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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견디거라, 작고 아름다운 것들아.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7-11-13 19:33    조회 : 2,167

나는 가슴 속에 조그맣게 축소된 바다를 지니고 있다.’라는 첫 문장부터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현기영 소설가의 수필 <깅이통>

제목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제주항 해변의 매립지에 파묻혀 사라진,

소설가 어린 시절의 깅이통

참게의 방언인 깅이에 참게가 많다고 붙여진 물웅덩이입니다.

고향 바다를 찾아간 시인은 쓸쓸한 산책자가 되어

찬바람을 맞으며 거닐다가

물가 가까운 곳에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물웅덩이를 발견하지요.

현무암의 암괴가 질펀하게 깔려 온통 검은빛인 바닷가에서

흰 이불 호청을 펴 넌 듯 하얗게 빛나고 있는 물웅덩이.

아직 어려서 헤엄칠 줄 모르는 코흘리개들의

여름철 놀이터가 되 주기도 했던 깅이통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소설가는

보석 상자처럼 아기자기한 물속을 들여다봅니다.

물웅덩이 안에는 알록달록한 색들과 흰 모래가 깔렸고

아름다운 수생생물들이 꼬물거리고 있습니다.

바늘처럼 가늘고 작은 물고기 떼 사이로

갈매기 깃털 하나가 떠있습니다.

깅이통의 천적 갈매기가 나타나면

흰 모래게는 흰 모래 속으로 숨어버리고

참게 고동 군부 말미잘 성게 거북손들도

포식자를 피해 바위틈에 떡 붙어 지냅니다.

이 작은 생물들이 바위틈에 박혀 지내는 것은 포식자도 두렵지만

더 큰 이유는 하루에 두 번씩 있는 밀물과 썰물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소설가는 생각합니다.

깅이통도 작고 그 안의 생물들도 작지만

나름의 훌륭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산지대에는 작은 풀들만 있는 것도

키가 큰 나무들은 비바람에 꺽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태계의 지혜와 함께

작은 것이 훨씬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척박한 곳에서는 몸피와 함께 욕망을 줄여야한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북쪽 수평선 근처가 둔한 강철빛으로 변하며 어둑어둑해지고

밀물과 함께 바람도 거세집니다.

깅이통의 고요가 깨지면서 밀물이다!”하고 소리 없는 메아리가

물통 안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검은 구름의 서쪽 상단부에 숯불처럼 노을이 불게 타고

붉은 노을은 깅이통 물에도 번져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검은 현무암에 둘러싸인 그 붉은빛은 거대한 숯불 같기도 하고

붉은 용암 같기도 아니 우주의 붉은 심장 같기도 합니다.

이를 앙다물고 파도와 맞선 현무암이 느끼고 있는 것을 소설가도 느끼고 싶습니다,

어려운 시간이 왔구나. 잘 견디거라. 잘 쉬거라 작고 아름다운 것들아.

 

물웅덩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쓴,

전경화 법칙의 정수를 보여 준 수필입니다.

소설가다운 세밀한 묘사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오늘은 송수관 문학상을 수상하신 기념으로

이재무 선생님께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점심이어서인지 더욱 맛있었지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닥터 지바고>>

최고의 영화였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필두로

모두들 추억의 영화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언제나 즐겁고 편안한 일산반 벗들이 있어서

11월의 쓸쓸함은 저만치 물러가 버린 듯합니다.

 


진미경   17-11-13 21:00
    
깅이통의 마지막 문장이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려운 시간이 왔구나. 잘 견디거라. 잘 쉬거라. 작고 아름다운 것들아.
2017년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겨울 채비에 한창이지요.
김장과 겨울 찬 바람에 대비해서 옷 갈무리하고요.
봄,여름, 가을의 많은 시간을 울고 웃고 힘겨워하며 이 시간까지 왔네요.
토닥토닥 안아줄래요. 맛있는 점심 식사 후 영화 이야기로 풍성했지요.
함께 하는 일산반 !  정겹습니다.
한지황   17-11-13 22:52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말 같아서 저도 가슴이 뭉클했어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나도 소우주라는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위로의 글이지요.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수필을 쓰고 싶어요. 현기영 소설가 처럼.
몸과 마음 모두 풍요로왔던 하루가 다 가고 있네요.
다음 주도 오늘 같은 날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