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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수퍼맨과 위버맨슈(종로반)    
글쓴이 : 윤기정    17-10-16 11:40    조회 : 4,849

딥러닝실전수필(10. 12, 목)

- 1+1 수퍼맨과 위버멘슈(종로반)

<수퍼맨과 위버멘슈(김창식, 2010 선수필 가을호)>는 ‘1+1’ 구조로 쓰인 철학 에세이다.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폭포와 분수>(이어령), <나무>(이양하), <갤러리에서>(카프카)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짧은 산문의 함의와 구성 기법을 공부하고 나름 고유한 관점으로 글을 써보자. 명작에서 얻는 영감으로 깁는 글의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그나저나 ‘수퍼맨과 위버멘슈’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


1. 수퍼맨과 위버멘슈

가. 노는 물이 다르다

초인(超人)이라고 번역되지만, 슈퍼맨(superman?英)과 위버멘슈(Ubermensch?獨)는 종(種)과 유(類)가 다르다. 출신과 태생, 지향하는 목표나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한 다르다. 양자 간 유사성(similarity)이나 인접성(closeness)이 없으니 빗대어 은유할 수도 없고 화폐 환전하듯 치환할 수도 없다. 이른 바 노는 물이 다르다. 우물물과 강물, 초원과 삼림처럼. 악어와 하마, 사자와 호랑이처럼.

나. 수퍼맨 프로파일링

-세상을 지키는 지구방위대(배트맨, 원더우먼, 캣우먼, 그린 랜턴, 아쿠아맨...) 리더. -눈에서 레이저 빔을 투사하고, 산을 허물며, 미사일을 껴안고 지구 궤도를 나는 능력자지만 정체성에 대한 회의로 시달린다. 수정 얼음으로 만들어진 크립톤(Krypton) 행성이 고향임.

-행성 붕괴로 아기 때 지구로 보내져 양부모에 의해 길러졌다. 모범생 이미지지만 뿌리를 찾아 가출, 연락이 닿지 않는 등 비행(非行??飛行?)소년으로 일관한 적도 있다. 여러 차례 영화에 출연. 단짝은 배트맨, 같은 보도방(DC코믹스)소속이다.

-캔자스 동네 헬스장에서 몸을 우람하게 가꾸었음. 평소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니는 ‘알파 남’ 타입인데 어리바리한 신문기자로 위장한다. 최대약점은 촌스러운 패션 감각이다. 쫄쫄이 내복을 겹쳐 입은 데다 빨강과 파랑 원색 의상. 요즘 여자들 옷 잘 못 입는 남자별로라는데.

다. 위버멘슈, 너는 누구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에 첫 등장. 니체는 기독교를 ‘노예도덕(Sklavenmoral)'이라며 비판했다. 기독교가 구원의 주체인 신의 존재를 창조했다고 보았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케 하고 신에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나아가 노예도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복합심리를 ‘르상티 망(resentment, 패배자들의 시기심과 자기비하, 자조 섞인 위로와 한탄)’이라고 명 명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초인사상을 주창했다. ‘모든 신은 죽었다(Tod sind alle Goetter)!’는 선언과 함께.

-우리에겐 ‘전혀 똑같은 삶’이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괴롭더라도 고통스러운 '영원회귀(Ewige Wiederkehr)'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자주적이고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즉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삶을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인류의 기존 문법과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가 초인이다.

라. 일상의 초인

-자못 이상한 것은 만화나 SF 영화에나 나오는 ‘슈퍼맨’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반면, 인간을 벗어나거나 넘어서도 인간일 수밖에 없는 ‘위버멘슈’는 있음 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초인의 출현을 목 놓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광야에서도, 저잣거리에서도, 어쩌면 교회 내에서도.

- 영원회귀를 긍정하는 초인이나 시인이 고대하는 ‘백마 타고 오는 숭고한 초인’까지는 아닐지라도 ‘일상의 평범한 초인’과 거짓말이라도 조우하고 싶다. 이를테면,

- 작은 일에도 책임을 지는 사람, 타인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 없는 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 가까운 사람을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 않고 더더욱 예의를 지키며, 돌아서는 뒷자리에 언뜻 여운과 향기가 머무는 사람,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2. 회원 글 합평

나의 퀘렌시아 ? 길 위의 나(선소녀)

원래 하나의 작품이었으나 1차 합평 때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을 거쳐서 별개의 글로 나누기로 하였다. 그런 관계로 2차 합평에서는 두 편의 작품을 함께 다루었다. 독립된 별개의 작품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작품 구성은 새로운 시도가 될 법하다. (예:<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 작가의 꼼꼼한 퇴고로 더 정확한 문장이 되었다. 몇 군데 보이는 추상적 표현은 대화를 삽입하거나 실례를 드는 구체적 표현으로 바꾸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 두 작품 모두 마음의 변화를 다룬 글로 변화 과정의 추이나 결과를 표현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진정성 있는 소재인 만큼 이를 넘어서는 작가적 역량을 기대한다.

걸음마 연습(김기수)

해외 체류로 장시간 강의를 빠졌으나 대신에 좋은 글감을 얻었다. 1차 합평보다 구성이 간결해졌다. 정확한 문장은 김기수 님의 장점이니 더 언급할 것이 없었다. 다만 제목인 ‘걸음마 연습’에 관한 글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호흡기 질환’ 소개에 할애한 분량이 지나치게 많다. 해결책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으로 바꾸든지, 감기몸살 부분을 대폭 줄여서 연결고리의 역할만으로 축소하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작가의 뜻에 따라 글은 살리고 그에 합당한 제목을 함께 고민해 보았다. <환자일기> <병상 일기> 등이 거론되었다. 인용된 <마지막 잎새>와 관련하여 팩트 확인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버넌트(윤기정)

일상생활 중에 맞닥뜨린 의사체험(?)을 소재로 한 특이한 글로서 제목 선정과 상황 묘사는 무난하였다. 중심 사건을 다룬 문단은 서두로 배치해야 효과적이라는 지도 말씀이 있었다. 두 개의 의 함의가 모호한 점을 보완하고 후배의 이야기에 할애한 문단은 생략한 것이 글을 간결하게 만들었다. 영화 <레버넌트>의 인용은 바람직하지만 극한상황에서의 생존 정황을 극적으로 기술하여야 핍진성을 기할 수 있다. 마지막 문단의 ‘죽음’과 ‘삶’에 대한 고찰은 ㅡ작가가 의식하지는 못 했더라도ㅡ 이데커의 존재론을 연상케 하여 글의 깊이를 더하였다. 이것이 바람직한 수필의 철학 성이다. “유한한 삶은 죽음을 선취(先取)하여 의미를 확보한다.”    


3. 종로반 동정

언제 만나도 부담스러운 니체와 카프카를 구체적인 사례 제시로 오늘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았다. ‘수퍼맨과 위우버맨쉬’의 1+1 구성법은 앞으로 다양한 글쓰기에 시사점을 주었다.

오랜만에 강의실에 나타난 강정자 작가. 뜨거운 환영! 미국에서 따님 가족과 만나고 여행도 하고 즐거운 생활을 만끽한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들어나 보기 좋았다. ‘퀘렌시아(선창)! 레버넌트(후 창)!’ 조금은 특이한 건배사마저 즐거운 뒤풀이였다. 

 

4. 우리말 바루기(9회)

~던 : 지난 일을 회상하거나 그 사실의 지속을 의미. ~든 : ‘~든지’의 준말.

?~던지 :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나왔다. (회상)

~든지 : 하든지 말든지 나는 모른다. (선택, 무관)

?다르다 : ①같지 않다. ②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지거나 표나는 데가 있다.

틀리다 : ①사리?이치?계산 등이 맞지 않다. ②일이 순조롭게 되지 않고 어그러지다.

※나는 너와 틀려(×) → 나는 너와 달라(○)



윤기정   17-10-16 13:20
    
종로반 동정에 '하나 더하기'합니다. 문학 기행으로 안반장이 빠진 강의실 분위기는 꿈없는 잠? 파문 없는  호수? 여하간 무언가 허전합디다. 비단 안반장 뿐 아니라 어느 분이라도 보이지 않는 날은 허전하고 좋은  강의 듣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만발한 쑥부쟁이에 다가서니 수십마리 호랑나비가 일시에 날아오릅니다. 가을을 떠도는 슬픈 영혼일까 생각하다 그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글을 사랑하고 숙명으로 느끼는 이들의 아름다운 상상이 나비의 나래에 얹힌걸로.
     
안해영   17-10-19 02:42
    
쑥부쟁이 위에 앉았다가 비상하는 나비의 날갯짓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안해영   17-10-19 02:38
    
종로반 1+1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슈펴맨이 뭐여요? 하하, 이래서 웃지요. 내일 낮에 사이버 부에 부탁해서 수정해야겠습니다. 윤기정 회장님의 빈자리 파문을 생각하니 비 오던 12일 날이 떠오르네요. 종로반을 감추고, 정지용 문학관과 청남대를 헤매며 빗속을 거닐었던 날. 잠깐 수필을 잊었지 뭡니까? 대청호에 가득한 물에 플러스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지요. 대통령의 별장에서 작은 오두막 한 칸 지어 살고 싶더라고요. 좋은 경치에 묻혀 살면 좋은 것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요? 가끔 여행 삼아 나들이하며 좋은 느낌 받아 수필로 그려내는 것이 더 좋기를 바라봅니다.
선점숙   17-10-24 10:34
    
글을 쓰는 사람들은 펜과 컴퓨터를 항상 가까이 두어야 안심이 된다고들 합니다. 저는 아직 글쓰는 것보다 읽는게 좋고, 사람들과 어울려 한잔하는 재미가 더 좋으니 글쓰기는 멀었나봅니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맴돌며 머물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활자화시켜 생명력을 불어 넣는게 어렵습니다. 마음과 삶의 방향의 키를 제대로 잡지 못해 표류하는 저를 느끼면서 길을 헤매고 방황합니다. 숲속에서 필요한 나무만 보지말고 숲 전체를 보고 숲이 주는 향기에 감사하며 숲의 잡목까지 관심 갖는 제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가을이 제게 주는 고뇌의 선물입니다. ㅎㅎㅎ 문우님들이 있어 이 가을 힘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