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치에서 미적 기능으로
문학을 문학이게 해주는 것은 문학의 형식적 측면
즉 기법 혹은 장치들이라는 것이 형식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입장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쉬글로프스키는
“기계론적 형식주의”라는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문학적 장치만이 문학의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영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학은 장치들의 총계이며 문학 작품의 내용은
형식이 가동되기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주의자인 트로츠키는 <<문학과 혁명>>을 통해
형식주의자들은 사회적 인간의 심리적 요소를 간과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문학예술은 사회적 존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구성물이므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은
문학작품의 사회성, 정치성에 주력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체코의 이론가 무카로프스키는
문학의 해명에 있어서 문학적 장치가 매우 중요하지만
장치 체제에 대한 논의만으로는 부족하며
정치 개념에 소위 ‘미적 기능’의 개념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동일한 장치도 그것이 어떤 맥락에 의해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미적 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무카로프스키의 ‘미적 기능’ 개념의 도입으로
형식주의자들의 ‘장치’에 대한 논의는 사회, 역사적 함의를 갖게 되고
문학 내적인 문제에만 갇혀있다는 혐의에서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장치가 ‘낯설게 하기’를 곧바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논의가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후속 논의들
러시아 형식주의는 문학 형식에 관한 배타적 접근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자연스럽게 구조주의로 이어졌고 문학 고유의 속성에 대한 탁월한 설명으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문학이론의 반열에서 밀려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식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이글탄은 <<문학이론입문>>을 통해
시적 언어를 일상 언어라는 규범으로부터의 일탈로 간주하는
형식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대하였습니다.
일탈이 가능하려면 일탈의 대상인 규범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공유하는 공통의 통용체로서의
어떤 단일하고도 규범적인 언어가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바흐친과 메드베체는 <<문학 연구에 있어서의 형식적 방법>>을 통해
형식주의자들이 시적 언어를 전경화하면서
문학으로부터 객관적 현실을 배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문학 작품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현상으로서
문학은 문학 외적인 다른 것들
즉 과학적, 윤리적, 이데올로기적인 창조물들과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
해명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제엄슨 역시 <<언어의 감옥>>에서
형식주의가 문학을 언어외적 세계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스스로 언어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소음들 그리고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형식으로 제한해서 이야기하자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만큼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이론도 흔치 않습니다.
‘낯설게 하기’는 새롭지 않으면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는 슬로건과 등치되면서
문학 (예술) 창작 영역에도 나름의 큰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 모더니즘의 단계에 이르러
작가들은 더 이상의 형식은 없다고 말합니다.
러시아 형식주의는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중 작가대회에 참석하느라 장춘에 다녀오신 선생님으로부터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비롯해 신해혁명, 서태후 등등
흥미로운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찍어 오신 사진들을 보며
언젠가는 우리도 장춘에 가보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