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TV와 인터넷은
예능과 엔터테인먼트로 도배되어있고
어느새 최상의 가치인 듯 군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낱 구경꾼으로 전락했습니다.
즐거운 것만 좋아하는 우리는 대책 없는 구경꾼으로
엔터테인먼트가 내리는 명령에 따를 뿐이지요.
노래와 춤, 개그의 폭주 속에서
진실과 진정성의 언어는 점점 위축되어갑니다.
즐거운 엔터테인먼트가 되지 못하는 진지한 책 읽기는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찬밥 신세가 된 문학으로 인해
시가 가르쳤던 고상함과 진정성의 가치를 구할 길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즐거움에 자리를 빼앗기고 슬픔을 잊어버린 현 시대는
진정한 슬픔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드라마가 제공하는 가짜 슬픔 때문에 찔끔거리는 눈물에는
영혼도 소금기도 없습니다.
슬픔을 아는 자가 진짜 인간일 텐데
우리는 더 이상 슬픔을 모릅니다.
이런 세태를 한탄하여 운 시인이 있었습니다.
시인 박영근은 아무도 울지 않는 눈물 없는 세상을 위해서
이 부박한 세상을 한탄하여 대신 울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변화한 사회현상은
혁명도 민중도 타락시켰고
세상은 승자독식의 투기장으로 변했습니다.
압제의 암흑 속에서 횃불을 들었던 시인들은
그 부박한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했고
영혼 없는 시. 하루 동안도 살기 어려운 하루살이 시를 썼습니다.
박영근은 “나에게 민중 혹은 문학은 여전히 하나의 가능성이며
가야 할 미래로서의 새로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절망감은 깊었고
문학만은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깨졌습니다.
모주꾼이었던 그는 술만 마셨다 하면 울었습니다.
그가 백석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신경림 시인은 “ 최상의 시란 가장 작은 말을 가지고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뜬 지 십 여 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시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현기영 소설가의 수필 <박영근의 슬픔>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