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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뚝이도 때로 눕고 싶다(종로반)    
글쓴이 : 선점숙    18-01-14 19:58    조회 : 2,932

딥러닝실전수필(01. 11, 목)

-오뚝이도 때로 눕고 싶다(종로반)


1. 강의: 상상력은 힘이 세다

가. 우리 수필, 왜 읽히지 않는가?

수필을 보면 구성과 내용이 닮은꼴이다. 감각적인 전원풍 자연 예찬, 일상과 주변의 하나 마나 한 이야기, 오래전 농경시대나 목축시대로 회귀하는 추억담, 개인의 기구하고 구차하며 애간장 녹이는 삶의 기록, 남에 대한 은근한 비난, 자신과 가족에 대해 자랑 아닌 자랑(그러니까 결국 자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수필이 읽히지 않는다. 수필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은 한 마디로 재미가 없어서다! 선정적이고, 말초적이며, 자극적인, 장르적 재미를 말함이 아니다. 상상력 부족, 주제의식 결여, 흥미 없는 소재의 채택, 뻔한 전개와 결말, 정확하지 않은 문장과 논리, 교훈적 논조, 혼란스러운 수식어 사용이 서로 얽혀 읽어도 남는 것이 없고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 누가 수필을 읽겠는가?

나. 우선 ‘상상력 부족’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상상력이 무엇일까? 현실 세계와는 거리가 있는, 하지만 있음 직한 가상과 미지의 세계를 그려보는 힘일 것이다. 작가의 문학적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수필 역시 문학의 한 분야인 만큼 시야를 넓혀 다른 문학 장르에서 통용되는, 상상력을 토대로 재구성하고 재창조하는 기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어난 일을 숨김없이,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 일기처럼 기록해야 한다’는 잘못된 주술(呪術)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쓴다는 행위 자체가 도무지 가능하지 않다. 쓰려고 하는 모든 내용은 펜을 잡거나 컴퓨터 자판에 앉는 순간 과거의 일이 된다. 즉 기억을 소환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기억은 모호하고 자의적(恣意的)이며 온전치도 않다. 기억은 습작되기도 하고 휘발되기도 한다. 게다가 기억을 표출하는 수단과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언어(문자) 자체가 불완전하지 않은가? 문학이란 원래 가능하지 않은 일에 가장 근사치로 도달하려는 피곤한 ‘도로(徒勞)’인지 모르겠지만.

다. 그러므로 내가 보여주려는 내용은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내가 보여주려는 내용은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물론 발생한 실제의 일을 가능한 한 정확히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자신의 사상이나 관점, 정서와 체험에 충실해지려 노력하되 ‘상상력’을 빌어 ‘실제적 사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야만 ‘문학적 진실’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상상력의 도입’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의문이 들 법하다. 시나 소설, 희곡 같은 여타 장르에서 나타나는 허구, 또는 왜곡과 수필에서 허용되는 상상력은 어떻게 다른가? 수필에서 발현되는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나와 관련된, 내가 개입하는’ 사건과 느낌의 재구성을 말함이다. 바로 이 지점에 미묘하거나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문학적 효과 증대를 위한 선의(善意)의 조정은 허용되지만, 있지도 않은 일을 있었다고 하거나, 있음직하게 거짓으로 꾸며 처음부터 속이려 드는 것은 고의적인 눈속임이요, 자기기만이다.

라. 또 다른 갈래의 고민과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 원초적이며 피해갈 수 없는 한탄일 것이다. “본디 상상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푸념은 이어진다. “경험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심지어 “가방끈이 짧아서, 어쩌고저쩌고….” 어쩌면 이 말들은 변명이나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어떻든 보고 배운 것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경험도 쌓았을 것이다. 하물며 경험하지 않은 사실도 상상력을 동원하면 유추와 추론으로 어느 정도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능력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으며 수용 틀과 용량도 비슷하다. 다만 상상력 역시 골치 아픈 사유를 동반하는 인식 체계이자 통로이므로 즐겨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마. 선험적 지식(Wissen a priori)과 상상력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결합한 독일 관념철학자 칸트는 인간사고의 기본 구조와 인식에 이르는 경로를 ‘선험적 지식(Wissen a priori)’으로 설명했다. 사물과 현상의 인과성, 보편타당성에 대한 이해는 경험하기 이전에 이미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선험적 지식’을 ‘상상력’으로 치환해보자. 누구에게나 본디부터 주어진 상상의 힘을 빌려 일상적인 소재를 미적 울림이 큰 주제로 형상화하자는 것이다. 즉, “아마, 그랬을 거야.” 또는 “혹, 그러지 않았을까?” “아무렴, 그렇고말고!”

2. 강의 후기

오뚝이(이덕용)

오래전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사촌 시동생이 오뚝이 같다고 한 말을 회상하며 쓴 글이다. 열 명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글세방의 서러움에서 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은 후 아들에게 건물 두 채를 물려주기까지의 삶을 그렸다. 둘째를 임신한 뒤 귤 두 개를 사와 아들과 나누어 먹으려했으나 혼자 먹은 후 아들한테 미안해하는 모습. 홍수환의 칠전팔기 얘기를 넣어 오뚝이 인생에 비유한 것도 좋다. 오뚝이의 넘어질듯 일어서는 모습을 묘사하고, 힘들게 살았던 구체적 정황을 묘사하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다. 시작 부분에 사촌 시동생과의 대화를 넣으면 더 극적인 묘사가 될 것 같다.

파리의 추억(윤기정)

1차 합평을 거친 바로 발표해도 될 만큼 잘 쓴 작품이다. 며느리가 임신한 후 살생을 하지 않으려고 파리 한 마리의 생명도 중히 여긴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보인다. 파리의 입장에서 쓴 의인화 글이다. 팍스 파리의 세계가 오게 하려면 둘째 손자를 봐야하지 않을까?

3.종로반 동정

윤기정 선생님이 집에서 말린 곶감을 가지고 오셨다. 도시에서 곶감을 만드는 일도 어려운데, 공들여 건조한 곶감을 반원들과 나누려고 가져와 맛있게 먹었다. 교수님은 곶감이 맛있었는지 남겨진 것을 싸 주라고까지 했다. 총무가 가져온 구운 치즈 빵과 따끈한 차와 함께 추위를 녹이니 종로 반이 추위에도 후끈했다. 감기 걸릴까 봐 추위를 피하여 모처럼 뒤풀이 없이 집으로 갔다. 그런데, 교수님과 단둘이 오붓한 한잔의 시간을 즐긴 분도 계시다는 후문이 들렸음. 하하하 참새 방앗간이 있었나?


김기수   18-01-14 20:23
    
언제 봐도 친근감을 주는 합평 후기에 마음이 쏠림은? 체계적이고 일관된 짜임에서 느끼는 안정감!
오늘은 일 번으로 댓글 공략하려 대기 중!
오늘도 함께 있어 강의 듣고 작품을 감상한 시간에 있다 온 것 같음은? 선험적 지식에 빠져서!
항상 수고하시는 선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합평에 열심인 작가님들과 교수님 또한 고생들 하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건필과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노트북 앞에 앉아 차분하게 글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격려와 용기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종로반 팟팅!
     
안해영   18-01-14 20:42
    
순발력 최고이십니다. 김기수 선생님.
며칠 눈발도 날렸고(남녘은 눈이 많이 쌓였지만) 조금은 겨울다운 날들이 있었지만, 어릴 적에 겪었던 추위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주택 구조나, 의복 또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한 공해로 인해 대기가 따뜻해짐도 있을 것이다. 눈이 참 많이도 왔던 어린 시절. 깊은 밤 내린 눈이 내 머리를 넘을 정도로 쌓였던 마당. 감기 한 번 안 걸린 추억은 깨끗한 공기 탓이었을까? 추운 겨울엔 군고구마가 딱 맞는데.......
윤기정   18-01-14 22:02
    
이틀간 답답했습니다.  컴퓨터가 먹통이라서. 첫날은 본체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들고 나갔다니 이상없다네요. 오늘은 모니터를 가지고 나갔지요.  부속 하나 갈려면 차라리 바꾸는 게 낫다 해서 바꿨습니다. 텔레비젼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전화도 사용하고 자동차로 서울 나들이도 다 했는데 적막강산의 느낌이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움직이던 놈이 딱 숨을 멈추자 일어난 현상입니다. 물도 공기도 바람도 햇빛도 인정도 넘칠  때는 모릅니다. 자주 잊었던 일들을 부재의 가르침으로 다시 생각합니다. 멋진 후기 읽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그리고 작성한 분들 노고 덕입니다.
     
안해영   18-01-14 22:13
    
우리는 손안에 전화기, 컴퓨터, 사진기, 편집기, 원고지, 메모지, 빛...., 또 뭐가 있을까요? 
컴퓨터가 없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상상. 거리는 또 어떻게 될까요? 신호등도 다 컴퓨터로 조작될 텐데.
불 없이 살던 시절로 간다는 생각을 해 보니, 참 아득합니다. 윤 선생님 캄캄한 지옥 같은 생활에서 광명 찾은 기쁨을 알 것 같습니다.
선점숙   18-01-15 17:17
    
AI 시대가 눈앞에 왔는데도 기계에는 친숙하지 못합니다. 남편이 바둑둔다며 컴퓨터 앞에 있으면 핑계거리를 찾은 듯 글을 안써도 된다는 안도감이 듭니다. 딸이 노트북을 사용하라며 주지만 작은 화면과 마우스에 익숙해지지 않아 포기합니다. 후기를 써야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머리를 누를 때도 있지만 그 덕분에 쓰다버린 활자들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AI가 아무리 인간과 같다진다 하여도 적응 능력만은 인간을 따라갈 수없다는 말을 희망으로 삼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