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수필은 문제제기만 해주는게 좋다(디지털대 수수밭)    
글쓴이 : 문제원    20-08-25 09:16    조회 : 4,868

[2020. 8월. 교수님 합평 정리]

 

1. 글이라는 것은 매우 다목적인 것으로, 주제는 하나이지만 글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배려해서 쓰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손님에 대해 묘사한 글을 그 가게에 다니는 손님이 읽는다고 치자. 그 내용에 따라 ‘이 사람 봐라. 손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네. 이 집은 절대 안 가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참으로 사람 좋다. 앞으로 이 가게에 가면 물건을 좀 사줘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글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섭다. 말은 사과하면 (물론 한 번 뱉으면 못 끌어 담지만), 수습이 될 수도 있지만, 글은 지면에 나가버리면 사과가 안 된다.

 

2.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세대 간에도, 남녀 간에도 다르고, 사람마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지에 따라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저렇게는 안 살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엄마가 아이를 낳아놓고 자기 편해지자고 아무런 책임을 안 지는 게 맞는 거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정답이 정해진 것이 없다. 개성이 강한 작가라면 정답을 내놔 버릴 수 있겠지만, 수필로 제일 좋은 것은 독자가 생각할 수 있도록 문제 제기만 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렇다면 문제 제기를 어떻게 할 것이냐? 상대방을 비판하면서도 그 처지에 대해 생각이나 공감도 해주는 심리적인 미묘함을 깔면서 글을 전개하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 고종사촌 오빠 얘기가 나온다. 오빠가 잘되었지만, 그런 오빠를 볼 때마다 희생만 하셨던 고모가 생각난다. 오빠의 돌잔치에서 그런 고모를 떠올리며 눈물이 났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내 아이를 대하는 나를 생각해 봐라. 어릴 적에 봤던 고모의 이미지를 내가 성인이 되어 떠올렸듯이, 내 아이도 미래에 어쩌면 지금의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글을 이끌어 가면 사건이 순환된다. 고모와 남편과 고종 사촌오빠를 끌어들인 이유가 되고, 그 글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글에 대해 유감이 없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글을 읽는 독자가 글로 위로를 받고, 올바른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비판이나 어떤 사람이 진짜 나쁜 개새끼 다 할 때는 대놓고 글에서 욕을 해도 좋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을 될 수 있는 대로 인정해 줘라. 두루뭉술하게 중용 주의자로 글을 써 주는 것이 작가한테도 편한 것이다.

 

3. 글을 쓸 때 어떤 사건을 이야기하고 묘사할 때 내 삶과의 연관, 그런 사건들 때문에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왔는지를 중간 중간에 넣어주면 글이 깊어질 수 있다.

 

4. 마라톤 이야기다. 작가가 마라톤을 어떻게 해왔다는 것이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독자는 읽으면서 대단하다고 느낄 것 입니다. 그런데 글의 뒤에 가서 마라톤은 너무 과하게 하다가 다쳤다는 말이 나와요. 이건 좀 어색해요. 이런 결론을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라톤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들도, 선수들조차도 백이면 백, 말년에 고생합니다. 운동은 지나치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명심하시고.

 

이 글을 어떻게 재미있게 쓰느냐를 생각해 봅시다. 처음 도입 부분에서 건강 문제로 시작했다가, 5km, 10km 이렇게 거리를 늘려 도전하다가 마지막에는 보스턴 마라톤 참가를 앞두고 내가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이끌어가다가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인생도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보스턴 마라톤의 꿈은 좌절했지만, 내 인생의 꿈은 마라톤으로 좌절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글의 방향을 바꾸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나이가 들었는데, 아직도 보스턴 마라톤을 꿈꾸면 안 됩니다. 인생을 그리 살면 안 돼요. 어느 하나에 끝장을 보자고 달려들지 말고, 중간에 궤도 수정하고 목표도 수정해야 합니다. 인생은.

 

5. 사람이 아닌 기러기의 입장에서 글을 썼어요. 소재가 특이하고, 형식이 특이하니까 쭉 읽히고 신선하고 재미있지요? 첫 글인데 잘 썼습니다. 글을 좀 써보신 분 같습니다. 앞으로도 활동 기대합니다.


박영화   20-09-08 01:10
    
글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섭다. 말은 사과하면 (물론 한 번 뱉으면 못 끌어 담지만), 수습이 될 수도 있지만, 글은 지면에 나가버리면 사과가 안 된다. ...  어떤 면에서 말보다 더 무서운 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필을 쓰는 것뿐만아니라 SNS로 쉽게 의사표현을 하는 요즘에는 더더욱 글 한 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내 글에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군요.
문제원 총무님, 바쁘신데 합평 정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