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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발자국 - 카라 생추어리    
글쓴이 : 고은영    26-03-21 04:03    조회 : 218
                          작은 발자국 – 카라 생추어리
                                                                           고은영
 
 스크린에는 행복한 돼지 릴리가 저를 돌보아 주는 동물권 활동가 언니에게 우람한 배를 맡기고 애교섞인 몸짓을 하는 장면이 꽉 차 있었다. 생추어리Santuary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과 그 활동가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 발자국-카라 생추어리」의 일부분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개념인 생추어리는 학대받거나 착취당한 야생 동물과 농장 동물을 구조해 자연 친화적이고 안전한 환경에서 평생 보호하는 일종의 동물 안식처이다.
 최근 독일로 여행간 딸아이는 일정 중 2주를 현지 생추어리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자원봉사를 하는 대신 생추어리 측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형태로, 독일에는 이런 형태의 생추어리들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사는 알래스카에도 야생 동물을 보호하는 생추어리가 있다. 십오년전, 알래스카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딸아이와 함께 처음 Alaska Wildlife Conservation Center에 방문했을 때 나는 알래스카답게 야생 동물이 많은 동물원 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보며 알아보니 그곳도 생추어리로, 다친 야생 동물을 자연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보호하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목표인 곳이었다. 동믈을 전시하는 대신 건강 회복, 그리고 본래의 삶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생추어리의 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이러한 형태의 생추어리들이 상당수 있었고 많은 부분,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큰 딸 예지가 감독한 이 영화는 2025년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렸던 「서울 동물 영화제(Seoul Animal Film Festival, SAFF)」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나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알래스카에서부터 날아왔다. 
 “회사 그만 둔 걸 후회하지는 않아?”
 잘 디니던 대기업을 때려 치우고 사진을 시작한 예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예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됐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2018년 처음 시작된 서울 동물 영화제는 ‘동물권’이라는 낯선 개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하고 인간과 동물이 존중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로 나아가는 데 목적이 있다.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은 ‘비로소 세계(The World That Therefore We Become)로 동물이 인간의 결정과 행위에 영향을 주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세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세계’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개막작은 페트르 롬, 코리너 판에허라트 감독의 「코리올리 효과(Coriolis effect)」로 「코리올리 효과」 는 지구의 자전에 의해 공기와 해류의 흐름이 곡선으로 휘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지구의 자전처람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놓인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그렸다. 허리케인의 발원지 카보베르데에서 5년간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네, 거북, 새와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비인간 존재에게도 동등한 존엄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영화적 언어를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단편 경쟁에는 전 세계 91개국 823편이 출품돼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 중 동물의 감각을 탐구하고 독창적인 영화적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가 돋보인 17편의 작품이 본선에 진출했다. 
 SAFF 포커스에서는 반려견 ‘봉구’가 등장하는 영화 「빅토리」를 상영하고 동물 촬영의 윤리를 공유했다.
 특별전 「애니멀 턴: 동물-영화사」는 로베르 브레송, 벨라 타르, 크리스 마커, 마야 데렌, 아그니에슈카 홀란트의 작품들을 통해 영화사에 ‘동물적 전환(animal turn)’을 시도했는데 즉, 인간이 아닌 동물의 관점에서 영화를 사유하게 하여 영화사가 동물과 함께 변형되는 지점을 탐색했다.
 제8회 서울 동물영화제는 쟁점포럼, 개막작 마스터클래스, SAFF 토크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그 중 반려인들에게 특별한 행사도 열렸는데 9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던 야외 상영회가 그것이다. 돗자리, 쿠션, 반려 용품, 음료 뿐 아니라 같이 하는 게임도 준비되어 탁 트인 장소에서 많은 반려인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영화를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상영작은 벤 레온버그 감독의 장편 「굿 보이」로 반려견의 시선에서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독의 실제 반려견 인디가 주인공으로, 수명이 다르기에 숙명적으로 견뎌야 하는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영혼의 세계로 떠나는 주인을 따라가려는 인디에게 ‘기다려 -너는 아직 이 세계에서-’ 라고 말함으로써 이별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잘 전달하고 았다.
 영화의 백미는 인디의 연기력인데 이는 아마도 영화를 찍는 감독이, 인디가 가장 편안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여 장면에 녹여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레온버그 감독이 인디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영화 속 인디가 짖으면 다른 강아지들도 함께 짖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잠깐 영화 속 사운드룰 들울 수 없는 단점도 있었지만 관람객인 반려인과 반려 동물에게는 오히려 소중한 추억의 일부분으로 남았다는 후문이다.

 “동물권은 단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후위기, 공공보건, 생태계 파괴, 반민주적 기업의 횡포, 약자와 노동의 권리 등 수많은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주최자는 말한다. 
 공장식 사육의 역사는 고작 몇 십년에 불과하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불거진, 온갖 가공 식품을 포함한 대규모 육류소비의 폐단이다. 이번에 다른 영화를 보며 알게 되었는데 공장식 돼지 축산이란 간신히 몸 하나 들어갈 정도로 협소한 축사에 칸칸이 나뉘어져 뒤로 돌아설 수도 없을 정도로 따닥따닥 붙어서 평생 코앞만 보고 사육되는 것을 의미한다. 닭들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다른 닭들에게 상처를 낼까봐 병아리 때부터 부리는 잘려지고 평생 날갯짓 한번 제대로 못한 채 다량의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맞으며 밤낮없이 알을 생산하고 있다. 
 
  「카라 생추어리」 관람 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할머니는 딸아이에게 웃픈 투덜거림을 남겼다.
 “괜히 봤어! 이제부터 뭘 먹으라고?”
  모두들 깔깔 웃었지만 그건 사실 내 목구멍에 걸려 있었던 말이기도 했다. 딸아이는 몇 년전 강아지를 입양한 이후 서서히 고기를 줄였고 이번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부터는 그나마 먹던 닭고기도 끊어서 이제는 해산물 정도만 먹는 반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이젠 닭도 안 먹는 거야?”
 “응. 영화 찍으면서 공장식 축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돤 것도 있고 이름을 아는 닭 친구들이  생기니까 닭고기를 먹는 것도 불편해.”
 나는 속으로 아는 물고기가 안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누나와는 달리 육식파다. 늑대가 사냥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니듯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도 당연히 죄가 아니다. 다만 그 방식이 폭력과 착취에 있다면 문제가 있다. 

 “병우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
 예지가 대답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되지.  고기 비중을 조금씩 줄이고 가능한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된 좋은 음식들로 바꿔 나가면 돼. “
그 말에 힘입어 나는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볼 생각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알래스카에도 유기농 수퍼마켓이 있어 좋은 삭재료를 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영화 속 카라 생추어리의 동물들은 햇볕 아래 낮잠을 즐기고 진흙 아래 몸을 비비며 행복을 표현했다. 식용 개 농장에서 오물이 범벅이 되어  털이 다 빠진 상태로 구조되었던 닭들도 이제는 토실하게 살이 오르고 꼬리털에 반지르르 윤기가 돌아 도저히 그때와 같은 녀석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이 거둬진, 자연 상태에서의 동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동물과 함께 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

-제8회 서울 동물영화제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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