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문학실전수필(12.06~12.13, 목)
-릴케, 연탄재, 데미안, 이선희...(종로반)
1. 수필 감상
참으로 가을이 온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이 위대하였다고? 천만에, 위태(危殆)했다. 비를 기다릴 땐 빛의 그물을 촘촘히 펼쳤고, 산뜻하게 더워야 할 땐 낮게 드리운 먹구름이 축축한 어둠을 몰고 왔다. 게릴라성 호우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은 물론. 장마철을 벗어나 안심하며 넋 놓고 있는 사이 도적떼[群盜]들이 우막(雨幕)을 헤집으며 일상을 급습했으니.
치졸한 도시의 여름은 매미 군단이 장악했다. 매미는 시도 때도 없이 깨진 꽹과리 소리를 내며 시위했다. 매미에게 물었다. 왜 힘겹게 울어대느냐고? 매미가 대답했다. 나는 ‘목’으로 운 것이 아니라 ‘몸’으로 운 것이다. 매미가 되물었다. ‘그런 너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울어 본 적 있느냐? 그 많던 매미들이 일시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풍경은 황량하고 사물은 연무(煙霧) 속처럼 흐릿하다. 그렇다고 가을이 온 것은 아니다. 산책길 ‘새의 주검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언뜻 내려앉고’, 철로 길 코스모스가 창백한 웃음을 흩뿌리며,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가 발밑에서 뒤척인다 해도 가을이 온 것은 아니리라. 길가에 웬 여자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가을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수족관 어항 속 금붕어가 푸푸 물풀을 내뿜고, 횟집 수조의 가자미가 무덤처럼 엎뎌 있다 하더라도.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렸다’ 해서 상기 가을이 온 것은 아니다. 아침의 적요함 속에 말발굽 같은 북소리를 듣고, 한낮에 ‘분수처럼 흩어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해 질 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를 듣는다 해서, 그렇다 한들 가을이 온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벽을 타고 전해오는 냉장고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해도 아직 가을이 온 것은 아니리라. 유령처럼 거실을 떠돌다 내려다보는 낡은 아파트 단지에 푸른 안개가 강물처럼 흐르고 목이 긴 보안등이 숨죽여 흐느낀다 한들.
아니, 이제 진실을 말해야겠다. 어떻든 가을이 오기는 왔다. 이제야 알겠다. 참매미, 꽃매미, 말매미, 털매미, 유지매미, 쓰름매미…. 한여름 개구리울음 울다 사라진 매미들의 행방을. 베란다 방충망에 달라붙어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채집(採集)하다 도시의 빈 하늘을 벗어나 유년의 숲으로 떠나간 로봇 매미의 궤적을. 그들의 껍질로 남은 주검이 가을을 불러온 것임을!
잿빛 모노톤의 가을은 음(音)을 소거한 TV 화면과 같다. 가을은 침잠의 계절. 지금 우리는 침묵으로 향하는 중. 그러니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 눈길을 돌려 자신을 들여다보게 될 때 '비로소' 가을이 온 것이리라. 아, ‘내가 나 자신에게 도달하는 일이 왜 그다지도 험난한 것일까?’ 소슬한 바람이 살갗에 소름을 돋게 하는 이 계절, 집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면 그제야 ‘참으로’ 가을이 온 것이다! ‘주여, 이제 그들은 더는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제 기억해야 한다. 바이올린의 현(絃)처럼 바람을 타고 나는 제비 한 마리가 여름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듯, 창턱에 실로폰 음(音)처럼 내려앉은 참새 한 마리가 가을을 데리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또한 한 마리 기러기가 끼룩끼룩 울며 한료(閑廖)한 밤하늘을 가로지른다고 하여 가을이 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김창식)
*윗글을 두고 반원들 사이에 설왕설래 활발한 브레인스토밍식 의견 교환이 있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실험적 수필이다’ ‘출렁출렁한 시적 운율이 있다.’ ‘가을의 황량한 풍광에 빗댄 작가의 처연한 심사가 가슴을 건드린다.’ 등등 칭찬 일색.
-어느 눈 밝은 문우가 급제동.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인용과 수식이 천지삐까리로 많다. 그런데도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새로운 미감을 전해주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화들짝 놀란 교수님의 더듬더듬 고백.
“도대체 숨질 못하겠네! 이 글에서 따옴표로 표기한 대목은 다른 텍스트(시, 수필, 격언, 소설,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었거나 직, 간접으로 패러디한 것이에요. 짜깁기의 달인이랄까, 뭐 이런 유의 글도 쓸 수 있다는........ 그만 넘어가죠. ㅎㅎ”
-실러의 <군도>, 릴케의 <가을날>, 안도현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김광균의 <추일서정>,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헤세의 <데미안>, 사이먼 가푼켈의 <침묵의 소리>, 짐 리브스의 <먼 북소리>, 이선희의 <수선화에게>.........
-이 글의 주인공은? 당근 매미(It's not carrot!)! 마지막으로 이 글의 주제는?
‘소박하고 소중한 우리의 일상적 삶이 어쩌면 우리가 지나쳤거나 눈여겨보지 안 았던 것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구저쩌구.......’
2. 반원 글 합평
<잘 하는 보다 더 잘하는>(윤기정)
교훈적이나 지나치지 않은 완성도 있는 글. 글 흐름에 어긋남이 없는 적절한 지식과 정보의 배치.
<욕이 말이래요>(최준석)
소년적(소녀적?) 감수성이 빛나는 최준석 표 시그니처 수필. 여러 등장인물의 정리정돈이 필요함.
<조금만 참았다면>(안해영)
흥미로운 노래방 야화(夜話). ‘지레짐작’이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균열로 주제를 강화하면 더욱 바람직.
<본질로의 회귀>(김순자)
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난해한 전개로 드러나는 회화와 화단에 대한 각성이 주위를 숙연케 함.
3. 종로반 동정
한국산문 송년회를 마무리하자마자 다음 날 종로로 향하는 마음. 하루쯤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이겠지. 송년회에서 각 반 소개를 하는 것은 뻔한 소개말 일색. 어떻게 하면 종로반의 활기찬(?) 모습을 보여줄까? 궁리하던 중
지난가을 용인에 있는 최 작가님 댁에서 야외 수업 때 함께 했던 대방동 성당 ‘하랑’ 우쿨렐레 팀에 한국산문의 송년회 모습도 보여 줄 겸 찬조 출연을 긴급 요청. 신나고 유쾌한 한국산문 종로반 소개에 일조한 대방 성당 하랑 우쿨렐레 팀이 송년회 분위기 띄우기에 한몫했는지의 결과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건 감사 인사를 전한다.
특히 김창식 교수님이 강의하고 있는 일산 롯데반이 송년회 참석은 처음이라 참여하는 데 불편함은 없었는지. 한국산문의 송년회 모습을 어떻게 보았는지. 선배 반인 종로반에서 챙겨주지 못한 점은 없었는지. 내년에는 더 잘 챙겨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