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가파른 낭떠러지 옆을 걸어가고 있을 때
절벽 아래서 “사람 살려!”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려다보니 어떤 사람이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는 낭떠러지 끝자락이라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낮은 곳이었지요.
스님은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손을 그냥 놓아버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맹인이라 주위를 살펴볼 수 없어
자신을 놀리는 말이라 생각하고 살려달라고 다시 애걸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손을 놓으라고 외쳤지만
맹인은 손을 놓으면 떨어져 죽을 줄 알고 매달려 발버둥만 쳤습니다.
지친 맹인은 결국 손을 놓아버렸고 엉덩방아만 찧었지요.
맹인은 멋쩍어 하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답니다.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방(放)은 놓는다는 뜻이고
하(下)는 나무의 근원인 뿌리로
내 인생의 주인공인 ‘참나’에 해당합니다.
착(着)은 집착이나 애착입니다.
착(着)은 세상에 나와서 얻었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공(空)인데,
온갖 번뇌, 갈등, 원망, 집착, 이득과 손실과 옳고 그른 것에 얽힌 모든 것을
부처님께 공손히 바쳐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라는 불가의 가르침입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치맛귀를 잡고 찾아갔던 절에 대한
특별한 인상과 기억은 아주 소멸되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몸 속 깊숙이 세포 안에 자리 잡아
부지불식간에 내 생활 한 방편이 되어주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내가 특별히 불교를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내 시편과 산문에서 불교적 사유가
여기 저기 산개되어 편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심증이 그리 틀리지 않는 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절이든 일주문 안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함장에 앞서 절로 고개 숙여 절을 올리는 버릇이 있다.
절에 대한 외경심을 절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늦은 저녁 선사에서 들려오는,
결 고운 종소리는 얼마나 은은하고 평화로운가.
우연히 들리게 된 절에서 듣게 되는,
침묵을 우려낸 종소리가 삶아 빤 깨끗한 행주가 되어
마음의 그릇에 묻은 온갖 얼룩을 말없이 지울 때의 감동을
나는 귀하게 여기며 산다.‘
‘이상한 일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절을 다녀올 때마다 절을 소재로
많은 시편들이 절로 써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는 그동안 절을 소재로 많은 시를 썼지만
그 시편들을 다 발표하지는 않았다.
서랍 속에 자고 있는 시편들 중
어느 것이 잠에서 깨어나
지상에 불쑥 얼굴을 내밀어 올지 아직 나는 모른다.‘
(이재무 수필 <절이 낳은 시편들> 중 일부 발췌)
어릴 적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상과 기억들은 무엇일까요?
분명히 그 인상과 기억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언제나 주인이 자기들을 꺼내줄까 하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내 안에 얽히고설키어 있는 유년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이름을 달아주고 멋진 문장으로 가다듬어서
훨훨 날아가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요?
남들은 볼 수 없지만 나에게는 상처나 멍으로 남아있는 기억들을
나로부터 해방을 시켜준다면,
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 그림들을
형상화된 문장들로 잘 다듬어준다면
우리의 마음은 훨씬 가볍고 맑아질 것 같습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더니 첫눈이 내렸습니다.
비록 짦게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11월의 첫눈이 왔던 오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어릴 적 첫눈이 나에게 남겨놓은 추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