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 반장이 1교시 인문학 수업만 듣고 중요한 일로 급히 다녀올 곳이 생겼답니다.
저는 요즘 수필반 수업만 듣고 있지만 ‘땜빵’으로 오랜만에 수필반 수업 풍경을 그려봅니다.
<오감 여행 유감> 문영일
<제발, 컴백홈> 김윤미
<산사(아가위)> 이은옥
세편의 합평이 있었습니다.
**단상(斷想), 유감(有感), 또는 무제(無題)등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 정도로 매력(?) 있는 어휘들이지요.
하지만 제목으로 되도록 쓰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감여행>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매끄럽게 잘 쓰셨습니다.
**우리는 글 속에 뭔가 꼭꼭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도 합니다.
다짐, 마무리... 빼도 좋지 않을까? 좀 아깝다, 일단 넣어보자. 고민하다가 결국 집어넣고야 맙니다.
과감히 생략하면 여백이 생기고, 독자가 사유할 자리도 마련되지요.
**김윤미 샘의 글은 <톰 소여의 모험>보다 더 재밋다는 독자의 호평을 들은 글입니다.
저도 참 재밋게 읽다가 끝에 가서는 마음이 쨘~해 지더군요.
궁금증을 자아내는 열린 결말이 일품입니다.
**상투적인 표현 vs 낯설게 하기.
아, 또 여기서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배워야하는 존재…….
아마도 날씨 탓일 겁니다. 온 산에 물든 단풍 탓일 겁니다.
우리 분당반 문우님들, 요즘 무척 寡作이십니다. 저를 포함해서….
세 편 합평을 마치고 백석 시인에 대한 모든 것을 열강해 주셨습니다.
얘기의 단초는 향처와 경처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여인을 거느린(?) 백석 시인. 그 중 한 여인에게 무려 네 개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본명은 김진향이지만 영한, 자야, 길상화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이 여인에게는 이토록 다양한 정체성 있었다는 얘기지요. 이쯤은 되어야 시인의 마돈나?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나린다”로 시작되는
1938년에 나온 <<여성>>이란 잡지에 실린 시입니다. (맞춤법은 원문을 옮겼습니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것이다.” 이렇게 끝나는데,
눈이 나리는 것과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는 것이 무슨 관계람?
<흰 바람벽이 있어>의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마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통영의 '란'이라고 알려진 또 한 여인을 그리며 쓴 시랍니다.
시인의 불륜은 원죄다? 면죄부를 주는데 동의하시나요?
백석의 시에는 이념이나 정치, 민족의식 따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대표적 이념지인 <<창작과 비평>>사에서 백석문학상을 운영한다고 하네요.
1997년 故 자야가 낸 2억원의 기금으로 백석문학 기념사업회가 제정되었답니다.
그런데 백석 시집의 인세는 다 어디로 가는 거냐는 문영일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러게요.
김형수님의 저서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 실린 <인식의 도구들>이란 글을 공부했습니다.
진과 선과 미는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작동되는 도구라는 내용인데 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수업의 말미는 ‘멋진 4교시’였습니다. 설화영 선생님의 신입인사가 있었습니다.
화통하게 쏘셨고, 환영한다는 건배사로 막걸리 잔을 부딪쳤지요.
물론 김정미 반장님도 일을 마치고 흰 머플러를 휘날리며 달려와서 같이 즐겼습니다.
설화영 선생님, 분당반에서 좋은 시간, 알찬 결실 거두시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국화꽃 향기가 물씬 나는 만추에 우리 샘들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