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현장성과 역사성*-정철훈 작가 특강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자기 문학에 윤리성을 철저하게 지킨 작가로 죽기 전까지 ‘내가 만든 주인공 이명준을 바다에 빠뜨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침대 머리를 회령으로 발을 목포로 생각하며 분단 현실을 늘 잊지 않았던 최인훈 작가!
미국과 소련을 여행하는 주인공이 '화두'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에 분단된 조국과 이념 갈등 속에 살았던 작가 자신의 인생을 녹여내어 궁극적으로 20세기 한국인의 고민과 삶을 함축하여 보여준 ≪화두≫의 작품 해설을 시작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헤럴드 블름의 『영향에 대한 불안』의 책 소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배 시인이 선배 시인의 ‘영향’에 대한 ‘불안’을 통해 새로운 시를 창조하는 과정을 수사학적 대조 및 심리적 갈등과 투쟁에 주목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블룸 이전의 전통적인 영향 연구가 후배 작가가 선배 작가를 모방하는 것으로 여기고 문학 전통의 연속성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해왔다면, 블룸 이론의 특징은 문학 전통의 연속성과 유사성이 아닌 ‘왜곡’과 ‘차이’ ‘오역’에 주목했다는 데 있습니다. 위대한 선배 시인의 영향이라는 방해자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스스로 독창적인 시인으로 태어나는 위대한 시인의 형성 과정을 극적으로 서술한 이론서입니다.
정철훈 작가가 올해 5월에 출판한 ≪문학아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 오렴아≫는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작가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디에서 희망을 찾았는가?를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을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보낸 근대 작가와 더불어 분단 이후 4.19혁명, 군사독재와 광주항쟁을 겪은 당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사의 굵직한 획을 그은 작가들의 미처 말하지 못한,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분단 현실은 은연중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한계를 지닌 한국문학의 불구성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문학의 중요 인자들을 섬려하게 탐방하고 그것을 실증적으로 기록하는 문학의 현장성과 역사성이 살아 있는 역작입니다.
문학아, 너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 오렴아
(정지용은 한겨울 귀가 얼어 붉은 앵두처럼 터질 듯한 모습으로 집안으로 들어온 화동 추월이의 귀가 방 안의 더위로 가시자 아쉬움에 이렇게 말한다. “추월아 너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 오렴아.” 저자는 툭 던진 이 한마디에 문학적 영토의 회복 가능성을 발견한다. 귓불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영하 30도의 북방으로 우리 문학이 회귀해야 한다는 일종의 각성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점점 잔망해지는 우리 문학의 영토적 협소를 타개할 전망은 요원하다. 문학의 규모와 깊이는 확실히 영토적 문제이다. 문학사 백년 풍경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남방문학 백년으로 귀착될 뿐, 북방이 그립다. 북방은 회복되어야할 우리의, 우리 문학의 영토이다. 문학사 백년 풍경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 새로운 백년의 초석을 놓기 위해 압록 건너 두만 건너 북방대륙을 바람처럼 떠돌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현실은 모래처럼 부서져 내리지만 과거는 더 이상의 진행을 멈춘 하나의 완전체이다. 그 완전체를 이리저리 궁굴리며 만져보는 과분한 호사는 이제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