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은 여름학기 종강일이었습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부득이 결석생이 많았어요. 그래도 열 분이나 오셔서 자리를 채워주셨어요. 수업에서는 서양 근대 단편 소설 작가 세 분의 작품을 읽고 유성호 교수님의 인문학 강의에 이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파상의 <목걸이>,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
위 세 편은 너무도 유명해서 다들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해요. 내용은 다 아실 것이고 교수님 말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소개해드립니다. 모파상의 <목걸이>의 주인공 마틸드를 말하면서 허영심에 관해 좀 더 깊게 들어가보았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가 각색했다는 나르키소스 신화입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던 나르키소스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돼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요정들이 찾아와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는 호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을 매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호수에게 그의 죽음이 얼마나 슬프겠냐고. 그러자 호수는 오히려 요정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이 뜻밖의 말에 요정들은 되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수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호수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수면 위로 얼굴을 비출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
위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나서 "허영이란 말에서 허영의 사치스러움을 빼고 나면 자기애, 자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다 자기 허영이 있는 것 같다. 다 타인에 비친 내가 중요하지 타인이 중요하지 않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은 그냥 소중해서가 아니라 그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소중하다. 나한테 잘하는 사람에게만 잘하게 된다. 허영심을 자기 도취로 협의로 해석할 게 아니라 다양한 사물이나 타자를 자신의 존재 증명으로 끌어들이는, 인간의 본성으로 봐야 맞다. 본성이기에 나쁜 건 아니다. 병적으로 강하면 구제불능이지만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덧붙여, 글쓰는 이들도 타인이 쓴 글에서 자신이 나온 글만 읽고 기억하며, 친구들과 놀러가서 찍은 단체사진을 볼 때도 자신만 본다구요. 종종 타인에 의해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상처를 받으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소설처럼 우리는 욕망과 허영과 아이러니를 겪으며 살 수밖에 없다고요. 나르시스트로만 살면 구제불능이지만, 능동적인 장치를 만들어 타인을 배려하고 칭찬해야 한답니다. 겸손과 성실이 중요하다고요. 성취에도 자신 혼자 힘으로만 이룰 수 없듯이 타인의 나르시시즘을 잘 간직해주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타인의 글과 SNS에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라는 말씀을 남기고 강의를 끝내셨습니다.
잠실반 문우님들, 한 학기 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