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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의 지층에 곡괭이질을 하다(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8-05-14 19:46    조회 : 2,207

대부분 4·3 항쟁을 증언하는 소설을 쓰면서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던 현기영 소설가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성장했던

그의 어린 시절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제주 자연의 본래 모습과 그러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성장했던 그 시절의 작가와 그의 동무들은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속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는 그 시절을 다시 한 번 사는 것처럼

과거 회상에 깊이 몰두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전적으로 어머니에 의해 키워지는 것에 반해

그 시절 아이들은 자연이 키웠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인간을 키운다면 과거에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인간을 키웠던 것이지요.

자연의 자식으로서 자연의 젖을 빨고 자라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광막한 망각의 어둠에 덮여 있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어려웠습니다.

작가에게 고향은 그리움이자 탈출을 꿈꾸는 양가적 감정을 갖게 합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공존하는 감정이지요.

시간의 강물은 흘러가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공동체를 관통해 흐르면서 역사를 바꾸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을 관통해 흐르면서 그 개인을 변화시킵니다.

시간은 신체적 성장을 꾀해주는 반면,

그것의 쇠락을 재촉하기도 합니다.

이 두 줄기 시간의 흐름은 작가로 하여금

공동체 경험과 개인적 경험을 하게 만들었고

이 두 경험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작가의 정체성을 만들었으니

그는 시간의 자식인 셈입니다.

작가의 글쓰기는 폐광 속에서 어둠을 더듬으며

광맥을 캐는 일과 같았습니다.

그의 유년의 기억은 아주 지워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무의식의 지층에 곡괭이질을 하는 그의 작업은

돌에 피를 넣어 살리는 고고학자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독자가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 책을 매개로 하여 자신이 잊혔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에게 기억들은 머릿속을 온통 뒤적거리며 찾을 때보다도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멍한 방심 상태에 있을 때 잘 떠오르곤 했습니다.

머리보다 감각기관이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감각기관에 의해 우연히 일깨워진 과거의 장면들이 여러 곳에 나타나는 소설로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지층 4~5미터의 암흑 속에 파묻혀 있던

고려시대의 연꽃 씨앗들이 칠백 년 만에 발굴되어

실험실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는 사실은

생명의 씨앗들은 죽은 게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우리 과거 시간 또한 깜깜한 암흑 속에 잠겨 있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무의식 속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연히 회상되어진 과거의 한 순간이

우리를 그토록 희열에 휩싸이게 하는 이유는

그 순간이 세월이 흘러도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현재성

즉 생명을 지녔기 때문일 것 아닐까요?

시간의 흐름은 죽음의 행진입니다.

시간이란 거대한 지우개는 우리 뒤를 따라오면서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빈틈없이 지우고

종국에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지상에서 지워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잊혔던 어떤 장면이 그 어둠을 뚫고 떠오른다는 것은

죽음에 맞서는 것입니다. 아니, 죽은 것의 부활이며

생명의 영원성을 증거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현기영 소설가의 수필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중 한 편인

<시간의 강물을 거스르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번 기회에 <<지상에 숟가락 하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며

우리 무의식의 지층에도 곡괭이질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진미경   18-05-14 22:22
    
세월이 흘러도 소멸되지 않는 현재성은 니체가 말한 영혼회귀성과 같다고 했지요.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감각으로 남아 떠오르는 것!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있기도 한 나!  마르셀 프루스트는 초시간적 자아라고 말했다지요.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우리는 수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