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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는 힘이 세다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8-06-04 19:17    조회 : 3,473

죽은 자는 힘이 세다

 

마음의 고통은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느 정도 완화됩니다.

4.3 사건은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폐부의 깊은 상처입니다.

국가는 그 기억의 복권이 두려워

우리에게 잊으라고 강요하는 망각의 정치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인 우리는 그 참사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죽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죽은 자들에게는 자신들을 기억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그 주검들을 기억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자들 마음속에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마음속에도 살아 있습니다.

대학살의 가해자들은 상명하복의 말단인 병졸들이 아니라

가해 집단의 상층부를 말합니다.

피해자들의 죽음을 통해서 승진하고 권력을 얻은 자들입니다.

 

죽은 자는 더할 나위 없이 무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힘이다라고

키에르케고르가 말했습니다.

 

억울한 죽음일수록 그 힘은 센데 4.3 사건의 원혼들이 그렇습니다.

그 원혼들은 죽지 않고 죽은 자들의 마음속에 옮아가 살아왔습니다.

최후 순간의 그 얼굴 표정, 몸짓과 비명은

가해자의 뇌리와 양심에 새겨져

가해자들이 노경에 접어들어 심신이 쇠약해졌을 때

악몽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용서해줄 테니 제발 용서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죽은 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의 상속자들은 사죄는커녕,

죽은 자들을 다시 한 번 죽이려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죽은 자는 힘이 세고, 억울한 죽음일수로 힘이 세고

죽은 자의 시간은 영원하다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강의 자유

 

전에는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지상을 바라보면

강의 본류가 수많은 지류를 합수하여

바다에 이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것은 수많은 가지를 거느린 거대한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이 함께 인간을 낳고 길렀던 전 시대와는 다르게

현대 사회에서는 실용의 이름으로 자신의 모태인 자연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사막화하면서, 함께 자신의 내면도 사막으로 만드는 것인데,

자연의 상실이란 곧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지나친 실용주의는 우리의 영혼을 피폐시킵니다.

도시에 살더라도 자신의 내면에 축소된 자연을 늘 간직하고 있는 자는

그 영혼이 편안합니다.

우리가 자연 속에 있으면 아늑한 행복감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자연 속에 있어야 인간이 완전해진다는 뜻일 것이겠지요.

장엄한 낙조를 볼 때, 느닷없이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우리 내면에 남아있던 자연의 조그만 흔적이

몸 밖의 대자연과 제대로 만나는 순간의 감동 때문입니다.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를 서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도시보다 더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더 평화로운 공화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실용이 결국 사람을 잡고 말 것입니다.

강이 가르치고 있는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 자유와 평화를 본받기 위해서

그 자연스러운 흐름은 손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름 학기 개강 날,

현기영 소설가의 수필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에 실린

수필 두 편을 공부했습니다.

죽은 자의 힘이 세고 그들의 시간은 영원하다

소설가의 말씀이 지상을 내리쬐는 6월의 땡볕만큼이나 강렬합니다.

우리 몸 안에 남아있던 자연의 흔적과

몸 밖의 대자연이 만나는 순간의 감동이야말로

글쓰기의 원천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여름의 더위치고는 너무 강해서

벌써부터 여름나기가 겁이 나지만

나날이 싱그러워지는 나무를 쳐다보며

자연과의 교감을 마음껏 맛보는 여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미경   18-06-04 20:18
    
반장님, 오늘도 쉬지 않고 빠른 후기 올려주셨네요.

어찌 이리 생생한가요?  죽은 자의 시간은 길고 힘이 셉니다.
수필을 통해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오늘 두 편의 수필 합평에 이어 현기영 수필집을 공부했지요.

벌써 유월! 여름에 접어들었어요. 더 짙어지는 녹음처럼 일산반 글공부도
더 깊어지겠지요. 오늘 결석하신 문우님들 , 다음 시간엔 모두 뵙고 싶어요.^^
공인영   18-06-05 13:41
    
개강에 걸맞게^^
새겨둘 만한 좋은 글과 함께 한 수업이었습니다.
날마다 배워도 늘 모자라고 깨달음도 자주
잊어버리는 통에..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의 기록으로 시대를
성찰하며 우리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길...
그 또한 문학의 한 가치겠지요.
정리 잘 해주신 반장님 감사^^
늘 일등 댓글녀 미경씨의 공감력에도
진심 감사!
다시 시작한 여름 학기, 서로 응원하며
열심히 가보기로 해요. 한 주 잘 보내시고
담주에 반갑게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