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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줄이 그어진 원고... <나의 아버지 특강> (평론반)    
글쓴이 : 오정주    19-01-10 19:44    조회 : 2,654



개강 첫 날, 언제나처럼 특강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장용학씨의 둘째 아드님 장한성씨가 오셔서<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다른 반에서 여러분들이 와 주셔서 강의실이 꽉 찼고 열기기 뜨거웠습니다. 카이스트 공학 박사님인 아들은 종교, 사회 생활, 정치적 활동, 교우 관계, 가정에서의 생활 등으로 나누어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아버지 얘기할 때보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낼 때 상기되고 긴장하였습니다. 질문들이 쏟아졌고 점심식사와 티타임까지 질의 응답은 계속되었지요.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3형제,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 녹색 세단, 횡성수설 칼럼,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대표, 빨간 줄이 그어진 원고, 대통령의 문화훈장 거절, 거짓말 하지 말고 형제간 사이좋게 지내자! 어머니를 잘부탁함, 그리고 17, 연애의 상처, 결혼, 어머니,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50년 된 자택..... .

체험을 서사적으로 제시하기 보다 관념을 캐리어처 식으로 구성하는 기법은 무엇일까.....사부님께서 주신 자료를 호기심 가득 차서 다시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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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독한 실존주의자의 역사 인식

- 장용학 문학에 나타난 현실비판 의식 -   

1. 난삽한 데도 재미있는 소설

운문으로 된 소설, 스토리 있는 논문, 철학의 르포르타주, 이것이 장용학(張龍鶴, 1921.4.25-1999.8.31)의 소설이다. 사르트르에게서 실존을 빌렸고, 알레고리는 카프카를 닮았다.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 사상의 사생아이며 정통소설문학의 배반자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오늘의 표준도덕률에 의하면 패륜아들이다. 그들 중의 누구는 남파된 간첩으로 친 누이동생과 결혼하려고 온갖 도피행각을 감행하다가 끔찍스럽게도 그 결혼이 이뤄지고 마는가 하면(<圓形의 전설>), 자기 친아들의 간을 끄집어내어 위 속에넣기도 한다(<인간 종언>). 악당이 아닌 자들도 있다. 이들은 불행하게도 철조망에 걸려서 죽기도 하고(<요한시집>), 한 판사의 오심으로 10년 징역형을 받아 복역 중 허망하게 사망(<현대의 >)해버린 예도 있다.

여주인공들은 아름답고 천진난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희(聖喜), 난이(蘭伊), 기미(起美), 이나(梨那) 등은 현실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우아한 이름을 갖고 있다.(각주 1)

이들은 한국판 백설 공주처럼 순진한 데다 섬세한 여인상으로 부각되어 있으면서도 남주인공들에겐 강철보다 더 굳게 밀착하여 떨어지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육체가 없는 듯이 순수한 사랑을 나눌 때면 천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근친상간의 교접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동물로 좌천당하기도 한다.

서울을 벗어버리고 판단을 중지하자.”라는 식의 형이상학적인 고민에 차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산기슭에서는 세퍼드까지 쇠고기를 먹고 있는데”, “이 노파는 고양이가 잡아온 쥐를 먹고 목숨을 이어”(<요한시집>)가는 생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인물도 등장한다.(각주 2)

장용학은 등단은 1948년에 했지만 이런 기이한 작품들 때문에 편의상 전후문학인 중 가장 난해한 관념소설가로 알려져 일반 독자들은 거의 잊어가고 있다. 고교 교사와 대학 교수를 거쳐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지낸 그의 경력으로 보면 사회생활에 능하여 폭넓은 교우관계망을 형성했을 법 하건만 전혀 그 반대인 장용학의 생애는 의외로 단조롭다.

<현대문학>지를 통해 <아나키스트의 환가-장용학의 정치학>이란 평론으로 등단한 필자는 이를 인연 삼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던 그를 몇 번 예방하며 은근히 남다른 경외와 친선을 도모했으나, 1970년대 후반기 이후에는 인생행로가 달라져버려 풍문으로만 근황을 듣다가 종내는 평론가로 마땅히 섭렵했어야 할 그의 만년의 현장 취재를 놓치고 말았다. 대학원생들에게 생존 시인 작가론을 쓰려면 반드시 직접 면담을 한 뒤에 쓰라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나로서는 큰 실책이었다.

그러던 중 2015918, ‘문학의 집. 서울에서 <그립습니다 장용학>이란 행사에 초대받은 걸 계기로 내 청년시절에 열정을 불살랐던 여러 전후 작가들(손창섭, 이호철, 남정현, 하근찬 최일남 등) 중 세칭 관념소설 혹은 지식인 소설가 둘(최인훈과 장용학) 중 한 분이었던 그를 다시 회억하게 되었다. 먼저 그의 마지막 직장이었던 동아일보 시절이 궁금하여 최일남 선생에게 문의했는데, 결과는 역시나였다. 동아일보 문화부장의 상징인 매력적인 기억력의 대가인 최 선생조차도 사내에서 차 한 잔 나누지 않은 유일한 존재가 장용학이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두 작가 다 고단위의 결벽증적인 순수성을 고수한 점에서는 막상막하이지 싶다.

다행히 문학의 집. 서울행사장에서 장용학 작가의 둘째아들(장한성)을 만나 몇 가지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 좋아했던 작가가 나중에 문학의 본질을 벗어나 행여 어용이나 이념적인 편견으로 변질해버리면 적이 실망인데 장용학은 도리어 그 반대였다. 그의 초기 작품 세계나 이념적인 성향을 아나키스트의 환상적인 노래로 풀이했던 필자로서는(그는 필자의 이런 지적을 수긍했다) 그 뒤 혹독했던 유신 독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궁금했다. 장한성 님의 증언으로 아버지가 독재체제의 냉철한 비판자로 관계기관에 연행되는 등 많은 필화와 고통을 겪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처 읽지 못했던 장용학의 만년의 작품들을 점검하면서 1970년대 후반기 이후부터 그의 소설은 기법으로는 관념성을 고수하면서도 소재와 주제에서는 민족사의 시련, 특히 친일문제와 한일 두 나라의 반역사성을 가장 신랄하게 다뤘으며, 특히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에 쓴 횡설수설칼럼(주로 1960년대 후반기) 등을 통하여 가장 수위 높은 시사평론을 감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소관계로 재단비평이 성행하는 문단 풍조 속에서 평단이 이런 작가를 외면해 왔구나 싶은 안타까운 심경이었다. 후학들이 장용학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이 글은 장용학을 연보에 따라 소략하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한다.

 

각주

1. 이런 현상에 대하여 작가는 소설 구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작명이라고 말하는 걸 필자는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구상 단계에서 등장인물의 작명만 하면 그 뒤에는 아주 쉽다고 했다.

2. 이 서두는 필자의 등단작 <아나키스트의 환가(幻歌) ? 용학의 정치학>, <현대문학>, 1966.3,의 도입부를 약간 수정해 옮겨 쓴 것임.













 


김낙효   19-01-14 00:32
    
개강날 결석을 하여 궁금했는데, 오반장님이 이렇게 후기를 써 놓았군요. 반갑습니다.^^
종강때 미국서 친구가 와서 두 사람이 돋보이던데요. 나이든 여자들의 우정ㅎㅎ

장용학씨의 아드님 장한성씨가 오셔서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셨군요. 
질문들이 쏟아졌다는데 어떤 것이었을까요?

*다른 반에서 여러분들이 오셔서 교류를 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겠네요.
     
오정주   19-01-14 10:29
    
김낙효 선생님 오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아쉬웠습니다.
  예리한 질문도 하셨을건데 말이죠 ㅎ
    다음엔 꼭 함께 하셔요.
박영화   19-01-14 23:29
    
' 사르트르에게서 실존을 빌렸고, 알레고리는 카프카를 닮았다.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 사상의 사생아이며 정통소설문학의 배반자이다'
 이 문구가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ㅎㅎ 카프카를 닮은 문학이라... 장용학님의 글을 접해 본 적이 없었는데 꼭 한 번 빠져들고 싶네요. 반장님 친절한 후기 감사합니다.  찻집에서의 근사한 사진도 보기 좋습니다. ㅎㅎ
오정주   19-01-15 01:44
    
멋진 문구를 고르셨군요~
장용학 작가 소설 읽은 지 오래전인데 새롭게 다가왔어요.
효도 하느라 못오신 영화샘 없어서 섭했어요.
사진도 정말 잘 찍었지요?
담엔 꼭 함께 하기로 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