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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각하지 못하는 인생은 인생이 아닙니다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7-09-25 19:14    조회 : 1,806

낯설게 하기

 

톨스토이는 집안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한 가구를 마주치게 되고

자신이 그 가구의 먼지를 털었는지 털지 않았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청소가 너무 일상적인 일이어서

무감각, 무의식적인 상태로 일을 하였던 탓이지요.

톨스토이는 이렇듯 사람들의 복잡한 삶들이 무의식적으로 흘러간다면

그런 삶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지각하지 못하는 인생은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반복된 행위로 인해 사물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것을

습관화혹은 자동화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새로운 사람과 사건, 물건도 자꾸 반복되다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없게 되고

그것을 느낄 수 없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는 것

즉 사물을 죽이는 바로 이 지점, 이 자리에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술의 기능, 필요가 탄생됩니다.

예술의 존재 이유는 삶에 대해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시켜주는 것입니다.

너무나 친숙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물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고

예술의 이러한 기능이 바로 낯설게 하기입니다,

예술은 어떤 대상에 부여된 예술적 기교를 경험하는 한 방식으로

대상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낯설게 하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들을

지각의 자동화로부터 구해내는 것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예술의 기법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물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 사물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묘사합니다.

또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그 일이 처음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묘사해서 낯설게 만듭니다.

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이 낯설게 하기과정을 통과하며

이 과정이 삭제되는 순간 모든 문학(예술)과 은 비문학(비예술)로 환원됩니다.

 

 

스토리와 플롯

 

스토리란 사건을 단순히 인과관계에 따라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한 것인데 반해

플롯은 스토리에 나타나는 인과관계와 연대기적 순서를

특정한 미적 목적을 위해 교란, 해체하고 재구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특정한 미적 목적이란 바로 낯설게 하기를 가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스토리는 문학작품의 질료이지

그 자체는 문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료인 스토리를 새롭고 낯설게 만들기 위해

재배열하고 재구성한 것이 플롯입니다.

플롯은 우리에게 친숙한 서사를 낯설게 만들어주는

가장 대표적인 문학적 장치 즉 기법 중의 하나입니다.

 

모티프와 동기화

 

주제는 어떤 통일성을 가지고 있고

일정한 질서로 배열된 작은 주제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사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주제적 요소들을 모티프라고 합니다.

스토리는 논리적이고 인과적, 연대기적인 순서로 배열된 모티프들의 집합체이고

플롯은 그것들과 동일한 그러나 원래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관련성과 순서를 가진 모티프들의 집합체입니다.

모티프는 스토리와 플롯 양쪽 구성물이지만

그것의 연결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플롯이야말로 독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이런 의미에서 플로만이 예술적인 창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작품 안에는 필수 모티프, 자유 모티프,

동적 모티프, 정적 모티프 등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모티프들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입니다.

문학작품들은 저마다 모티프들을 배열하는 고유한 법칙들을 가지고 있고

이 법칙들은 모티프의 방식을 정당화해줍니다.

이렇게 정당화시켜주는 장치들의 네트워크를

동기화로 명명하며 세 종류로 분류합니다.

 

첫째, ‘구성적 동기화

작품 안에 쓸모없는 모티프들은 존재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모티프들이 낭비가 없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경제성과 유용성의 원칙입니다.

 

둘째, ‘사실적 동기화

모티프들은 개연적인 배열을 통해 실물과 똑 같은 상태를 재현하여

모든 묘사가 사실적인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셋째, ‘예술적 동기화낯설게 하기입니다.

모티프들은 친숙하고 습관화되고 자동화된 대상을

새롭고 참신하게 보이도록 배열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친절하게 해석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진미경 님의 등단 파티가 있었습니다.

고즈넉한 기와집과 정성스레 꾸며진 정원이 아름다운 <일송정>에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오랜만에 등단자가 나와서 더 뿌듯했고

자주빛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한 진미경 님은

등단자 답게 아름다웠습니다.

까뮈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어 해주신 선생님의 축사도 좋았고

친척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던 등단작에 대한 진미경 님의 소감도

가슴뭉클했습니다.

역시 등단은 등단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감격스러운 통과의례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등단의 기쁨을 나누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진희   17-09-25 21:55
    
'톨스토이의 예술의 기법'을 함께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을 쓰거나 비평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소중한 말씀이네요.
아름다운 계절에 얻는 멋진 수확 같아요 ^^
     
한지황   17-09-30 20:58
    
도움이 되셨다니 후기를 쓴 보람이 있네요.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가을에 걸맞는 맛깔스런 글이라는 열매를 따시기를 바랄께요.
진미경   17-09-28 10:29
    
반장님! 고마운 마음 어떤 말로도 표현이 어렵습니다.
이재무 선생님의 덕담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연대하는 삶을 사세요. 글쓰기가 놀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내 일인양 환한 미소로 축하해주는 문우님들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곧 추석 연휴네요.  건강히 잘 지내시고 10월에 만나요.
벌써 보고 싶습니다.
     
한지황   17-09-30 21:04
    
미경샘의 등단파티는 그 누구보다도 감격스러웠어요.
등단작도 감동적이었고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께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순수함을 고이 간직한 미경샘의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이 참 예뻤어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따사로움을 줄 수 있는 글을 무궁무진하게 쓰시기를 바랄께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