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편들 중 상당수가 길 위에서 써진 것들이다.
버스와 기차와 전동차 안에서
나는 틈을 내어 책을 읽었고
차 창밖을 스쳐 지나는 풍경들을 일별하다가
도둑처럼 쑥 찾아온 시상을 재빠르게 메모했고,
집으로 돌아와 구성하고 또 구성한 뒤
정리한 것들을 갈무리해두었다.‘
시인에게는 하찮게 보낸 시간들도 시가 되어 나타납니다.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을 실감하는 시인은
한강변을 거니는 산책길에서도 시상을 구상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무서운 적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시인은
그것을 이겨낼 방법으로 걷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걷다보면 그동안 적충되어온 감정의 불순물이 빠져나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불쑥 충동처럼 혹은 은폐된 선물처럼 몸 안에 내재된
시 이전의 어떤 감정의 덩어리가
몸 밖으로 갑작스레 튀어 올라올 때
시인은 그들을 달래며 신줏단지 다루듯 조심스럽게 집으로 데리고 와서
컴퓨터 속에 고이 모셔놓습니다.
간간히 시간이 날 때마다 시인은 예의 보셔온 그분들을 꺼내어
정성들여 화장을 시킨 후 시의 옷을 입힙니다.
앞태도 살피고 뒤태도 살펴 성장시킨 그들을 대기시켰다가
잡지사에서 초청이 오면 고이 보내드립니다.
‘급하게 흐르는 여울물이 큰 돌을 만나 아프다고 소리칩니다.
안쓰러운 나머지 돌에게 원망이 들고 여울을 위해
저 돌을 꺼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순간 여울 때문에 돌은 또 얼마나 부대끼고 고되었을까를 떠올리니
이번에 여울에 시달려온 돌이 안 돼 보이고 그의 생이 불쑥 서러워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돌이거나 여울입니다.
어제는 여울이었다가 오늘은 돌이고
오늘은 돌이었다가 내일은 여울인 셈이지요.
여울은 돌을 만나 여울 빛이고
돌은 여울을 만나 돌 빛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 만든 빛깔인 셈이지요.
저 아프고 아름다운 관계를 사랑이라 부르겠습니다.‘
시인이 일상에서 재빠르게 메모한 시상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두들깁니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시인의 따스하고 깊은 시선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알랑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프고도 아름다운 관계가 사랑인 것을 알아야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나봅니다.
어제는 고흥에서 열린 <송수권 시 문학상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송수권 시 문학상 본상 수상자이신 이재무 선생님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최남단 고흥까지 다녀오느라
신 새벽부터 자정까지 하루를 다 소비해야하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25명이나 되는 분들이 함께 해주셨다는 사실에
잘 살아왔다는 자부를 하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 모두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이 틈틈이 메모한 시상들이 오늘의 수상으로 이어지듯
우리들도 짬짬이 떠오르는 감상들을 고이 적어두었다가
수필의 옷으로 단장시킨다면 스승에 걸 맞는 제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