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문학실전수필(05. 24, 목)
-라오콘과 두 개의 달(종로반)
오늘은 종로 반에 임시 편입한 수필가 두 사람(나도향/윤오영)의 잘 알려진 수필을 ‘계급장 떼고’ 합평했다. <그믐달>과 <달밤>. 유명한 작품이지만 명작이어서 막연히 칭찬하자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안목으로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함께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그래야만 고전을 현재에 끌어와 개선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작품들이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인 <라오콘>과는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1. 명 수필 2제
가. 그믐달(나도향, 발췌)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합평:
만연체, 화려체의 문장으로 쓴 시적 산문. 찬란한 수식과 비유(직유)가 압권. 감정을 ‘달’에 이입시켜 여인으로 의인화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임. 비유와 비유가 충돌하는 문제점도 있음. ‘보여주기’에 치중하여 상대적으로 주제의식은 약한 편.
한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애정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도 있지만 2% 부족함을 감출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달이 갖는 함의(그리움, 소망, 기원, 연인)는 배제되었다. 주인공인 달이 배경과 미장센(화면구성)의 도구로 사용된 듯한 느낌.
나. 달밤(윤오영, 전문)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도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 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합평:
한 폭의 정갈한 수채화를 보는 듯함. 회화적인 묘사만 있고 설명은 없다. 의미부여, 주의, 주장을 배제한 간결한 글쓰기에서 선적이고 도교적인 경지가 배어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가 아니라 극적인 한순간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레싱의 ≪라오콘≫ 을 떠올리게도 한다.
분위기와 정서에 초점을 맞춘‘보여주기’의 진수이자 함축적인 산문의 전형으로 평가되지만, 주제의식은 상대적으로 깊지 않은 편. 시골 풍경에서 드러난 훈훈한 인정이라든가‘우연히 이루어진 만남과 교감이 주제일 수도 있지만 미흡함을 지울 수 없다.
3. 왜 라오콘인가?
가. 라오콘 조각상
높이 2.4m. 로마의 바티칸미술관 소장. 제작연대는 BC 150∼BC 50년경으로 추정됨. 라오콘은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제관(祭官)이었음. 트로이전쟁 때 그리스군의 목마(木馬)를 트로이 성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하여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살해당함, 조각은 뱀에게 감겨 질식당해 죽기 직전의 라오콘과 두 아들의 마지막 고통과 격노를 표현했다. 빙켈만 ·괴테 등 18세기 독일의 사상가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으며 독일의 사상가 G.E.레싱은 이 조각을 제재(題材)로 하여 유명한 예술론을 저술하였다.
나. 레싱의 라오콘
독일 비평가 레싱(Lessing, 1729~1781)의 이론서. 원제는 <<라오콘: 회화와 시의 경계에 대하여. Laokoon: oder ueber die Grenzen der Malerei und Poesie>>
레싱에 의하면 미술이나 조각과 같은 조형예술은 사건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한 장면에 담아내는 공간 예술인 반면, 문학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의 과정을 기술해 나가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서사시에서 표현되는 방식과 조각 예술에서 표현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 장르 내재적인 논리가 따로 있기 때문에 서사시에서 표현되는 라오콘과 조형예술에서 표현되는 라오콘은 다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미술의 범주: 회화, 조각, 서정시 포함
*문학의 범주: 소설, 희곡, 수필, 서사시
4. 종로반 동정
종로 반에 지난 3월부터 새 식구가 들어오고 있다. 이재현 님과 박재연 님이 들어오면서 반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5월 24에는 김상환 님이 합류하여 종로 반에 불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7월 한국산문에 등단하는 최준석 님의 등단 작품 심사평을 김창식 교수님이 쓰신 인연으로 최준석 님까지 5월 31일부로 종로 반에 등록했다.
종로 반은 이제 이천호, 윤기정, 김기수, 김상환, 최준석 남성 글 벗과 이덕용, 김순자, 강정자, 안해영, 류미월,선소녀, 박재연, 이재현 여성 글 벗까지 합 13명의 글 벗으로 강의실이 꽉 차게 되었다. 문제는 지도하는 교수님의 어깨가 많이 아플까 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