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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수필, 뭣이 중헌디?(종로반)    
글쓴이 : 선점숙    18-01-05 20:59    조회 : 5,466

딥러닝실전수필(01. 04, 목)

-우리 수필, 뭣이 중헌디?(종로반)


1. 딥러닝실전수필은? 

-전통적 수필 작법은 물론 문화, 영화, 음악, 철학, 역사를 접목한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는 퓨전(fusion), 크로스오버(cross-over) 실전강좌.

-수필가로 활동하거나 고품격 서정 수필을 쓰려는 분. 시대의 화두인 인문학적인 지식을 습득하여 차별화된 에세이를 쓰고 싶은 분

-어떻게든 속성으로 글을 잘 쓰고 싶은 분, 체한 것처럼 무언가 걸려 진도가 잘 나아가지 않는 분, 매사에 심드렁하고 귀찮으며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은 분 대환영!


2. 수필은 무엇인가?

가. 수필의 기원(중요하지 않음!)

이설이 많으나 동양에서 수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남송의 홍매(洪邁, 1123~1202). <<용재수필(容齋隨筆)>> 서문에 "뜻한 바를 수시로 기록하여 앞뒤 차례가 없으므로 수필이라 부른다"는 글이 있고, 서양에서는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가 'Essais(試論, 實驗)'라는 새로운 문학 형식을 내세움. 이후 베이컨(Fancis Bacon,1561~1626)이 계승. 한편 한국에서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연경(燕京) 기행문《열하일기(熱河日記)》에 일신 수필(日新隨筆)〉이 거론됨.

* 수필의 원조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플라톤이나 세네카, 니체(서양)를 꼽는가 하면, 장자를 우러르기도 하고(동양), 한국에서는 김만중, 이인로 유형원을 거론하기도 한다.

나. 수필의 구분(역시중요하지 않음!)

역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논의되지만, 수필을 가름하게 될 때 무겁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포멀 에세이(重隨筆, formal essay)와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인포멀 에세이(輕隨筆, informal essay)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

한국에서 성행하는 창작문예 수필은 대부분 '인포멀 에세이(miscellany)'. 반면 서양의 '에세이(Essay)'는 적당히 짧은 길이의 산문을 통칭. 서정적인 글뿐 아니라 수상록, 고백록, 칼럼 같은 시사적인 글, 논술, 비평문과 소논문, 전문분야의 글도 포함.

* 다른 문학 장르에서는 이처럼 편 가르는(!) 법 없다. 편의상 길이로 구분할 뿐이다. 수필의 종류와 구분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야말로 ‘수필의 후진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3. 문학 작품(수필)과 문학 작품이 아닌 것(일반산문)의

차이점(매우 중요!!!)

작자가 상상을 통하여 미적 경로를 거쳤는가, 또는 통일된 주제의식으로 재창조 과정을 거쳐서 재구성했느냐 그러지 않았느냐의 차이로 가름. 미적 경로란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하지도 못하지만), 상상과 사유의 힘을 통해 형상화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여정을 일컫는다. “문학작품은 상상과 사유의 터널을 지나야 비로소 태어난다고요.


4. 회원 글 합평


위대한 일(이천호)

생명 창조의 위대함을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보잘것없다 생각한 구더기 따위도 신의 섭리에 의한 존재다.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빈대나 배추흰나비를 없애기 위해 인간은 농약 같은 약품을 사용한다.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을 약품으로 소멸시키는 것도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횡포로 본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짝짓기를 통하여 그들의 생존 영역을 넓혀 나간다. 이것은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사업에 동조해야 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시작 부분의 거대한 우주에 대한 언급은 범위가 너무 넓으므로 우리 삶과 가까운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짜임새가 있을 듯해 보인다. 

 

5. 종로 반 동정

종로 반 2018년 학기 수업이 새해와 함께했다. 떠들썩했던 연말의 분위기에서 조용한 새해맞이 수업 분위기였다. 호주로 잠시 여행을 떠난 김기수 선생님을 빼고 전원 출석하여 올 한해 모두 건강하여 결강이 없는 해가 되기를 바랐다. 첫날 수업 후 뒤풀이 없이 집으로 향하는 이변도 연출되었다.

서강 반에서 종로 반으로 옮겨 온 지 1년 반 만에 김창식 교수님이 강의 반을 넓혔다는 낭보를 1월 5일 오후에 접했다. 한국산문의 롯데 수필 일산 반을 3월부터 맡게 되어 교수님의 제 2강의 실이 생긴 것이다. 종로 반 글 벗 모두는 덕담과 교수님 제2 강의실에 대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김창식 교수님 아자!


선점숙   18-01-05 21:51
    
글은 못쓰고 있지만 문우님들의 끈끈한 정이 발목을 잡아 강의실로 이끈다. 서로의 글에 비판보다 질 좋은글이 되도록 서로 격려하니 작품을 가져와도 좋을 것이다. 합평을 받고나면 막혔던 부분이 풀리기도한다. 못썼다고 비판하는 이도 없으니 미완성 글이라도 문우들께 보여줘도 괜찮을 것이다. 올해는게으름이라는 적을 몰아내고 작품을 쓸수있기를 바래본다. 교수님이 유명해져서 우리에게서 멀어지기전에...
안해영   18-01-05 22:24
    
어떻게 윗부분은 작고 아랫부분은 크지? 아무래도 사용한 워드가 다르기 때문일 듯. 에고.
갑자기 모든 일이 바삐 돌아가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돈다. 교수님이야 바쁘시겠지만, 우리는 아닌 데.
그저 처한 환경에 조곤조곤 따라가기만 해도 되는데, 부화뇌동하는 것은 무슨 병일까?
교수님이 더 바빠지기 전에 한편이라도 더 합평을 받아봐야 한다는 선소녀님의 말에
공감을 해 본다. 맘만...ㅋ
윤기정   18-01-05 23:15
    
합평에서  '위대한 일'을 논하더니 위대한 일을 해냈습니다.  종로반 또는 김창식 교수가 번식에 성공했습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올해는 반 뿐 아니라 반원도 증식하는 위대한 일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글 쓰는 길에 좋은 벗들의 동행을 기원해 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넘치는 밝은 세상을 그려보는 일이 즐겁습니다.
선점숙   18-01-08 12:29
    
글쓰기도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가 봅니다. 시골에 가기전에, 교수님이 더 바빠지기전에 글의 합평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니 설겆이 하는 동안에도 미루었던 작품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손을 놓아 버렸던 글쓰기였습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쓰다가 버려진 글들이 꿈틀댑니다. 생명이 없는 글들었는데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생명을 불어 넣으려면 수없이 고치며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할지도 모릅니다.지쳐 포기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봄을 기다리며 연두빛 새싹에 취해 산으로 가기 전에.
김기수   18-01-13 13:37
    
오늘도 종로반을 기웃거렸습니다. 글쓰기에 시선을 고정시키려고 해도 자꾸만 잡생각에 나 자신을 잊고 있습니다. 한국의 추위에 문우님들께서 마음까지도 허전할까 봐 이곳의 뜨거운 열기를 보내고 싶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종로반에서 느낀 사랑만 가슴에 남는군요. 또한 아름다운 추억만 그리움으로 남는 시간입니다. 갑갑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이곳 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문우님 모두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김교수님의 롯데 일산반, 축하드립니다. 만사형통 바랍니다. 아울러 종로반 파이팅!
     
선점숙   18-01-14 18:03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뉴스에서 샘계신 곳 날씨가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님이 건강해졌음 서울에 빨리 오세요.  덥다고 에어컨 바람 넘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시는 동안 글 많이 써오셔서 저 성가시게 해주셔도 좋습니다. 좋은 책보다 함께 공부하는 종로반글이 저에겐 더 유익하거든요. 건강관리 잘하시고 잘 계시다 빨리 오세용.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