학의 대표자.
1924년 블라디미르현 알레피노 마을 출생.
농민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는 알렉세이 솔로우힌, 어머니는 스테파니다 체부로바이고
블라디미르 솔로우힌은 열 번째 막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블라디미르 기술학교 졸업생으로 그의 시가 <프리지프>라는 블라디미르 신문에 발표되고, 군 복무(1942~1945)후 문학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1951년 고리키 문학대학을 졸업, 1952년부터 소련 공산당원으로 입당합니다.
1958~1981, 잡지 <몰로다야 그바르디야>의 편집위원, 잡지 <나시 소브레멘니크>의 편집위원을 역임했습니다.
1958년 10월 31일 모스크바 작가동맹 회의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비판에 참여했다.
솔로우힌은 노벨상 수상에 대하여 파스테르나크는 망명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기서 아무 것도 흥미로운 것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달 후면 먹어치운 달걀, 짜낸 레몬처럼 그를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가 행한 배신에 대한 진짜 형벌이 될 것이다.”라고 말함.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러시아 애국주의자로서 사회평론을 썼으며 러시아 예술 발전의 방법들을 숙고하면서 민족적 전통수호의 필요성을 지적하였다.
1960년대 초에 러시아 이콘(성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이콘화의 수집가이자 해설 전문가가 되었다. 이에 관한 사회평론이 <러시아 박물관에서 온 편지>, <검은 목판>이 있고,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주요 테마
솔로우힌의 주요 테마는 러시아의 농촌을 그리는 ‘농촌 작가’의 대표자입니다.
#솔로우힌에 대한 비판
1982년 잡지 <공산주의자> 2호에 솔로우힌이 ‘신과의 장난에 빠져 있다.’며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그후 ‘소련 공산당 당원 솔로우힌의 종교적-미신적 시각’에 반대하는 운동이 애국주의 작가들에 반대하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특별 ‘문학적’ 결정문 형태로 나타났다(1982년 7월)
<레닌을 읽으며>라는 기사에서 솔로우힌은 러시아사에서 레닌이라는 인물에 대한 시각을 재검토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발언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다. ‘레닌을 읽으며’라는 기사는 솔로우힌의 반공산주의 진영 동지들로부터도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만년
‘민영화’ 개혁들로 당혹스러워했던 솔로우힌은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 했다. 니콜라이2세의 초상이 그려진 반지를 끼고 다닐 정도로 열렬한 군주제 옹호자였다.
1997년 4월 4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고 구세주 예수 사원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구세주 예수 사원이 수영장이었다가 다시 개원한 후 처음으로 솔로우힌이 장례를 치른 사람이 되었다. 고향 알레피노에 매장되었다.
#수상경력
붉은 기 노동 훈장(1984), 인민 우호 훈장(1994), 명예 훈장(1967),
고리키 연방 국가상(1979)-마지막 중편과 단편들 <붉은 아디게네><지팡이><빵 위의 꿀><바로미터><바르샤바 에튜드>로 수상했다.
# 대표 시와 소설
시: <스텝의 비> <우물> <북방의 자작나무>
소설: <황금 바닥> <블라디미르 시골길> ,큰 술잔> 등이 유명하다.
손풍금(1975)
<25에 25>라는 원제를 손풍금으로 해석하여 한국에서는 손풍금으로 번역되었다. 제목으로 <25에 25>라고 했을 때는 어떤 내용인지 더 호감이 갔을 수도.
*알렉세이 빼뜨로비치 ? 소련의 영웅, 대학의 학과장, 법학박사: 어렸을 적 두드러진 데라곤 없는 시골소년으로 그는 “언제나 우리 마을 처녀들보다 더 예쁘고 더 맘에 드는 처녀들이 살고 있는 이웃 마을까지 대담하고 정열적인 멜로디를 흩뿌리기 위해서” 손풍금을 열망함.
이제 성인이 되어 손풍금을 사들고 고향에 찾아간다.
그 당시 손풍금은 연회의 필수품이었다. -속담으로 “이건 손풍금이 빠진 결혼식이나 진배없군.”이 있을 정도로 손풍금이 열망과 위력이 있다.
*라이카 브라트치코바 - “모든게 둥글게 부풀고 살이 통통하게 쪄서 어린 여자애의 옷을 터져버리게 할 것 같았고, 두 눈에는 대담함과 도전적이고도 유혹적인 무엇이 나타나 있었다.”로 묘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스도 변용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집에 도착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프레오브라젠스코예 마을에도 점차 개화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대체 그들이 땅에다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건가?” “땅을 온통 혹사시키고 파헤치고 망쳐 놓았지 않았나.” “땅은 중상을 입었어요.”
“아름다움은 유보할 수 있어. 우리에게 중요한 건 감자니까...”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개혁이라는 것이 못마땅할 수 있다.
# 클럽 VS 교회 담장 가 벤치
예전의 사제관 건물로 사제관은 한때 마을 소비에트→콜호즈(집단농장) 행정부→진료소→클럽으로 변모해 갔다.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는 교회 담장 가 벤치에 앉아 손풍금을 켰다.
초로의 여자-“푸른 눈동자였으나. 마치 투명하고 깨끗한 물을 사분의 일 이상 탄 듯한 엷은 푸른빛이었다.”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는 “그녀의 두 다리도 굵고 (낡았다)는 걸 알아챘다.
#아름다운 구석(붉은 구석)
붉은 구석은 집안의 가장 중요한 위치로 성상화를 올려놓고 촛불을 피워놓고 매일 기도하는 곳이다. 손님이나 가장 중요한 사람을 붉은 구석 앞에 앉힌다.
이러한 중요한 자리에 현재는 문명의 이기로 성상화 대신 텔레비전이 놓이게 되었다.
텔레비전은 “세계로 난 창”이다. 창과 하나 다른 점이란 “창에선 보이는 걸 보지만, 여기서는 보여주는 것을 본다는 것이죠.”
‘창’이란 소통의 연결고리인데 예전의 창은 내가 주가 된 교감이라면, ‘테렐비전이라는 창’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보여주는 것만 보는 일방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다.
라이사(옛 여자친구)-‘우린 잘 살아요. 하지만 즐겁지는 않아요.’
슬라바(라이사의 아들)- 손풍금을 거절하고 녹음기를 부탁한다. ‘모스크바의 대리점에는 있대요. 일본 상표 ’소니‘라고요. 돈은 엄마가 보낼 거예요.’
시대적으로 신·구의 세대가 느끼는 감흥과 받아들이는 견해는 다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의 손풍금
1930년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함, ‘툴라’가 대표적 중심지였다.
소련 시대의 손풍금은 콜호즈에서 음악 예술의 보급 운동을 위해 널리 사용되었다. 손풍금은 이동하기가 편리하여 집단농장의 능률화를 돋우는데도 동원되었고 대중 연예회에도 두루 사용한 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